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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의정부 조식

by 유자와 모과
의정부빵집.jpg


화창하고 무더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8월 중순이 넘었건만 여름은 조금도 힘을 잃지 않았다.

모과가 하루 휴가를 냈다. 모처럼 밖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장소는 의정부 동네 빵집.

빵 종류가 많고 맛있다고 한다.


집에서 의정부까지 한 시간 걸린다.

한창 막히는 시간에 길을 나섰으나 서울 바깥쪽으로 나가기에 문제없다.

반대쪽 차선은 안타까울 뿐이다.

차로 출근하는 모과도 매일 사당 부근에서 안타까움을 겪고 있다.


북한산을 바라보며 차는 시원하게 나아간다.

아침을 먹고 근처 음악 도서관과 미술 도서관을 방문할 예정이다.

아침 먹으러 가는 김에 들리는 거라 큰 기대는 없다.


몇 시간 뒤 우리는 음악 도서관에서 LP 판과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으며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미술 도서관에서 커다란 도록을 펼쳐보며 신이 나게 된다.

저녁이 되어서야 하루가 짧음을 아쉬워하며 마지못해 도서관을 나서게 된다.

가을에 똑같은 코스로 한 번 더 오겠다고 다짐하며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하지만 빵집을 향해 가고 있는 저 순간은 오직 빵 생각밖에 없다.


빵집에 도착하니 오전 9시. 오전 7시부터 문을 연다.

길가 옆에 차 두 대를 세울 수 있는 자리가 있다.

통창이라 시원하게 내부가 보인다.

테이블 5개. 가족 손님이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브랜드 빵집처럼 세련된 인테리어는 아니지만 깔끔하다.

한쪽 벽에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찰리 채플린과 소녀 한 명이 그려져 있다.

우리도 자리 하나를 맡는다.


어느 블로거가 소개한 것처럼 빵 종류가 정말 많다.

이미 많은 빵이 구워져 나왔다.

막 오븐에서 꺼내져 트레이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빵도 있다.

가게 주인은 소라 빵을 진열하는 중이다.


가게 중앙에 빵이 놓인 널따란 진열대가 있다.

벽면을 따라서도 ㄱ자로 진열대가 있다.

피자빵, 대파빵, 크로크무슈, 맘모스, 만주, 에그 타르트, 깜빠뉴, 모카빵, 스콘, 도너츠, 카스테라, 슈크림빵, 마핀, 약식, 모닝빵, 햄버거, 샌드위치, 누네띠네, 파운드 케이크, 피낭시에, 메론빵, 브라우니, 고구마빵, 크로와상, 초코파이, 베이비슈, 단팥빵, 쑥찰빵. 이하 생략.


잘 팔리는 빵은 세분화까지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소금빵이라 하면 기본 소금빵, 쑥 소금빵, 먹물 소금빵으로 나뉜다.

선택지가 많으니 새로운 걸 시도하기보다 어떤 맛인지 추측 가능하고 평소 좋아하던 제품을 고르게 된다.

우리가 고른 건 찹쌀 도너츠 한 개, 생크림을 잔뜩 얹은 소보로 한 개, 마늘빵 한 덩이다.

빵들이 다들 큼직하다.

커피 두 잔도 시킨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을 살펴본다.

식빵류를 사가는 사람이 많다.

커피가 나왔다. 먹어볼까?


마늘빵을 잘라 한 조각 입에 넣는다.

마늘과 버터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맛있다.

도너츠도 맛있고 소보로도 맛있다.

모두 모두 맛있다.

맛도 맛이지만 가격은 더 놀랍다.

요즘 빵집을 생각하면 여기는 5년 전 가격이다.

값도 저렴한데 맛도 좋으니 최고의 빵집이라 할 수 있다.

커피까지 맛있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모과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어쩌다 보니 주제는 동생이다.

둘 다 남동생이 있다.

결혼했고 아이도 두 명씩 낳았다(정말 고맙다).

남동생들이 잘 컸다.

성실하게 살았고, 살고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노력하고 애를 써서 번듯한 가정을 꾸렸다.

동생들을 생각하면 자랑스럽고 예쁘다.


모과는 말한다. 우리 하는 걸 보고 동생들이 자극받는 부분도 있을 거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살림을 하고 모과는 직장에 다니며 대학원 공부를 했다.

몇 년 후 동생들도 가장의 역할을 짊어진 채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모과가 자격증이나 승진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면 동생들도 뭐든 따라한다.

내가 온갖 책을 쌓아놓고 읽고 있으면 동생들도 뭐든 따라 읽는다.


가까운 사람이 뭘 하느냐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닮아간다.

가족과 친구는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준다.

맏이로서 동생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자고 서로 서로 뜻밖의 결의를 다지며 식사를 끝냈다.

푸짐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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