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파더>와 <애플>로 기억 꼬집기
기억으로 살아간다. 거의 항상 제멋대로인 기억은, ‘100% 확실‘의 신뢰성을 온전하게 보장하진 않는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할 때가 있고 기억하기 싫은 것만 떠오를 때도 있으며 이때의 기억과 저때의 기억이 뒤섞여 뒤죽박죽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 본연의 특성도 그러할 진대, 나 자신이 옅어지는 순간들과 결부되어 펼쳐지는 시너지는 가히 무시무시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을까.
그래서 그 어떤 것보다 잔혹하다. 온갖 소중하디 소중한 감정들을 머금고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온 나 자신만의 세계가, 아주 서서히 으스러지기 시작한다. 인지의 공포, 반복의 혼란, 무력함의 고통은 그 폐허로의 수순에 더욱더 박차를 가한다. 아울러 그간 늘 몇 발자국 떨어져 서있던 제3자를 끌어내어 체험의 장으로 던져 넣는 그 진득한 힘이 서늘하다. 그리곤 함께 마주하는 잎사귀들 앞에서, 다시금 선언하는 듯하다. 우리는 그렇게 필멸하는 존재임을.
기억으로 죽어간다. 존재를 구축하고 삶을 영위하게 하는 기억들을 언제나 팔자 좋게 퍼담아 둘 수만은 없다. 때로는 미치도록 잊고 싶을 때가 있고, 잊지 못하는 자신을 향해 원망을 넘어선 분노와 체념의 고리가 둘둘 조여오기도 한다. 상실감이 삶의 폐부를 찔러 일상이 송두리째 무너진 상황 앞에선, 생생한 기억은 그 어느 역적과 다를 바가 없는 법이다. 본래의 나 자신을 옅어지게 하기 위한 노력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잔혹하다. 온갖 소중하디 소중한 감정들을 머금고 득실을 경유하며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온 나 자신만의 세계는, 강제로 으스러뜨리기 어렵다. 뚜렷한 인지, 무료한 반복, 고통스러운 무력감은 그 폐허로의 수순에 더욱더 박차를 가한다. 아울러 그간 늘 몇 발자국 떨어져 서있던 제3자에게 전혀 반대의 관념을 주입하는 그 진득한 힘이 서늘하다. 그리곤 함께 마주하는 사과들 앞에서, 다시금 선언하는 듯하다. 우리는 그렇게 필생하는 존재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