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까다로운 편이라 친한 친구가 몇 명 없다. 그 중 한명이 10년 전 대학원 때 만나 함께 공부하며 친해지게 된 언니인데 나이가 시어머님과 동갑이다. 처음엔 그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줄 몰라 장난도 치고 반말도 하고 그랬다(다른 동기들은 선생님이라 부르긴 했다). 나중에 나이를 알게 되었을 땐 어쩔 수 있나? 우린 이미 친구인걸. 언니도 내가 다른 학우들처럼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언니라고 부를 때 감 잡았다고 했다. 우린 대학원 시절 내내 붙어 다녔고 졸업하고도 한 달에 한번 만나 영화를 보고 밥을 먹는다.
언니는 나를 만나러 올 때 가끔 내가 좋아하는 나물 반찬을 갖다 준다. 워낙 요리를 잘하고 남을 잘 챙긴다. 언젠가 부터는 겨울만 되면 집에서 하루 종일 고아 만든 곰탕을 2인분정도 비닐봉지에 넣고 꽁꽁 얼려 남편과 먹으라고 갖다 준다. 평생 우리 엄마한테도 곰탕을 얻어먹지 못했는데 직접 만든 곰탕을 친구한테 받다니. 다음엔 내가 만들어 주겠다며 언니에게 고기 삶고 뼈 우리는 법을 물어본 적이 있다. 설명을 듣자마자 바로 대답했다.
“언니 그냥 내가 밥 사줄게.”
곰탕은 시간이 축적된 맛이다. 설렁탕과 곰탕은 고기를 우릴 때 사용하는 부위가 조금 다른데 요즘엔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 곰탕을 끓이기로 마음먹었다면 하루의 시간이 필요하다. 곰탕을 끓이려면 우선 우족, 꼬리, 도가니 등 원하는 부위를 선택한 후 찬물에 몇 시간 담가 핏물과 불순물을 제거한다. 깨끗이 씻은 뼈를 팔팔 끓는 큰 솥에 넣고 20분 정도 끓이면 불순물이 나온다. 다시 물을 버리고 이제 뼈를 찬물에 넣은 후 불을 조절하며 6시간 정도를 끓인다. 이때 마늘, 생강, 양파, 대파를 망에 넣어 함께 끓인다.
곰탕에 넣을 사태나 목심 같은 고기도 함께 넣어 부드럽게 익을 때까지 끓인 후 먼저 건저 내어 잘게 찢어 놓는다. 기름을 중간 중간 걷어나며 끓이다 보면 완성. 처음 끓인 국물은 노란빛이 난단다. 국물을 따라놓은 후 다시 찬물을 붓고(첫 번째보다는 적게) 6시간정도 한 번 더 끓인다. 두 번째가 진국이라 이때 뽀얀 국물이 나온다고 한다. 처음 끓여 받아놓은 국물을 여기에 섞어 한 번 더 넣어 끓이면 완성이다. 보다시피 뼈를 푹 고아 국물을 낸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인스턴트 라면이 그 맛을 내보겠다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하여 1988년 농심에서 사리곰탕면이 출시되었다. 두둥.
라면 표지 오른쪽 상단에 ‘진국의 맛!’이라는 단어가 위에서 아래로 적혀있다. 예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서인지 ‘사리곰탕면’ 단어도 같은 방식이다. 라면이 담긴 뚝배기 뒤로 은은한 황토색이 그라데이션(농도 차이) 되어 있고 진한 갈색 테두리가 라면 봉지에 액자처럼 둘려 있다. 테두리색, 뚝배기색, 사리곰탕면 단어 색이 톤 앤 톤(비슷한 계열의 색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고풍스러운 느낌을 잘 살려냈다. 표지 뒤에는 ‘곰탕은 예로부터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던 고급요리’라고 적혀 있는데 정말 그림만 보면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왜 쓸데없이 라면 봉지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냐고? 사리곰탕면을 먹지 않고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너무 자주 라면을 먹고 있어 조절할 필요가 있다. 사리곰탕면은 몇 번 먹어봤기에 지금 당장 먹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쓰다 보니 아무래도 예전 기억에만 의존하여 글을 쓰면 생동감이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미 점심으로 샐러드와 과일, 고구마를 잔뜩 먹긴 했지만 라면을 반 개 끓이기로 결심했다.
뽀얀 국물에 담긴 얇은 라면 면발. 국물을 한 입 떠먹어 본다. 음. 짭짤하다. 소금을 넣어 먹을 필요는 없겠군요. 호로록 라면을 한 입 먹어본다. 음. 짭짤하다. 언니가 끓여준 곰탕과는 사뭇 다른 맛이긴 하지만 사리곰탕 가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맛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원래 곰탕이나 설렁탕은 깊고 은은한 맛으로 먹는 거 아닌가요?
<곰탕>이라는 제목의 소설도 있다. 영화감독 김영탁이 낸 첫 소설로 구수한 제목과는 달리 스릴러물이다. 어느 날 작가는 어머니가 상에 내온 곰탕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아버지도 곰탕 참 좋아하셨는데. 시간 여행이라는 게 가능하다면, 살아 계셨을 때로 돌아가 이 곰탕 드시게 하면 좋겠다.”
소설 <곰탕>은 그렇게 탄생했다고 한다. 따뜻한 국물을 떠 먹다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청국장이든, 시래기국이든, 곰탕이든. 따뜻한 온기가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감정을 건드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