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보고.
(1) 흥미를 끌만한 판타지적 소재였고
(2) 국내외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며
(3) 포스터 감각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글씨 색이나 한글이랑 잘 어울리는 명조체 활용한 센스 등등...)
처음 시작하는 인트로부터 참 좋았다. 새하얀 바탕에 과하지 않은 톤의 글씨로 된 등장인물과 타이틀 소개에 감탄했다. 영상미나 카메라 클로즈업, 공간의 인테리어, 음악, 내레이션, 대사 모두 지극히 내 취향이었다. 정말 좋아하는 영화들을 읊어보자면 About Time(어바웃 타임), Her,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Begin Again(비긴 어게인), 500 days of Summer(500일의 서머), Leap Year(프러포즈 데이) 등, 영상미가 뛰어나거나, 참신한 소재 혹은 전개 과정이거나, OST가 좋거나, 공간이 아름답다거나 등 좋아하는 이유가 각각 있는 작품들이다.
'뷰티 인사이드'는 내가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었던 것 같다. 영상미가 너무너무 좋았고, 공간의 인테리어도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주인공들의 직업이 가구를 다룬다는 건 좋은 설정이었다. 덕분에 예쁘고 고급스러운 가구와 감각적인 공간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영상미 덕분에 계속 잔잔한 분위기의 영화임에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국에도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구나 싶어서 벅차오르기까지 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신기했던 건 매일 바뀌는 외양인데도, 모든 김우진들에게서 '김우진'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매일같이 변하는 외모. '이수'는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마도, 매일 다른 외모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김우진의 내면이 있었기에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어떤 이들의 감상평처럼 정작 고백, 베드신, 프로포즈 등의 중요한 장면에선 전부 미남 배우들이 나온다. '내면을 사랑하자더니 결국은 외모지상주의'라는 말들도 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주제를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판타지적 소재를 포장지로 내세웠을 뿐이고 속의 알맹이에는 우리 현실의 이야기가 잘 숨겨져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걸 찾아내는 건 굉장히 재밌었다.
첫인상을 박서준의 외모로 시작하려던 우진의 마음은 사실 사랑하는 마음을 고백하려 할 때 가장 멋지고 예쁜 첫인상으로 시작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멋진 남자의 모습일 때 이수와의 중요한 순간을 보내는 것도 사랑하는 연인들이 기억하고 싶은 기념일이나 평생 한 번뿐인 사건일 때 가장 예쁘고 멋져 보이기 위해 치장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고.
기본적으로 이수는 영화에서 보이는 우진의 모습이 어떻든지 간에 놀라울 정도로 기복 없는 모습으로 그를 대한다. 두려웠을 텐데도 도시락을 싸오고, 밝은 모습으로 매일의 사진을 남기며, '오늘은 여기까지'의 동영상에 행복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분명 우진이라는 사람에 대한 두터운 믿음과 신뢰가 있기에 가능했고, 이수라는 사람이 진정 내면을 더 중요히 여겼기에 가능했던 전개였다고 본다.
다큐멘터리는 아니잖아, 영화는 영화다.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인, 매일 바뀌는 사람과의 사랑을 진짜 리얼리티로 보여달라! 라고 한다면 다큐멘터리를 찍어달라 요구하는 게 아닐까... 어떤 외모를 가진 사람이든 무조건 외면은 보지 말고 진정으로 사랑해라 -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어떤 모습이든지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게 노력하자, 여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그 혹은 그녀를 배려하고 사랑하자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아름답게 포장된 건 사실이지만 그 안에 이야기하고 싶었던 알맹이를 현실의 이야기와 잘 결합하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며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우진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진의 눈에 이수는 보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아저씨가 되기도 하고, 아줌마가 되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할머니가 되기도 하고, 여자가 되기도 하고, 아이가 되기도 하고, 외국인이 되기도 하는 자신을 매일같이 사랑해주니까. 그래서 영화에서 나온 말대로 '눈먼 사랑'을 하고 만다. 자신이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수를 평생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이수의 힘듦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려버린 것이다.
영화 중반부가 지나면서는 이수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극의 흐름이 바뀌면서 이 영화는 판타지 영화임에도 현실의 이야기를 잘 담아내고 있었다. 꼭 모습이 바뀌는 애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네 현실에서 하는 이야기들. 둘만 좋으면 되는데 주변 사람들을 신경 써야 하는 현실. 가족과의 관계. 결국은 둘의 관계가 서로에 대한 소중한 감정이 아니라 주변의 시선과 참견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아픈 이별 후 이수의 내레이션은 지극히 인문학적인 고민을 불러왔다. "나는 그를 느낄 수 있었지만 아는 척할 수가 없었다. 헤어지자 했던 너의 말을 듣고 속으로 안도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 , "어제의 나는 과연 오늘의 나와 같을까. 변한 건 그가 아니라 내가 아니었을까." 변한 건 내가 아니었을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올 수 있는 고민임에 앞서,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고민이라 기억에 많이 남았다.
나 어디 있는지 찾아보라는 우진의 장난에 속상할 수밖에 없는 이수의 모습과, 어디서 뭘 했고 뭘 먹었고 무슨 반찬을 먹었는지 다 생생한데 그 사람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오열하는 이수의 모습을 보면서, 언제 어디서든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고 기억할 수 있다는 현실에 감사를 하게 되었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이수가 눈을 감고 '매일 바뀌는 너를 알아보기 위해 이 느낌을 기억하고 싶어'라고 하며 서로 손을 잡고 가만히 서 있던 장면, 매일 다른 모습으로 일어나는 우진을 한결같은 눈빛과 표정, 목소리로 받아들이는 이수의 모습을 보며 '내 옆에 손 잡고 있는 그가 어떤 모습이더라도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영화를 보며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에는 확신을 가지고 답할 수 있다. 천지개벽이 일어나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해 남자 친구가 같은 병을 얻게 된다면, 그래서 매일같이 다른 모습으로 보게 된다면 지금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다른 모습이더라도 오랫동안 함께 해 온 그의 느낌을 분명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므로. 그리고 영화에서의 내레이션처럼, 적응하느라 아파서 힘든 것보다 그가 내 곁에 없어서 아픈 것이 더 많이 힘들 것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연애 초반부터 그런 말을 자주 했었다. 네가 팔이 없고 다리가 없더라도 사랑할 거라고. 그 말 굉장히 확신을 가지고 했었던 것 같다.
"사랑해, 오늘의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