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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May 31. 2020

11. 둘이서 라면 하나 - 진짜쫄면

진짜쫄면

“남편 여름이 왔나봐. 수업 끝나고 여름 맞이 기념으로 쫄면이나 먹으러 갈까?”


남편은 일주일에 한번 퇴근 후 기타를 배운다. 목표는 캐논 연주하기. 원래는 피아노로 캐논을 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피아노는 내가 연주할 수 있으니 나중에 합주라도 하려면 너는 기타를 배우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설득에 넘어가 기타 학원에 다니고 있는 중이다.


“내가 이따 학원 앞에서 기다릴게.”

“쫄면? 우리 집에 쫄면 있는데?”

“진짜? 어디에 있다고?”


찬장을 열어 살펴보니 진짜 쫄면이 있다. 진짜구나.


 쫄면은 채식을 하는 이들에겐 반가운 음식이다. 면 위에 각종 야채와 과일을 수북이 얹어 먹을 수 있어 한 끼 식사로도 좋고 간식으로도 좋다. 쫄면 뿐 아니라 메밀 면이나 국수 면을 넣어도 된다. 양념장은 고추장, 간장, 조청, 참깨, 들기름을 섞으면 끝. 양념장은 30분 전이라도 미리 만들어 놓으면 훨씬 맛있다. 여름에는 일주일에 몇 번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쫄면. 여름 맞이 기념으로 한 번 먹어볼까?


 쫄면의 유래를 찾아보니 의견이 분분하다. 1970년대 인천의 한 제면소에서 냉면 면을 뽑다 잘못해서 굵은 면발이 나왔는데 버리기 아까워 인근 분식집에 주었다고 한다. 분식집 주인이 이 면을 고추장 양념에 비벼 채소를 올린 후 만든 게 쫄면의 시작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쫄면과 냉면은 원료 배합이 다르기에 납득하기 힘들다. 냉면은 메밀과 전분을 섞어 뚝뚝 끊어지는 면인데 쫄면은 주가 밀가루라 쫄깃쫄깃한 면이지 않는가. 어떻게 탄생되었던 간에 나는 쫄면의 쫄깃함을 좋아한다. 집 근처에 순두부 전문점이 있는데 메뉴 중 쫄면을 넣은 순두부도 있다. 처음엔 순두부에 왠 쫄면 했는데 먹어보니 아아~(짬뽕순두부를 처음 먹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랄까). 순두부에는 뭘 넣어도 다 맛있어 지는구나.


 진짜 쫄면은 오뚜기에서 만들었다. 왜 쫄면 앞에 진짜를 붙였을까? 봉지에 그려진 면발을 보니 진짜 쫄면은 아닌 게 확실한데. 면이 쫄면처럼 쫄깃쫄깃 하려나? 설마 진라면 진짬뽕과 한 가족이라서?(그럼 진쫄면으로 했어야지) 라면 봉지 좌측 상단을 보니 ‘150g의 푸짐한 양!’이라고 적혀 있다. 일반 라면보다 20~30g 더 많긴 하지만 푸짐할 정도는 아닌데. 봉지를 열어보니 건더기 스프와 액체 스프가 들어 있다. 액체 스프가 묵직하다. 순창고추장이라고 적혀 있다. 라면 하나에 소스가 이정도면 매울 게 분명하다. 내가 한두 번 당해 본 게 아니다. 우선 끓여보자.


 물에 건더기 스프를 넣고 끓인다. 손톱만한 달걀 모양의 고명이 4개 보인다. 깜찍하기도 하지. 먹어보니 어묵 맛이 난다. 끓인 물에 쫄면을 넣고 3분 정도 삶는다. 체에 밭쳐 라면을 부은 후 찬물에 헹궈 탈탈 턴다. 달걀 고명까지 싹싹 모아 오목한 그릇에 옮겨 담고 새빨간 액체 스프를 꾸욱 짜 넣는다. 쓱쓱 비빈 후 한 입 먹어본다. 아~~~~악. 맵다. 이럴 줄 알았지. 라면 봉지에는 ‘매콤 달콤~쫄깃탱글~’이라고 적혀 있는데 나에겐 ‘매콤 매콤~쫄깃 매콤~’으로 느껴진다.


 그럴 줄 알고 면을 끓이기 전에 다 준비해 뒀다. 냉장고에 있던 청경채, 적근대, 신선초, 양배추, 로메인, 키위, 토마토, 참외를 착착 썰어놓았다. 진짜쫄면 맛을 보았으니 이제 내 맘대로 쫄면을 만들 차례. 야채와 과일을 쫄면 위에 가득 부은 후 다시 쓱쓱 비벼 한 입 먹어본다. 아~ 맛있다. 역시 여름엔 쫄면이지. 남편은 면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며 야채를 온통 헤집고 있다. 나는 친절한 목소리로 야채와 과일을 모두 먹고 나면 쫄면이 나타날 거라고 말해주었다. 쫄면 하나를 끓였는데 남편과 배부르게 나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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