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2020, 정이삭
멸치 때문에 운다. 그리움과 아림으로 점철되는 향수가 제법 묵직하게 코끝을 건드린다.
분명한 타지지만 더이상 타지 정도로만 생각하기엔 꽤나 멀리 달려 나온 오늘, 현실의 걸음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결코 쉽지 않기에 미지의 미래 맞이는 서늘할 만큼 더더욱 벅차 보인다.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싶은 이와 우리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접을 수 없는 이의 충돌은 어느 하나가 딱 정답이라 정의내릴 수 없는 복작복작한 이해의 실타래로 뭉쳐있다. 그 사이에서 배회하는 우리는 하루하루의 조각을 이어 붙여 서로를 듣고 맡고 음미하며 마주한다.
데이비사 데이비사 부르는 그 목소리와 이곳의 것이 아닌 그 향과 이슬물을 머금은 그 입가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시선의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 부재의 실감은 크고, 무엇이 진정 소중한가 그 가치의 깨달음은 거대하다.
뛸 수 있어서 운다. 이제는 밖에서 더 넘쳐흐르는 물의 저변을 느끼며, 돌아 걷는 이들을 뒤따른다. 어디서든 잘 자란다는 희망의 뿌리를 다시금 가다듬으며 우리에게, 따수운 바라봄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