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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ergrapher Feb 09. 2018

'하한 요율'이 필요한 이유

생활 속 협상의 법칙, '닻내림 효과'


 “그렇게는 못 드려요. 솔직히 저희가 다 알아본 다음에 방만 보여주셨잖아요.”


 “저희가 집만 보여드리는 게 아니에요. 나중에 문제 생기면 저희도 같이 책임져요. 그래서 매물가에 비례해서 복비가 올라가는 거예요.”




 얼마 전, 살던 집 전세 계약이 만료되면서 새로운 집을 계약했다. 계약하는 과정에서 가장 껄끄러운 때는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시기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도 아닌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협의하는 과정이다.


 언제나처럼 부동산 중개인은 법정 상한 요율을 적용한 금액을 제시하고, 나는 그에 맞서고. 그렇게 지루한 협상이 매번 이어진다. 하지만 협상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협의의 과정은 그냥 사정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자기의 입장을 관철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동산 중개라는 서비스는 인테리어 공사처럼 재료비, 인건비 등으로 세부 견적이 나오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협상에 임하는 임대/임차인, 혹은 매수/매도인은 수수료를 낮춰달라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만한 근거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중개인의 입장에서도 높은 수수료를 주장할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행 법정 수수료율 규정에 의해, 중개인은 고객들보다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바로 ‘닻내림 효과’라고 불리는 협상의 법칙 때문이다.




닻내림 효과(Anchoring Effect)

배가 닻(anchor)을내리면 닻과 배를 연결한 밧줄의 범위 내에서만 움직일 수 있듯이, 처음에 인상적이었던 숫자나 사물이 기준점이 되어 그 후의 판단에 왜곡 혹은 편파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현행 법정 부동산 중개 수수료율 규정에 의하면, 중개인이 고객으로부터 수령할 수 있는 최대 기준만이 명시되어 있다. 이는, 과도하게 높아지는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막기 위해 상한선을 정한 것인데, 실제로 부동산 수수료를 정할 때 이는 마치 중개인에 의해 ‘정가’ 내지는 ‘협상의 시작점’으로 활용된다.


상한요율만이 명시되어 있는 현행 부동산 수수료율 규정


 즉, 이론상으로는 100원을 수수료로 지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닻내림 효과’에 의해 유일하게 명기된 숫자인 ‘상한 요율’부터 협상이 시작되므로 중개인을 상대로 수수료를 낮추려 설득해 보아도 대개는 상한 요율 언저리에서 타결되고 마는 것이다.




 이제 결혼한 지 몇 년 된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부동산 중개 수수료는 그냥 ‘주고 마는 비용’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정액’이 아닌 ‘정률’로 규정된 탓에, 부동산 중개 수수료는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과 더불어 함께 치솟고 있다. 내가 받는 부동산 서비스는 만족스럽지 않고, 합리적인 근거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법정 상한액에 가까운 수수료를 지급하는 일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물론, 부동산 중개인의 주장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부동산을 알선해주고 중개해 주는 것을 넘어, 부동산 매물의 건전성과 거래의 안정성은 보장해주는 역할까지 한다고 본다면, 부동산 중개 수수료는 ‘정액’이 아닌 ‘정률’로 책정되는 것은 합당하다 할 것이다. 다만, 수수료율 협상에서 ‘상한 요율’이라는 ‘닻내림 효과’를 중개인만 누리고 있다면, 이것은 분명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부동산 수수료가 상호 간의 협의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면, 서비스를 받는 고객들에게도 협상의 시작점인 앵커, 즉, ‘하한 요율’도 같이 주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상한 요율’이 과도한 수수료로부터 고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실제 협상에서 중개인에게 유리하게 쓰이는 것처럼, ‘하한 요율’도 중개 서비스를 받는 고객들에게 ‘닻’로 기능하여 보다 공평한 협상이 되도록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 중개인에 편향된 부동산 수수료 ‘닻내림 효과’를 막기 위해, 청와대 게시판에 국민 청원이 진행 중입니다. 살펴보시고 공감하신다면 ‘동의’ 한 표 부탁드립니다. (청원 사이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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