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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tlife noah Jan 09. 2024

제이야, 눈길을 걷게 해 줘서 고마워...

나는 눈 내리는 날을 몹시 좋아한다. 어렸을 적에 눈이 내리면 엄마는 걱정이 가득 차 있었고 나는 눈치 없이 신이 났었다. 세상이 하얗게 변해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가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깨끗하게 흰 눈으로 덮였을 때, 눈 덮인 공간에 나의 발자국을 처음 찍는 느낌은 오랫동안 고생한 모험가들이 신대륙에 첫 발자국을 내딛는 느낌이다. 눈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첫 발자국을 내딛을 기회를 준다. 이런 것 외에도 많은 아름다움과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런 것을 떠나서 난 눈을 그냥 단순히 좋아한다. 이유 없이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눈 내리는 날에 따로 시간을 내서 산책을 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눈을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만나러 가지 못하고 있었다. 괜히 나가면 추울 것 같고, 나갔다 와서 피곤해질 나의 상태가 걱정이 되고, 다른 사람의 시선도 신경이 쓰였다. 간단히 표현하면 귀찮아서 안 나갔는데 왜 좋아하는 눈을 보러 가는데 귀찮다고 생각하였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없다. 주변 사람과 환경의 탓도 하면서 나가지 않을 이유를 만들었고 나가지 않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굉장히 정상적으로 살아오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눈 내리는 날에 딸아이가 산책을 가자고 보채서 어쩔 수 없이 딸의 손을 잡고 나와보니 쓸데없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누군가 정의한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솔직한 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딸과 밖에 나와보니 내가 더 신이 났다. 딸이 가려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걷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이렇게 쉽게 짧은 시간을 투자해서 즐거울 수 있는데 나는 이제까지 눈이 내리면 왜 나오지 않았을까? 바빴을까? 힘이 들었을까? 묶여있었을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잘 모르겠다. 그저 사회의 보이지 않는 눈을 신경 쓰느라 나 자신의 소리는 듣지 않고 살았던 게 아닐까? 이렇게 잃었던 나를 찾는 시간이 참 단순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제이가 아니었으면 단순한 외출이지만 내가 이런 외출을 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우연히 여행을 갔다 눈 내리는 순간을 맞이해도 단순히 여행을 와서 기분이 좋은 것으로 착각했겠지.


그래도 매주 나를 위한 복권을 하나씩 산다는 느낌으로 단순하지만 좋아했던 것을 찾아보면 정말 큰 행복을 운 좋게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잃어버린 나 자신에게 행복을 찾아준 제이에게 고마움을 전달하고 싶다.


제이야, 아빠랑 함께 눈길을 걸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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