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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Apr 11. 2024

뒷모습


아빠는 감자를 깎고 엄마는 쪽파를 다듬는 중이다.

식탁에 앉아 부모님이 점심 준비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늘 식사를 함께 차리신다.

아름답다.     


두 분의 인생이 스쳐 지나간다.

고단했지만 의미 있는 삶이었다.

부모님은 삶으로 신앙을 보여 주셨고 그 모습에서 나는 신이 계심을 확신했다.     

교회와 사택이 붙어 있었기에 기억속의 아빠는 늘 집에 계셨다.

집이 곧 일터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성도들이 다녀갔다.

우리 집은 공적 공간이었다.

내 방은 교회 모임 장소이자 주일 학교 공과장소였다.     


다정한 아빠는 엄마가 시키는 일은 뭐든 했다.

식료품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나를 학교에 데려다 줬다.

아빠는 1980년대에 보기 드문 남성이었다.

아빠는 한 번도 여성 차별적인 언어를 쓰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가 나를 단속했다.

치마 짧은 거 입지 마라. 늦게 다니지 마라. 여자가 그러면 못쓴다.

성도들이 지켜보고 있기에 엄마는 나를 단정하고 예의바른 여자로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엄마 아빠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늘 같은 공간에 있었다.

그게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두 분이서 티격태격 할 때도 있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엄마는 반드시 몇 시간 안에 아빠와 화해했다.      

우리에게도 늘 당부했다.

누구와 싸우더라도 잠들기 전까지는 꼭 화해를 해야 한다고.

엄마의 가르침을 온몸에 새긴 나는 다른 사람과 싸울 일을 만들지 않는다.

싸우면 내 마음이 더 괴롭다는 걸 어릴 때 이미 깨달았다.     


마음먹은 일은 무조건 하고 보는 아빠 때문에 엄마가 맘고생이 많긴 했지만, 두 분의 뒷모습을 보니 엄마가 부럽다.

난 항상 아빠와 결혼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선수를 쳤다.

지금도 나는 아빠가 너무 좋다.     


감사하게도 아빠 성품을 꼭 닮은 사람과 결혼했다.

온 우주가 나를 도왔다.

나도 남편과 나란히 부엌에 서서 매끼마다 함께 음식 만들 날을 기다린다.

100살까지 산다면 50년은 그렇게 함께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일상에서 엄마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일은 쑥스럽고 조심스럽기만 했다사진을 찍는다 해도 무슨 책을 내거나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다만팔순을 넘긴 엄마의 어떤 표정과 자태가 문득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남들에겐 평범한 노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엄마가 겪어온 삶의 내력과 고통의 속내를 아는 나로서는 엄마의 표정 하나에도 무감하기가 어렵다

오랜 시간의 빛과 그림자를 견뎌내면서 생겨난 그 무늬와 질감을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예술의 주름들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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