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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Sep 14. 2023

15. 롯샌


늦은 오후, 차를 마실 시간이다. 어떤 차를 마실지에 따라 도구가 달라진다. 생차를 마시기로 한다. 여유가 있으니 표일배 대신 개완을 쓰자꾸나. 몇 년 익은 이무순시흥 추첨 1편을 꺼낸다. 차판을 식탁 위에 놓고 찻물을 끓인다. 개완에 찻잎을 알맞게 넣는다. 다우(찻자리 친구)인 도자기 올빼미도 차판 한 켠에 놓는다. 


개완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첫 번째 우린 물은 재빨리 찻잔에 부어 세차 겸 예열을 한다. 두 번째 물을 개완에 따른다. 찻잔에 있던 물은 차판에 버린다. 개완에 우려진 찻물을 찻잔으로 옮겨 담은 후 한 모금씩 마신다. 회감이 좋다. 홀로 팽주 노릇을 하며 차를 우리다 보면 허기가 진다. 이때 조용히 꺼내드는 건 롯데샌드. 내게 롯데샌드는 혼자 먹는 간식이다.


 롯데샌드는 천천히 음미하기 좋은 과자다. 책을 읽다 지쳤을 때, 글을 쓰다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을 때, 낮잠을 자고 일어날 때면 차를 마신다. 수동 그라인더에 에티오피아나 예가체프 커피콩을 갈아 드립으로 내리거나, 그물 망에 아쌈이나 잉글리쉬 블랙퍼스트 같은 홍차 잎을 넣고 찻잎을 우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음이 느긋한 날엔 차판을 꺼내 보이차를 마시기도 하고,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하는 일이 있을 땐 물만 끓여 냉장고에 넣어 둔 생강청이나 매실액을 타먹기도 한다. 이도 저도 귀찮을 땐 스틱으로 포장된 커피빈이나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오설록 티백으로 대신한다, 평소에는 차만 마시지만 간혹 무언가를 먹고 싶을 때 함께 하는 티 푸드는 롯데샌드다.


 과자 6개가 두 봉지에 나눠져 들어있는 롯샌은 하루에 한 봉지씩 이틀에 걸쳐 먹기 좋다. 과자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상큼 발랄한 파인애플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동그란 샌드 한 면에 새겨진 돋을새김 문양은 또 어떠한가. 로코코 양식을 차용한 듯 화려하고 우아한 무늬다. 과연 보기에도 아름다고 먹음직스럽기도 하다. 롯샌은 어둡고 우울한 빛을 띠는 수색(우린 차의 색깔)에 맞서 찻자리의 분위기를 경쾌하게 바꾸어 준다. 


 1977년 롯데에서 만든 롯데샌드는 이름부터 확고한 의지를 보인다. 샌드하면 롯데라는 뜻이겠지. ‘껌이라면 역시 롯데 껌’ 씨엠송이 귓속에 울려 퍼졌다가 사라진다. 씨엠송에 관해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작년에 구로디지털단지역에 있는 국비지원 교육센터에서 코딩과 머신러닝을 배웠다. 


프로젝트 2차 때 팀원 중 한명이 던킨 도넛을 사왔다. 나눠 먹으며 쉬고 있자니 다른 팀 몇 명이 함께 수다에 동참하려고 다가왔다. 나는 도넛을 베어 물며 자연스럽게 ‘커피 앤 도넛. 던킨 도넛~’ 씨엠송을 흥얼거렸다, 그 순간 젊은 친구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뭐에요?” 그 말을 듣고 더욱 당황해진 나는 목청을 가다듬고 한 번 더 씨엠송을 따라했다. 


“너희 커피 앤 도넛 씨엠송 모르니?” 


아, 그들은 너무 젊은 세대였던 것이다. 팀마다 돌아다니며 확인한 결과 20대 초 중반 친구들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고, 커피는 도넛의 품을 벗어난다. 


 그리고 롯데샌드도 더 이상 롯데샌드로 부를 수 없다. 롯데에서 만든 샌드지만 롯샌으로 거듭난 롯데샌드에게 묻고 싶다. 왜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가려 하는가? 아무리 젊은 세대들이 줄인 말을 즐겨 쓴다 해도 이건 아니지 않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롯데샌드를 롯데샌드로 부르지 못하는 시대가 왔다. 


몇 년이 지나면 조카 하율이는 무럭무럭 자라 청소년이 되고, 또 몇 년이 흐르면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게 묻겠지. 


“고모 할머니, 롯데샌드가 무슨 과자에요? 혹시 롯샌 말하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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