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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소비단식

by 유자와 모과
위스키바 적온.jpg


왜 생필품은 동시에 재고가 바닥나는가?

소비 기간이 각각 다를 터인데 치약과 휴지와 비누와 로션과 칫솔과 산소계 표백제 모두가 9월만 기다렸다는 듯 똑 떨어져 버렸다.

평생 써야 하는 품목들은 평소에 아껴 쓰는 습관을 들이면 저축에 도움이 된다.


내가 가장 헤프게 쓰는 건 휴지.

다른 사람(공공화장실이나 식당에서 관찰한 결과)에 비해서는 적게 쓰는 편이지만 모과를 따라갈 수는 없다. 모과는 손수건으로 코를 푼다. 나는 휴지로 코를 푼다.

겨울에 감기라도 걸리면 휴지 한 통이 금방이다.

손수건으로 코를 풀려고 시도를 해 보았으나 포기했다.

그냥 감기에 안 걸리기로 했다.


모과는 화장실에서만 휴지를 사용한다.

나는 모과보다 화장실을 자주가니 휴지도 더 많이 사용할 거다.

머리를 말린 후 떨어진 머리카락을 모을 때, 바닥 얼룩을 닦을 때, 떨어진 반찬을 주울 때도 휴지를 사용한다. 휴지 대신 손이나 걸레를 사용하면 되지만 그게 또 잘 안된다.

휴지를 마음껏 쓸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놀기 좋은 계절이라 신나게 놀았다.

여기저기 여행도 다녀오고 친구도 만났다.

부암동, 서촌, 을지로, 익선동, 용리단길, 연희동을 들락거렸고 성수동까지 영역을 넓혔다.

새로 생긴 밥집을 방문했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았다.


눈 오는 날 개 싸다니듯 다닌 날들이었다.

매일 매일이 축복같은 날씨라 어쩔 수 없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 바람이 유혹적이라 자꾸 밖을 서성였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누가 그랬나.

책 읽기 가장 좋은 계절은 한여름과 한겨울이다.

그렇다고 책을 안 읽은 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미스터리 가이드북>이라는 책 한 권을 잘못 읽는 바람에, 굴비 엮듯 저자가 추천한 추리 소설을 연달아 읽어야 했다.

밖에 나가 놀아야 하는데 아직 범인은 밝혀지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던 날이 많았다.

그러다 급기야 살인 사건이 내 꿈속에도 등장하게 되었고, 그만 읽으라는 뇌의 신호로 받아들여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겨울에 다시 만나세).


나뭇잎이 한잎 두잎 노랑 빨랑으로 물드는 걸 바라보는 것도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살아 있어 행복한 날들이었다.

9월 같은 날씨가 열두 달 내내 지속된다면 사람들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지겠지.


모과가 룰렛을 돌리고, 출석 체크를 하고, 10원 20원 포인트를 모아 만든 5만원을 내 주식계좌로 보냈다(모과는 주식계좌가 없다).

자기 주식을 한 주 사달라는 거였다.

모과 동료 중 주식 천재라 불리는 직원이 있다. 5만원이 있는데 버려도 된다고 하면 어떤 주식을 사겠냐고 고견을 물었더니 아이온큐 같은 주식을 사라고 대답했다.

찾아보니 얼마 전부터 급격한 상승세에 들어섰다.

일주일 만에 40달러에서 59달러까지 수직 상승했다. 내가 확인한 날은 47달러였지만 이미 너무 올랐다고 오판했다.


모과가 오랫동안 모은 귀한 돈이라 함부로 매수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모과는 가격이 떨어지면 사달라고 했다. 그리고 두 배가 오르면 팔아달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덧붙이기를 자기 주식은 별도의 계좌에 따로 넣어 달라고 했다(지금 나한테 5천만원 준 걸로 착각한 건 아니지?)

모과 주식 한 주를 사게 되면 잘 굴려볼 생각이다.


밖에서 먹은 날이 많아 장보기 비용은 줄었다.

여름에 늘어난 뱃살도 관리해야 했기에 혼자 있을 땐 과일로 한 끼를 때우기도 했다.

과일만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는 걸 보면 뱃살이 있긴 한 거였다.

외식 횟수는 늘고 장보기 횟수는 줄었기에 결과적으로 식비 지출은 8월에 비해 별 차이가 없었다.

다만 막판에 자동차 보험료와 더불어 추석 선물, 가을 옷 3벌을 구입함으로써 지출이 껑충 껑충 뛰어버렸다. 씁쓸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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