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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Sep 16. 2023

16. 인디안밥


당신이 모르는 진실을 하나 알려주겠다. 우리 식탁은 옥수수로 포위되어 있다. 오븐에 구운 닭가슴살을 먹든, 노르웨이산 연어를 올린 덮밥을 먹든, 삽겹살을 구워먹든, 소고기가 든 햄버거를 먹든, 버터 바른 식빵을 먹든 당신 몸 안에 옥수수도 함께 들어오게 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실마리는 물고기와 가축이 먹는 사료에 있다. 닭이나 소는 풀을 뜯어먹고 산다. 자유롭게 들판을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먹고 살던 동물에게 인간은 언젠가부터 곡물사료를 먹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다양한 곡물이 아닌 저렴한 옥수수 사료만을.


소가 풀을 먹으면 풀 속의 베타카로틴 때문에 버터는 노란색을 띤다. 소가 옥수수를 먹으면 버터는 흰색이 된다. 시중 버터가 노란색인 건 식용 색소를 넣기 때문이다. 버터는 죄가 없다. 버터가 몸에 나쁘다고 하는 건 올바른 먹이를 섭취하지 못한 동물이 나쁜 지방을 우리에게 주기 때문이다.


고기와 유제품을 먹지 않으니 괜찮다고? 맥주, 탄산음료, 피자, 아이스크림, 초콜릿, 잼, 시리얼, 젤리 등에도 옥수수는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식용유는 옥수수를 원료로 만들어진다. 접착제, 염료, 플라스틱, 샴푸, 화장품 같은 생필품도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옥수수를 많이 먹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 따질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가 옥수수에 포함된 오메가 6을 과다섭취 하는 데 있다. 오메가 3와 오메가 6의 비율이 균형 있게 유지해야 좋은데, 현대 식단에서는 그 비율이 한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다. 식단이 불균형해지면 몸은 아프기 마련이다. 게다가 GMO(유전자변형 농수산물) 옥수수까지 침투하고 있으니 산 넘어 산이다. GMO 식품의 판단 여부는 각자의 몫이다. 나는 다만 자연 그대로에서 채취한 옥수수, 콩, 토마토를 먹고 싶을 뿐이다.


 옥수수를 피해서 살 수 없는 시대가 왔다. 나는 기본 식재료를 바꾸는 방식으로 옥수수에 맞서고 있다. 콩기름, 참기름, 해바라기 오일, 포도씨유 등의 기름에는 오메가 6가 많기에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 집에는 네 종류의 기름밖에 없다. 들기름, 올리브유, 현미유, 코코넛 오일. 오메가 6가 적게 포함되었거나 오메가 3가 풍부한 기름이다. 이 기름으로 볶고, 튀기고, 굽고, 드레싱을 한다.


버터는 방목한 소에서 짠 우유로 만든 것을 구입하고, 달걀 역시 방목한 닭에서 나온 걸로 산다. 고기는 구하기 쉽지 않다. 인터넷으로 방목하여 키운 소고기를 구매할 수 있지만 비싸다.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찾기 어렵다. 집에서 매일 혹은 자주 먹는 식재료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확인하지만 밖에서는 웬만하면 신경 쓰지 않는다. 신경을 쓰는 순간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영화관에서 남편이 산 카라멜 팝콘이 대부분 GMO 옥수수로 튀겼다는 걸 알면서도 맛있게 먹는다. 식당에서 시킨 순두부 대부분이 GMO 콩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지만 역시 즐겁게 먹는다. 내 몸이 그 정도는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한다. 몸에 안 좋다고 근심 걱정하면서 먹으면 건강에 더 해롭다.


 1976년 농심에서 출시된 인디안밥은 옥수수가 74% 들어있는 과자다. 옥수수를 삶아 한 알 한 알 누른 뒤 튀겨내면 인디안밥 완성. 다른 과자에 비해 비교적 첨가물이 적다. 담백하면서도 고소하여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다. 과자가 너무 자잘해 손으로 먹다보면 흘리기도 할 뿐더러 손가락도 끈적거려지니 처음부터 수저로 떠먹기를 권한다.


왜 인디안밥일까? 미국 원주민의 주식은 옥수수였다. 튀긴 옥수수 이름을 뭐라 지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인디안이 매일 먹는 식재료니 인디안밥으로 결정한 게 아닐까 싶다. 워싱턴에 있는 국립 인디언 박물관에는 인디언의 역사가 잘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인디언 고유 음식이 세계적으로 어떻게 상품화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코너도 있는데, 그 가운데 인디안밥 포장지도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다. 2004년 박물관을 개장할 때부터 포장지를 전시 했다고 하는데, 농심 측에서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어렸을 적 인디안밥은 과자보다는 벌칙으로 더 유명했다. 다 같이 둥글게 모여 앉아 게임을 하다 걸리면, 걸린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앞쪽으로 상체를 길게 늘린다. 남은 사람들은 ‘인디안~~밥’이라고 소리치며 엎드린 사람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마구 내려친다. 대개 살살 치는 시늉만 하지만 누군가는 앙심을 품은 듯 호되게 치는 경우도 있다. 그 시절 벌칙 받던 기억을 떠올리니 갑자기 등이 아파온다. 누가 내 등짝을 팔꿈치로 찍어 눌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언젠가 잡히기만 해라. 인디안밥을 입안에 통째로 부어버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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