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메시아>, 당신은 믿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이 시절이 도래했죠. 여러분은 심판받았고 택함 받았습니다. 전 편견의 거울을 깨 여러분이 서 있는 곳을 보여주려 합니다. 여러분이 보는 것은 여러분의 선택일 겁니다."
믿음과 불신의 저울은 아주 묘하디 묘한 균형을 이루며 사회를 구성한다. 단순히 종교적인 챕터를 떠나, 수많은 정보들이 범람하는 현대에서 어떤 사실을 의심 하나 없이 날 것으로 받아들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균형을 깨버릴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경험'이다. 구체적인 답은 '두 눈으로 보는 경험'이고, 좀 더 조건을 걸자면 '어떠한 분위기 속에서 두 눈으로 보는 경험'이다.
신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엔 의견이 갈린다. 신이 실제로 실재하는가라는 물음에도 의견이 갈릴까? 마음속에, 하늘에, 어디에서나 같은 잠정적인 위치가 아닌, 지금 우리 두 눈앞에 존재하여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위치.
그러니까 실존한다면, 묘한 균형을 이뤘던 저울은 박살나고 혼란이 야기되는 건 시간문제다. 신인가 신의 대리인인가 대체 누구인가는 더이상 중요치 않다.
기적을 행했고, 사람들이 그걸 보았다는 게 중요하다. 언제나 구원을 바랐던 이들도, 전혀 관심 없었던 이들도, 이미 깨져버린 저울 앞에서 저마다의 생각을 주목하며 생각한다.
기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블록버스터급 사기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할지, 그 '이성적'이라는 틀은 과연 잣대에서 자유로운지 함부로 확신할 수 없다. 그가 하는 말은 하나같이 모호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의 말에서 위안을 얻고, 진심을 보며, 답을 찾는다. 믿지 않는다는 것을 믿지 않게 되는 과정이 그려지는 걸 직시한다. 아울러 끊임없이 당도한다. 그를 '믿습니까'가 아닌, 그를 '믿지 않을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