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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Sep 20. 2023

17. 조리퐁


남편은 음식이든 과자든 손으로 먹는 걸 싫어한다. 손가락에 양념이 묻으면 온통 신경이 손끝에 집중되어 맛이 반감된다는 논리이다. 치킨은 젓가락으로, 피자는 나이프와 포크로 해결한다. 밖에서 새우깡을 먹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손으로 먹지만, 집에서는 젓가락으로 하나씩 집어 먹는다. 귤이나 군고구마도 까줘야 먹는다. 하물며 조리퐁이라니 말 다했지. 나는 손으로 잘 집어먹는 편이지만 조리퐁만큼은 쉽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리퐁은 손으로 먹으라고 만든 과자가 아니다. 


 조리퐁의 태생을 알면 이해할 수 있다. 1972년 크라운에서 조리퐁을 처음 출시했을 때, 조리퐁은 과자가 아닌 고급 시리얼이라는 마케팅을 펼쳤다. 그 당시 산도 6개가 30원이었는데, 조리퐁은 한 봉지에 50원으로 비싼 과자에 속했다. 과자가 아닌 밥 대용으로 먹는 시리얼로 조리퐁을 홍보했으니 비쌀 만하다. 시리얼은 우유에 타 수저로 떠먹는 게 정상이다. 조리퐁을 시리얼로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조리퐁은 뭘로 만들었을까? 조리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색도 모양도 보리와 비슷하다. 원재료명에는 밀쌀(미국산)로 적혀있다. 밀과 쌀을 섞었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밀쌀은 밀의 낟알에서 껍질만 쏙 벗겨낸 알곡을 뜻한다. 이 알곡을 통째로 높은 압력에 튀기면 조리퐁이 된다. 곱게 갈면 우리가 잘 아는 밀가루가 된다. 밀은 벼과에 속하니, 벼와 비슷하게 생겼겠거니 상상하면 된다. 


밀쌀을 통째로 튀겼기에 곡물에 담긴 영양소 손실이 적고 건강에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문제는 맛이다. 압착 귀리(오트밀)가 맛있다고 주장한다면 할 말 없지만, 솔직히 순수하게 튀긴 밀쌀을 돈 주고 사먹을 소비자가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회사도 이를 보안하기 위해 밀쌀에 단맛을 입혀 건조했고 그제야 시리얼이 시리얼다워졌다. 


 조리퐁을 나무 스푼으로 떠서 한 입 먹어본다. 1970년대 대중에게는 세련된 맛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내게는 오히려 투박한 맛으로 다가온다. 살짝 그을린 뻥튀기 맛이라고나 할까? 잘나가던 조리퐁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1988년 농심이 켈로그와 손을 잡고 ‘콘푸로스트’를 내놓은 거다. 콘푸로스트를 먹으면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는데 먹지 않을 어린이가 누가 있으랴. 그 후로도 다른 질감과 맛을 지닌 시리얼들이 속속 등장했지만, 다행히 회사는 조리퐁을 지켜내었다. 마시멜로우를 넣은 조리퐁도 새로 나왔고, 조리퐁 라떼도 판매한다. 조리퐁을 잔뜩 올린 음료도 카페에서 볼 수 있다. 조리퐁이 다시 돌아왔다.


 

 조리퐁 포장지에는 하트 테두리 안에 조리퐁이 잔뜩 들어 있는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카드놀이를 할 때 쓰이는 스페이드(spade) 모양을 따왔다고 한다. 스페이드는 창 모양이 그려진 검은색 카드이며 무늬 모양의 어원은 검이다. 죠리(jolly)는 ‘쾌활한, 즐거운’ 이라는 뜻이며 ‘퐁’은 뻥튀기 소리를 가져온 것이다. 퐁퐁 터지는 즐거운 뻥튀기 소리라니. 회사는 조리퐁 봉지에 사회적 마케팅을 입혔다. 봉지 하단에 ‘실종아동 찾기 캠페인’이 적혀 있고 뒷면에는 아동의 과거 사진과 현재 추정 사진이 실려 있다. 이런 종류의 마케팅은 언제라도 환영이다. 


 조리퐁의 독특한 맛을 좋아하지만, 과자로 먹기에는 너무 번거로워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우유에 타서 시리얼로 먹으면 되지 않느냐 묻는다면, 나는 우유도, 시리얼도 싫어하는 사람이다. 내가 까다롭게 굴든 말든 조리퐁은 나보다 긴 세월을 견뎌왔고, 앞으로도 오래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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