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와 모과 Sep 22. 2023

18.초코송이


때는 1980년대, 컴퓨터도, 핸드폰도 없던 아이들은 무얼 하며 놀았을까? 비석치기가 있었다. 땅을 파서 납작한 돌들을 세로로 세운다. 거기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서 작은 돌을 던져 세워진 돌을 쓰러뜨리는 방식이었다. 숨바꼭질이나 딱지치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랄랄라 랄랄라 랄라랄랄라~’ 노랫소리가 들리면 전국의 어린이들은 하던 놀이를 멈추고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개구쟁이 스머프>를 보기 위해서였다. 종이, 구슬, 돌 따위를 가지고 놀던 아이들에게 TV에서 방영하는 만화 프로그램은 최고의 오락거리였다. NBC에서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방송한 <개구쟁이 스머프>는 놀라웠다. 


 스머프 마을에 사는 똘똘이, 투덜이, 파파, 스머페트 등의 스머프들과 못된 악당 가가멜이 매번 대결을 펼쳤다. 스머프들은 나무와 돌로 지은 버섯 모양 집에 살았고, 피부색은 모두 파란색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스마프 마을은 뭐든지 다 함께 나누며 함께 사는 공산주의식 공동체 마을이었다. 예를 들면 재단사 스머프 한 명이 모든 스머프 옷을 재단했고, 욕심이 스머프 한 명이 모든 스머프들의 식사를 담당했다. 


잠은 따로 자지만 그 외 나머지 시간은 거의 함께 공유하는 공동체라니. 상상만 해도 섬뜩하다. 하지만 어릴 때는 스머프 마을의 유일한 여자 스머프였던, 따라서 모든 스머프들이 홀딱 반할 수밖에 없던 스머페트가 부러웠다. 


 초코송이 과자를 보면 스머프 마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하지만 초코송이 과자 이미지가 파란 스머프에 고정되는 걸 원치 않기에 송이 이야기를 해보겠다. 친할머니는 양양에 사신다. 양양은 자연산 송이 생산지로 유명하다. 송이는 항암효과, 면역력 향상, 혈관 청소, 피부미용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효능은 몸에 좋다고 언급되는 모든 식재료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문구이기도 하니 너무 혹하지는 말자.


 송이 채취 시기는 8월에서 10월까지 한정되어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끝이다. 매년 10월에 남대천 둔치와 송이산지에서 송이축제가 열린다. 9월 말이나 10월 초는 추석과 맞물려 있어 할머니 댁에 내려가면 송이축제 하는 풍경을 가끔 보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양양에 놀러갔지만 친척이 다 함께 모여 송이를 먹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소나무 숲에서 자라는 송이는 맛과 향이 끝내주지만 인공재배가 어려워 가격이 비싸다. 횡성이 고향인 내 친구 용만이가 한우 대신 삼겹살을 구워 먹듯, 양양이 고향인 아빠 역시 송이버섯 대신 새송이를 구워 드신다.


 송이버섯을 닮은 초코송이는 1984년 오리온에서 만든 과자다. 밑동과 줄기는 비스킷이고 갓은 초콜릿 뭉치로 이루어져 있다. 코코아원료가 4% 들어있는 초코송이는 하나씩 집어먹기 좋은 과자다. 밑동을 손가락으로 잡고 초콜릿 덩어리만 톡 잘라 먹으면 응축된 초콜릿 맛을 느낄 수 있다. 


밑동은 어떡하냐고? 당신 곁에서 함께 과자를 먹고 있는 상대방에게 건네 보라. 아무렇지 않게 초콜릿 없는 비스킷 밑동을 대신 먹어준다면, 그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소보로 빵도 오돌토돌한 소보로 껍질만 떼어 먹는다. 붕어빵도 꼬리는 먹지 않고 몸통만 먹는다. 혀를 쯧쯧 차며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내 곁에는 남은 부스러기를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이 있다.


이기적인 아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손에 음식 묻히는 걸 싫어하는 남편을 대신해 10년이 넘도록 귤과 군고구마 껍질을 까왔던 사람이다. 롯데리아나 버거킹에서 햄버거 세트를 시키면 감자튀김도 대신 입에 넣어준다. 아직 당신이 싱글이라면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해 줄 수 있다. 결혼 생활은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걸 뛰어넘는 매일의 연속이라는 걸.

이전 17화 17. 조리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