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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Sep 27. 2023

19. 포테토칩


오래전 일이다. 아테네에서 블루스타 페리를 타고 산토리니 섬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대우조선에서 만든 배는 넓고 쾌적했다. 갑판 위에 널브러져 코발트색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지친 내가 말했다. 

“감자튀김이나 먹을까?” 

감자튀김은 남편이 김밥, 떡볶이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남편 눈동자가 지중해 햇살을 받아 반짝 빛났다. 

“내가 사올게.” 


남편은 1층으로 내려갔고 한참 만에 돌아왔다. 양 손에 감자튀김이 하나씩 들려있다. 

“왜 두 개나 샀어? 곧 도착해서 점심 먹을 건데?”

 “아니 그게 아니라, 내 말 좀 들어봐.” 


남편 설명이 시작되었다. 

남편은 점원에게 “포테이토, 플리즈”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점원이 “왓?” 이라고 물었다. 

못 들었나 싶어 남편은 좀 더 큰 소리로 포테이토 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또다시 왓? 

발음에 문제가 있나 싶어 혀를 굴리며 다시 한 번 포~테~이~토 라고 했더니 점원도 와~앗 하더라고 했다. 

남편이 난감해하며 우물쭈물하자 갑자기 점원이 손가락 하나를 확 내밀며 ‘원?’ 이라고 물었다고 한다. 

아하. 그제야 말뜻을 이해한 남편은 민망한 마음에 손가락 두 개를 내밀며 외쳤다. “투” 


 암스테르담에서 먹었던 감자튀김도 기억난다. 벨기에에서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넘어오는 중이었다. 기차 안에서 남편 배낭을 도둑맞았다. 배낭 안에는 귀중품과 현금이 들어있었다. 우리는 우울하게 숙소에 도착했다. 나는 침대에 쓰러져 한참을 울었다. 남편은 태평하게 낮잠을 잤다. 


배가 고파 산책을 나갔고 유명하다는 감자튀김 집에서 튀김을 샀다. 종이를 고깔 모양으로 말아 그 안에 큼직한 감자튀김을 넣은 후 소스를 잔뜩 부어주는 방식이었다. 그토록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감자튀김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소스도 환상적이었다. 밤마다 도둑맞은 배낭을 떠올리며 울었지만, 다음날이 되면 퉁퉁 부운 눈으로 어김없이 감자튀김 가게 앞에 줄을 섰다. 감자튀김 위에 얹을 소스를 고르며 슬픔은 차츰 옅어져갔다. 


 강원도에서 감자를 먹으며 자라난 아빠는 감자를 좋아한다. 감자를 강판에 쓱쓱 갈아 소금을 넣고 프라이팬에 지글지글 구워내는 감자전을 제일 좋아하지만, 옹심이나 감자떡도 없어서 못 먹는다. 아빠가 어렸을 땐 밭에서 캐다 상처가 난 감자들을 썩혀 감자떡을 만들었다. 항아리에서 몇 달 동안 감자를 발효시킨 후 녹말을 걸러냈는데, 감자가 썩으면서 거무튀튀해졌기에 감자떡도 거무스름한 색이 되었다고 한다. 아빠는 청국장처럼 쿰쿰한 감자떡 맛을 아직도 그리워한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빠른 수확이 가능한 감자는 오랫동안 인류의 삶을 책임지던 구황작물이었다. 1885년에 고흐가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은 탄광촌에서 일하는 식구들이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은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찐 감자와 따뜻한 차가 전부이지만, 힘든 노동을 끝내고 온 이들에게는 귀중한 식사다.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먹었던 감자는 이제 즐거움을 위한 재료로 변신 중이다. 


 어느덧 우리는 찐 감자보다 감자튀김과 감자칩이 더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1980년 농심에서 국내 최초 출시된 포테토칩은 미국산 생감자가 90%나 들어있다. 포장지 뒷면에는 감자를 깨끗하게 씻은 후 껍질째 썰어 튀겨낸다고 적혀 있다. 


슈퍼에서 구입한 60g짜리 포테토칩은 1500원. 생감자 반개(100g) 가격이 600원 정도지만 감자를 튀기는 기름 값도 고려해야겠지. 포장지 뒷면에 표기된 원재료명에는 감자, 팜유, 조미염분이 적혀있다. 가장 적은 첨가물이 들어 있는 과자라 할 수 있다. 


천하 독존하던 포테토칩은 8년 뒤 등장한 오리온 포카칩의 견제를 받게 된다. 그 뒤로 스윙칩, 예감, 허니버터 칩 등 포테포칩과 맞짱을 뜨려는 과자들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건장하다. 짭짤하면서도 바삭한 포테토칩은 술 마실 때 좋은 안주가 되기도 한다. 포테토칩을 싫어하는 지인은 한 명도 보지 못했으니 굳이 내가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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