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국에 위급한 일이 발생하면 차를 타고 부모님께 달려갈 수 있겠구나.’ 운전을 하게 되자 마음에 든 생각이다. 한국은 1953년 북한과 휴전을 맺어 전쟁을 중단한 상태이다. 전 세계에서 60년이 넘도록 국지적 휴전상태에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 정도 세월이면 남북간의 전쟁이 잠시 중단된 상태라는 걸 잊을 만도 하다. 하지만 까먹을 만하면 북한이 미사일을 쏘며 협박을 하기에 남한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2020년 작년만 해도 북한은 남한을 향해 6번이나 미사일을 발사했다. 위태로운 상황에서 정부의 안일한 대응은 내 불안을 더할 뿐이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기에 전쟁의 참혹한 풍경을 지겹도록 보고 듣고 읽어왔다. 우리 할머니는 6.25 때 북한군에 끌려가지 않으려 얼굴에 숯을 바르고 미친 척을 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북한이 남한을 향해 미사일을 쏠 때마다 생각했다. ‘전쟁이 나면 부모님을 만나러 어떻게 가지? 택시도 잡히지 않을 테고, 지하철 운행도 어려울 것 같은데. 차를 빌려줄 사람이 있을까? 자전거로는 아무래도 힘들겠지?’ 혼자 온갖 경우의 수를 떠올렸으나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차가 있고 운전할 수 있게 된 지금은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니 정말 다행이다. 물론 전쟁이 난다면 도로는 금세 마비되어 버릴 테니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예전에는 가고 싶은 장소가 생기면 대중교통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아무리 멋진 미술관이나 레스토랑이라도 버스 한 대 다니지 않는 산속 깊숙한 곳에 위치한다면 그곳은 탈락이다. 지금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그냥 시동을 켜고 주소를 찍은 후 운전대를 잡고 출발한다.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은 막히지도 않는다. 동해 바다가 보고 싶다고? 더 이상 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하고 시간에 맞춰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후 기차를 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붕붕이를 타고 출발하면 된다. 산속을 걷고 싶다고? 버스가 다니는 휴양림이나 수목원을 찾은 후 무거운 짐을 등에 메고 버스를 타는 대신 시동을 켜고 트레킹화를 뒷좌석에 던진 후 출발하면 된다.
운전을 하니 삶의 기동력이 놀랍도록 향상된 기분이다. 2년 전 남편과 함께 에버랜드를 가려 했다. 방법을 찾아보니 우선 강남까지 지하철을 타고 간 후 거기서 빨간 버스를 타고 에버랜드 근처까지 가는 게 우리 집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경로였다. 예상 시간은 2시간 30분. 지도상으로는 의왕-용인간의 거리가 무척 가까워 보였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포기했다. 다음에 가지 뭐. 그리고 얼마 전 예전에 포기했던 에버랜드를 붕붕이를 타고 다녀왔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부터 주차까지 딱 30분 걸렸다. 한국이 이렇게나 작은 나라였다니. 몇 달 전에는 코스트코에 회원 가입을 하기도 했다. 코스트코는 와인 종류가 많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집 가까이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싶어 붕붕이를 타고 광명 코스트코점에 가보니 25분 만에 도착한다. 집에서는 고기 요리를 하지 않기에 와인, 청포도, 케이크 구매가 전부이지만 나도 직접 차를 운전하여 마트에 도착한 후 장을 보고 배낭이 아닌 차 트렁크에 식료품을 실어보고 싶었다.
시부모님이 대전에 계셔서 명절마다 기차를 타고 시댁에 간다. 명절 아침에는 가족 모두 아버님의 차를 타고 예산 큰할머니 댁으로 가서 다같이 아침식사를 한다.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고 점심까지 먹은 후 우리는 다시 아버님의 차를 타고 대전으로 온다. 그리고 대전 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 혹은 수원에 도착한 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10년간 반복했다. 그러다 드디어 작년 추석에 붕붕이를 몰고 대전에 내려갔다. 명절 아침 시부모님과 우리는 따로 차를 타고 예산으로 갔고 아침식사를 한 후 우리는 붕붕이를 몰고 바로 집으로 올라왔다. 남편이 운전을 하고 나는 옆 좌석에서 잠깐 눈을 붙였는데 남편이 갑자기 깨우더니 집에 다 왔단다. 뭐? 아직 2시간도 안 지났는데 왜 장난을 치는 거야? 눈을 떠보니 아파트 입구가 보인다. 예산에서 의왕이 그렇게 가까운 줄 10년 만에 처음 알았다. 한국이 정말 작은 나라였구나.
차를 운전한 이후부터 나들이를 떠날 때 중요한 건 대중교통이 있느냐 없냐가 아닌 도착지까지 몇 km가 걸리는지 여부다. 50km 미만이라면 언제든 놀러 갈 수 있는 거리, 100km에서 200km 사이라면 주말에 놀러 갈 수 있는 거리, 200km에서 300km 사이라면 1박을 고려해야 할 거리, 300km 이상이라면 휴가가 아닌 이상 가지 않는다. 왜 사람들이 주말마다 차를 끌고 그렇게 먼 지역까지 나들이를 떠나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멀어 보이는 지역이 그렇게 멀지는 않다는 걸 운전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