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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n 07. 2020

13. 둘이서 라면 하나 - 무파마

무파마

1990년에 TV에서 방영된 배추도사 무도사 만화 시리즈를 아시는지요? 배추와 무가 의인화되어 서로 대화를 나누다 시청자에게 옛날이야기를 소개하던 만화인데 그 당시 인기가 대단했다. ‘옛날하고 아주 먼 옛날/ 호랑이 담배 피고 놀던 시절에/ 남에 번쩍 북에 번쩍 배추도사 무도사~’ 로 시작되는 주제가는 30년이 지났어도 따라 부를 수 있다. 나는 화가 난 것처럼 검은 눈썹을 찌푸린 배추도사보다 둥그런 흰 눈썹에 환하게 웃는 무도사를 더 좋아했다. 두 도사가 전래 동화를 소개하기 전에 티격태격 말다툼 하는 모습도 얼마나 재밌던지. 무파마를 보고 있지니 내 유년 시절을 함께 했던 무도사님이 그립다.


 무파마는 2001년 농심에서 만든 제품으로 무, 파, 마늘을 줄인 것이라고 한다. 마가 마늘을 뜻하는 건 이제 알았네. 무파마는 별첨 스프가 하나가 더 있다. 건더기 스프와 스프를 넣고 다 끓인 후 분말 스프인 후첨분말을 또 넣어야 한다. 다른 라면보다 건더기도 좀 더 많이 들어 있고, 풍미를 더해주는 후첨분말까지 있으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군요.


 무파마탕면이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파와 마늘 때문이다. 파와 마늘은 음식의 맛을 한층 고양시켜 주는 보물이다. 이코노미 석에서 비즈니스 석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기분이랄까. 프라이팬에 파와 마늘을 넣어 먼저 충분히 달달 볶아주면 그 뒤에 무얼 넣든 다 맛있어 진다. 양배추, 버섯, 숙주나물, 애호박, 어묵, 고기 등등 뭐든 넣어 보시라. 파와 마늘은 어떤 식재료를 만나든 다투지 않고 잘 보듬어 주는 친구들이다. 성격이 참 좋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파와 마늘 뿐 아니라 육수를 낼 때 기본이 되는 무까지 첨가했으니 국물이 깔끔하고 시원한 맛을 낼 수밖에. 


 라면 봉지 좌측 하단에는 무, 파, 마늘이 수줍게 그려져 있다. 우측 상단에는 “속 시원한” 문구가 산뜻하게 적혀 있다. 라면 그릇에는 파, 무 조각, 통마늘이 올라가 있으나 정말 저렇게 싱싱하고 큼직한 무,파,마늘이 들어 있는 건 아니겠지? 스프에는 건무 6.3% 건파 5.9%, 건마늘 5.3%가 들어 있을 뿐이다(나쁘진 않은걸). 남편과 함께 먹으려 라면 하나를 다 넣고 끓인다. 귀찮아서 모든 스프를 한 번에 넣어버리고 싶었으나 ‘꼭 조리 마지막에 넣어 드세요.’라고 후첨분말이 간절히 부탁하여 남겨둔다. 


 다 끓었다. 라면을 그릇에 담고 한 입 먹어본다. 호로록.


“남편. 맛있긴 한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야.”

“후첨분말 넣었니?”

“아하.”


후첨분말을 탈탈 털어 넣고 면을 잘 비벼준다. 다시 한 번 호로록. 음~ 맛있군. 면도 꼬들꼬들하고 맵기도 적당하다. 마늘 맛도 좋다. 라면 국물도 시원하다. 하지만 라면을 먹을 땐 국물까지 먹지 않는다. 면에 국물이 배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무파마의 나트륨 함량은 1720mg. 하루 기준치의 86%이다. 다른 라면도 비슷한 수준이다. 라면 회사들도 스프에 나트륨이 과하게 들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라면 봉지마다 빠짐없이 스프를 적정량만 넣어 나트륨 섭취를 조절하라고 빨간색 글씨로 적어 놓았다.  


 라면 국물이 아무리 맛있어도 그 국물은 진짜 채소나 고기를 우려 낸 것이 아닌 실험실에서 이 맛 저 맛이 나도록 제조하여 만든 가루일 뿐이다. 나이가 들어도 먹고 싶을 때 라면을 먹을 수 있으려면 몸이 건강할 때 조심하는 게 낫다. 한번 큰 병에 걸리고 나면 완치가 되어도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한다.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지 옆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그러니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미래를 생각하며 과하게 먹지 않으려 노력한다. 생각보다 육체적 젊음은 짧다.

 남편과 라면을 나눠먹으니 먹는 것도 금방이다.


“남편. 나는 아무래도 너구리 순한맛, 진라면 순한맛, 무파마 같은 순한 라면이 입에 맞는 것 같아.”

“너 이제 틈새라면이랑 열라면 먹고 글 써야 되는데?”

“아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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