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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Sep 12. 2023

14. 마가레트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옛날에는 성탄절 새벽이 되면 교회에서 청소년과 청년들이 모여 교인들 가정을 집집마다 방문해 새벽송을 불렀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 중 하나였으며, 청소년에겐 공식적인 외박(교회에서 밤새 놀기)이 허락되는 가슴 뛰는 날이기도 했다. 


우리는 새벽송 순례를 하기 직전 교회에서 짧은 찬송 세 곡을 연습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 ‘ 저들 밖에 한밤중에’. 


매년 똑같은 레퍼토리였지만 가사를 틀리는 사람은 매번 있었다. 밤 12시가 지나면 봉고차를 탔고, 차 안은 늘 꽉꽉 찼다. 컴컴한 새벽, 아파트 복도에서 다른 교회 새벽송 팀을 만나면 가볍게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성도 집 앞에 도착하면 우리는 작은 목소리로 고요한 밤을 불렀다. 잠시 후면 집 안에 불이 켜졌고, 곧 현관문이 열렸다. 


간혹 옆집에서 자기네 교회에서 온 줄 알고 문을 열었다가 얼굴을 확인하고 다시 닫기도 했다. 잠에서 막 깨어나 새벽송을 듣는 교인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행복함이 섞여 있었다. 찬양이 끝나면 집 안에 들어가 따뜻한 어묵을 먹기도 했지만, 주로 우리가 받은 건 과자가 잔뜩 담긴 봉지였다. 두 시간 정도 새벽송을 돌고 나면 봉고 안은 과자 봉지로 가득 찼다.


 새벽 3시쯤 교회에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우리들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우선 봉지에 담긴 과자부터 한곳에 풀어 놓았다. 온갖 종류의 과자가 쏟아져 나왔다. 그 중 가장 많았던 건 초코파이와 마가레트였다. 낱개별로 포장되어 종이 박스에 담겨있던 마가레트는 맛있기도 했지만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풍겼기에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기분이 좋았다. 나는 마가레트를 좋아했고 평소에도 종종 먹었지만, 성탄절이라고 해서 입맛이 변할 리가 없어 그날은 특히 더 많이 먹었다. 지금이라면 마가레트 보다는 오뜨를 훨씬 더 좋아했을 테지만 그때는 오뜨가 출시되기 전이었다.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과자를 실컷 까먹으며 과자를 종류별로 하나씩 비닐봉지에 넣어 포장했다. 성탄절을 맞아 주일학교 어린이에게 줄 선물용 과자였다. 과자를 풍성하게 넣어 선물을 잔뜩 만들어도 여전히 과자가 남았다. 남은 과자는 어른 예배가 끝난 후 다 같이 나눠 먹었다. 어린 시절 마가레트를 너무 많이 먹었기에 지금은 누군가 권해도 주저하는 과자가 되어 버렸다. 


  1987년 롯데에서 만든 마가레트는 생김새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과자다. 윗면이 격자무늬로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있어 막 오븐에서 구워 낸 것 같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쿠키인데, 잘못 먹으면 겉 부분과 안의 내용물이 분리될 위험이 있다. 나는 땅콩 조각이 들어있는 내용물보다 바깥 부분을 좋아해 일부러 테두리만 조금씩 베어 물면서 분해를 시도한다. 식빵 테두리만 뜯어 먹고 속살을 남겨놓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마가레트(Margaret)는 영미권에서 쓰이는 여자 이름으로, 매기(Maggie) 혹은 메그(Meg) 라는 애칭으로도 종종 불린다. 매기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뇌는 자동적으로 <매기의 추억> 노래를 틀어준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매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가사 속 주인공 매기는 1841년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조지 존슨이라는 시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들은 1864년에 결혼했다. 1년 뒤, 매기는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조지는 아내를 생각하며 시를 썼고,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찾아가 이 시에 알맞은 멜로디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매기의 추억>은 많은 이들이 즐겨 부르는 가곡이 되었다. 쓰고 보니 마가레트 과자에 어울리는 사연은 아니다. 죄송하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그래.  <날아라 호빵맨>의 ‘마가렛’ 공주나 <심슨 가족>의 ‘매기’ 심슨도 동일한 이름이다. 당신의 기억을 후자의 내용으로 덮어씌워 주기를 요청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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