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기 위해 숙소를 나선다.
어제 도쿄에 왔다. 신주쿠 근처에 있는 아담한 호텔이다.
우리가 머무는 방은 더블 침대, 미니 책상, 의자 하나가 전부다.
의자가 하나뿐이라 한 명은 무조건 침대 혹은 책상 위에 앉아야 한다.
캐리어를 펼칠 공간조차 없다.
5월 비수기 평일에 왔음에도 방값은 하루 20만원, 2년 전에는 롯폰기에 숙소를 잡았다.
그새 숙박료가 너무 올라 외곽으로 밀려났다.
한적한 주택가를 지나 걷고 또 걷는다.
숙소 옆에 카페도 많은데 왜 30분이나 걸어야 할까?
거기 커피가 맛있대. 이제 다 왔어. 모과는 내 눈치를 살피며 지도를 확인한다.
간판 없는 가게 앞에서 멈춘 모과, 유리창이 불투명이라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가게 앞에는 일본어가 잔뜩 적힌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A4 용지가 12장 붙어 있는데 부동산 매물 광고처럼 보인다.
모과는 여기가 맞는 것 같다며 문을 연다.
이른 시각도 아닌데 손님이 아무도 없다.
카운터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인사한다.
다시 문을 닫고 싶지만 늦었다.
엉거주춤 테이블 하나를 차지한다.
과연 커피를 잘한다는 가게답게 커피 품종이 다양하다.
그만큼 가격도 세다. 도토루나 털리스보다 2배 비싸다.
커피와 토스트 세트를 시킨다.
주인은 조용히 카운터 뒤로 사라진다.
카페다운 아늑함이 없다. 소박한 식당 같다.
짙은 갈색 테이블과 베이지색 의자가 촘촘히 놓여 있다.
20명 안팎이면 꽉 찰 정도의 규모다.
나중에 찾아보니 점심에는 카레나 덮밥 같은 간단한 식사도 판매하는 식당 겸 카페더라.
창밖이 전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핸드폰으로 연결한 블루투스에서는 비발디 사계처럼 익숙한 곡만 흐른다.
주인이 그런 음악만 선곡했음이 틀림없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카페에서 우리는 헛기침을 하고 손님이 한 명이라도 왔으면 좋겠다고 소곤거리며 커피를 기다린다.
식사를 준비하고 제공하는 시간은 일본이 한국보다 확실히 느리다.
부엌에서 무언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여자 목소리도 들리는 걸 보니 준비하는 사람이 두 명이다.
하지만 그쪽이나 우리나 바쁠 거 없으니 느긋하게 준비하고 느긋하게 기다린다.
그러는 동안에도 손님은 오지 않는다.
손님 없는 가게의 유일한 손님이 되는 건 불편하다.
임대료 내면 남는 게 있을까 걱정된다.
한편으로는 음식이 맛없어도 맛있게 먹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목소리도 작아지고 대화도 조심스러워진다.
카운터에 다 들릴 테니까.
여기 커피 맛집 맞아? 맛없으면 가만 안 둔다. 모과 귀에 속삭인다.
모과는 억울한 표정이지만 현명하게 입을 다문다.
음식이 나왔다. 식탁에 놓인 걸 보니 입이 벌어진다.
어린이 세트를 시킨걸까?
우유가 든 작은 호리병 두 개, 시럽이 든 병 하나, 라빠르쉐 설탕 두 알이 놓인 종지가 은쟁반 위에 담겨 있다. 직사각형 하얀 접시 위엔 구운 식빵 2조각, 통조림 복숭아 반쪽, 생크림 한 스푼이 올려져 있다.
작은 머그잔에는 커피가 180ml 담겨 있다.
음식보다 그릇이 더 많다.
일본의 아기자기함을 사랑하긴 하지만 이건 형식이 내용을 삼킨 격이다.
시각적 매력만 있을 뿐.
커피도 기대만큼은 아니다. 우리 집 커피도 이 정도는 한다.
손님은 여전히 둘뿐이고 주인은 은근슬쩍 지켜보는 중이다.
우리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홀짝거린다.
식빵도 최대한 조금씩 잘라 먹는다.
평소라면 절대 넣지 않는 우유, 시럽, 설탕도 하나씩 넣으며 커피 맛이 어떻게 변하는지 느껴보려 한다.
음미하기엔 커피 양이 적지만 노력은 해봐야지.
소꿉놀이를 마치니 30분이 지났다.
때마침 손님 두 명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반갑다. 관광객으로 보인다.
너희도 인터넷 사진에 낚인 거니?
밖을 나서자마자 허기가 몰려온다.
내일 아침엔 북적거리는 카페에서 큰 소리로 대화도 하고 창밖 구경도 하면서 배부르게 먹겠다고 다짐하며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