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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TTA Aug 25. 2017

지나가던 그들의 마음이 흘러 내 마음에 닿았다.

영화 <더 테이블>을 보고

※ 브런치무비패스를 통해 감상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많이 기다렸던 영화였다.


김종관 감독의 전작인 <최악의 하루>를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나처럼 많이 기다리지 않았을까. 신선했던 그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좋았던 사람이라면 공감할텐데. 덤덤하게 흘러가는 그의 영화는,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씬이 있는데도 또 상상을 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등장인물들이 아무 말 없이 걸어가는 장면에서 추측하게 되는 거다. '쟤들 지금 무슨 생각 하면서 걷고 있을까. 아까 이런 얘기 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매력이다. 장면을 보고 분위기, 인물 간의 기류, 할 법한 마음속 말과 생각을 상상하는 것이 영화를 여러 번 곱씹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종관 감독이 영화를 풀어가는 방식은 기분 좋은 곱씹음이라 더 기대하게 된다. 이번에는 또 어떤 마음들이 지나갈까 싶어서.



<더 테이블>에서도 역시나 끊임없이 상상했다. 어? 뭐지? 누구지? 왜 만난 거지? 전에는 어떤 사이였길래? 무슨 변화가 생겼었나? 왜 저 말을 꺼내는거지? 그러다 보니 대사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되고, 등장인물의 눈빛에 집중하게 되고, 상황에 자연스레 빠져들게 된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그들의 마음과 내 마음이 만났던 지점들을 에피소드 별로 하나씩 짚어보았다.




짧은 시간의 만남임에도 그녀의 눈빛은 변해간다.

헤어진 커플이 다시 만난다는 것은, 역시 쿨할 수 없는 걸까. 마스크와 큰 선글라스로 얼굴을 꽁꽁 가리고 온 유진은 약간 상기되어 보인다. 저만큼 가린 걸 보니 연예인 인가 보네. 누굴 만나러 온 걸까. 어? 왔다. 유진의 눈이 살짝 흔들린다. 나누는 대화를 들으니 창석이 전 남자 친구였기 때문인 듯 하다. 오히려 창석이 더 덤덤해 보이네.

아니, 근데 회사 근처인데도 늦게 온 거야? 대체 그런 건 왜 물어봐? (하 -) (헛웃음) 야 사진 찍는 거 자랑하려고 찍자는거 아니라며 왜 카톡 보내는 '슝' 소리가 나는 건데? 아, 어느새 유진의 눈빛이 차가워져 있다. 어쩌면 "난 많이 변했는데, 역시나 넌 변한 게 없네' 라는 눈빛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잠깐의 작별 그리고 다시 시작

경진은 왜 저렇게 초조해 보이는 걸까. 민호는 경진보다는 여유로워 보인다. 이 둘은 무슨 사이였을까. "이거 놓고 가셔서요." 시계. 아, 남자가 시계를 풀었다는 건...? 그랬구나. 아니, 이 자식은 그러고 여행을 떠난 거야? 그래서 미리 말한 거라고, 알고 있지 않았냐고? 이 자식도 말인지 방구인지 모르겠네. 그래, 잘 생각했어 경진아 그냥 가버려.

순간 급히 잡는 손. 미묘한 차이로 좀 더 격하게 흔들리는 화면. 가까이 클로즈업되는 그들의 표정. 흐름이 바뀐다. 민호가 주고 싶은 게 있었다며 안주머니에서 선물을 꺼낸다. 시계다. 장인의 오래된 시계가 경진의 손목에서 반짝인다. 경진의 눈이 부드러워졌다. 민호의 표정에서도 설레는 긴장이 묻어 나온다. 결국 둘은 민호의 집에 파스타를 먹으러 간다.



처음 보는 사이인 듯, 오래된 사이인 듯

"법적으로 저 아직 처녀예요." 예고편 영상 은희의 말을 듣고,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를 도발하는 강한 여성 역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오후 다섯 시의 빛이 들어오는 카페에 앉은 두 여자의 대화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캐나다 벤쿠버에서 온 거라 생각해 주시면 되구요, 걱정 마세요, 영어는 잘 하실 필요 없어요. 저는 OO대 @@과 졸업한 거예요. 식까지 참석하시는 걸로 해서 제가 150 해드릴게요." 아, 결혼식 알바를 구하는 현장이구나. 이런 건 처음 본다. 되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네, 정말 딱 비즈니스 관계 같다.

"그런데... 집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자수성가도 아니라면서요. 왜 이렇게 혼인신고까지 하는 큰 건을?" "... 좋아서 하는 거예요. 아직까지는요." 기류가 바뀐다. 사무적인 태도로 대하던 은희의 표정이 바뀐다. 숙자의 표정도 바뀐다. 그 날에 아껴두던 옷을 꺼내입겠다고 한다. 은희가 대답한다. "제 어릴 적 별명은 거북이었어요. 느림보 거북이."



옛 연인이란.

"술 마셨어?" 밖에서 담배 피우고 오는 혜경에게 핀잔 던지듯 말을 건네는 운철.

"결혼은 결혼이고, 따로 만나면 되잖아."

"... 안 돼."

"그럼 결혼하기 전까지만"

".... 안 돼. 조신하게 살아 조신하게~"

분명히 끊길 듯 끊기지 않을 듯 미묘하게 이어지던 감정선이었는데, 힘겨워 보이던 꽤 단호한 몇 번의 거절에, 생각보다 쉽게 뚝- 하고 끊어져 버렸다. 아마도 뫼비우스의 띠 같았던 그것이, 드디어, 직각으로 가위를 만난 것인가보다. 그럼 더 이상 안 만나게 되니까.


70분의 러닝 타임 동안 (훔쳐) 들은 그들의 이야기는 인상 깊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한 번, 이렇게 상세하게 적어내려 가면서 두 번 그들의 마음을 추측해 보니, 현대인들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다는 '관음'의 욕구를 오피셜하게 인정받은 느낌이랄까. 히치콕의 <이창>처럼.



# 그 밖의 감상 포인트

1. 스타 배우 유진이 가방에 늘 가지고 다니는 그것

2. 민호가 가져온 선물(들)

3. 어디가 매력의 끝일까 은희는, 아니 한예리는.

4. 술 마신 후 홍차는 사실 조금 낯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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