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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Apr 18. 2024

커피


여행지에서 커피를 마실 때마다 남편은 묻는다.

왜 전망 좋은 카페에서는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없지?

남편 말에 반박하고 싶지만 맞는 말이다.

바다, 강, 호수가 보이는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맛보는 건 길을 걷다 동전을 줍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풍경이란 강력한 무기가 있기에 커피 맛은 신경 쓰지 않는 걸까?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때마다 아쉽다. 

커피가 조금만 더 맛있으면 얼마나 좋아.     

경치를 포기하고 맛있는 커피를 선택하면 되잖아.

예를 들면 이런 거.

강릉 바다가 보이지 않는 박이추 커피를 갈 것이냐 바다가 보이는 수많은 카페 중 한 군데를 선택할 것이냐.

매번 고민하지만 매번 경치가 이긴다.

난 강릉 주민이 아니니까. 언제 또 바다를 볼지 모르니까.

거봐. 그러니까 카페 주인들이 커피 맛은 신경쓰지 않는 거라고.    

 

산미 있는 커피를 좋아한다.

파나마 게이샤처럼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신맛을 원한다.

아니면 고소하고 부드럽거나.

집에서 퀼리티 높은 원두만 구입해 마시다보니 맛의 기준치가 높아진다. 

웬만한 카페는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다.

 

멋진 풍경을 보며 커피를 마시며 맛에 신경 쓰지 않으려 애쓴다.

기준치를 떨어뜨리려 한동안 저렴한 원두를 산 적도 있다.

신기하게 그 시기에는 어느 카페에 가도 커피가 맛있더라.

몇 달간 아침마다 맛없는 커피를 마시다보니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싶어 그만두었다.     


며칠 전 공덕에 갈 일이 생겼다.

일을 처리한 후 프릳츠에 들려 커피를 마셨다.

야외 자리에 앉았는데 주변 풍경은 온통 낡은 건물 뿐이었다.

차들이 도로 위를 달리는 소리도 들린다.

롱 블랙을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맛있구나.

떨어진 빵가루를 먹으려고 참새가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도 변함없는 풍경이었다.

좋은 커피가 좋은 기분을 만든다.     


내게 커피는 애증의 음료다.

건강을 생각하면 커피를 끊는 게 맞다.

발연점을 낮춰 약배전한 원두를 고른다 해도 곰팡이 균이라는 문제가 남아있다.

집에서는 곰팡이 균을 제거한 원두를 구입하지만 밖에서 마시는 커피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커피를 끊으면 삶에서 집착하는 대상이 하나 줄어들게 되니 그만큼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예전에 끊어보니 그렇더라.


건강에 미치는 커피 한 잔의 해로움과 커피를 마시며 느끼는 즐거움을 고민하다 보면 번번이 후자가 이긴다. 

커피를 포기 할 수 없다면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살고 싶다.     


     

커피가 얼마나 달콤한지

천 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고,

머스커텔 와인보다도 부드러워.

커피의 맛이

얼마나 달콤한지

바흐 커피 칸타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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