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와 모과 Aug 14. 2024

외모 관리와 시간


친구에게 나이가 들수록 피부와 머릿결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또 다른 친구는 나이가 들수록 좋은 옷을 입어야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수긍이 되는 의견이었다.

어떤 친구는 나이가 들수록 신발과 가방을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놓칠뻔한 포인트였다. 

(개인적으로는 반짝이는 눈빛과 바른 자세가 없다면 이 모든 게 별 소용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보니 친구들이 언급한 것들 모두가 중요했다. 

외모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예뻐지는 건 사실이다. 

타고난 미인 미남이 아니라면 40대 부터는 관리가 필요하다.

타고났다고 해도 관리하면 더 나아진다. 


관건은 ‘관리’ 범위를 어디까지 정할 것이냐에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가꾸려면 꽤 많은 시간(과 돈)을 바쳐야 한다. 

외모에 쏟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요즘 내가 관리하는 범위는 ‘머릿결’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숱 많은 머리 차분하게 유지하기’다.


숱이 없어 고민하는 지인들이 있기에 숱이 많다고 불평하지는 않겠다. 

있는 건 없앨 수 있지만 없는 걸 있게 하기는 어려우니까. 

탈모가 시작된 지인 한 분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세상에 털 빠졌는데 안 불쌍한 짐승 없다.”


털이 수북한데 정리를 안 하면 지저분해 보인다. 

깔끔함을 유지하려면 관리를 해야 한다. 

미용실에 안 간지 6년이 되어간다. 

시간과 돈이 아까워 끊었다. 

남편이 몇 달에 한번 집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숱을 쳐 줬다. 

올해는 머리를 더 길러볼까 해서 한 번도 자르지 않았다. 

남편은 미용기술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 숱만 쳐달라고 해도 머리카락을 함께 잘라버린다. 

머리를 기르려 숱도 그냥 놔뒀더니 사자머리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다. 


돈을 지불하면 찰랑찰랑한 생머리를 만들 수 있다. 

내 머리는 최소 20만원이 든다. 찰랑거림은 1년간 유지된다. 

윤기나는 모발을 덤으로 원한다면 3달에 한번은 영양을 넣어줘야 하는데 5만원은 줘야 한다. 

다이슨 에어랩이나 에어스트레이트를 살까도 고민했다. 

다이슨을 쓰는 지인마다 일심동체로 최고의 제품이라며 적극 권했기 때문이다. 마치 영업사원처럼. 

60만원이라는 가격 앞에서 마음을 접었다.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면 샀을지도 모른다. 


해결책은 유튜브에서 찾았다. 

그동안은 고개를 숙이고 머리카락을 뒤집어 말렸다. 

드라이기는 거치대에 놓고 머리만 움직이면 되었기에 간편했다. 

알고보니 머리 말리는 방법이 잘못되었다. 

머리카락을 거꾸로 말리면 큐티클이 닫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열려버린다. 

따라서 머릿결이 푸석해진다. 머리카락 사이도 붕 뜨게 된다(머리숱이 없다면 이렇게 말리는 게 정답이다). 


머리를 말릴 땐 똑바로 서서 드라이기를 머리 위로 높이 쳐들고 바람을 위에서 아래로 보내야 한다. 

팔이 떨어질 것 같아도 참아야 한다. 

드라이기를 목 뒤쪽으로 보내 아래에서 위로 바람을 보내며 말리고 싶겠지만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유튜버 전문가님이 시키는 대로 머리를 말려보았다. 

머리카락 겉 부분을 들고 안쪽 머리카락부터 말려야 한다. 

머리를 말리는 10분 동안 벌을 서는 기분이었다. 

팔이 후들거려 두 번은 쉬어야 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한 달 전에 드라이기를 가벼운 걸로 바꿨다는 거다. 


머리를 말리기 전 헤어 오일도 머리끝에 발라주었다. 

거친 피부에 영양 크림을 바르는 것과 같은 원리다. 

뜨거운 바람으로 머리를 말린 후에는 찬바람으로 머리카락을 식혀 줘야 한다. 

열이 오른 피부에 오이 팩으로 진정시키는 것과 같은 원리다. 

결과는 놀라웠다. 사자머리가 고양이 머리처럼 차분해졌다. 

머릿결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렇게 간단한 원리를 40년이 지나서야 알다니. 

그동안 나는 무슨 책을 읽어 왔던가. 헛되고 헛되도다. 

한편으로는 한낱 머리카락을 위해 이렇게까지 공을 들여야 할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등의 대본을 쓰고, 뉴욕 타임즈 편집장을 지낸 노라 에프론도 외모 앞에서는 전전긍긍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다.

 60대 중반에 쓴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책에서 작가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노화라는 댐이 무너지지 않도록 손가락으로 막는데 무지무지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정도다. 난 성형수술만 빼고 거의 모든 관리를 받아봤다. 입속에 넣는 충전재를 모두 흰색으로 바꿨다. 가끔씩 피부과에 가서 피하 주사기로 레스틸렌이라는 걸 턱에 주입해 늘어진 피부를 팽팽하게 펴준다. 이마에 파인 주름을 펴려고 보톡스도 두 번 맞았다. 1주일에 8시간, 그리고 미래에는 더 늘어날 시간. 내가 70살이 되면 관리를 하는 시간이 2배로 늘어날 것이다.’


지성이 넘치는 세계적인 작가도 미모 관리를 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보니 위안이 된다. 

나는 에프론만큼 거창한 외모를 원하는 건 아니다. 

그저 깨끗한 손톱과 발톱, 차분한 머릿결, 부드러운 피부, 평평한 뱃살, 적당한 근육을 바랄 뿐이다. 

매일 기본만 관리할 뿐인데도 시간이 부족해 이 글을 세 번에 나눠 써야 했다.      



세칭 미모 관리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몸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붙여야 하는 보수공사를 뜻한다가령 과거에 나를 뻥 차버린 놈과 우연히 마트에서 마주쳤다고 치자그때 통조림 진열대 뒤에 숨을 필요 없이 당당하게 나설 수 있도록 도와준 기본 관리를 말한다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노라 에프론     

매거진의 이전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