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Sleep No More 지금껏 이런 공연은 없었다>를 읽고
2015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인턴이라는 이유로 계획에 없던 휴학을 했다. 인턴 하면서 버는 돈을 계산해보니, 이 돈을 꼬박꼬박 모으면 여름방학 한 달 반 정도 유럽여행을 다녀올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열심히 돈을 벌어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으니, 책이나 블로그에서 해보라는 건 해봐야겠다 싶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런던 뮤지컬. “런던 가면 꼭 보고 오세요.” “역시 문화강국! 이렇게 싼 가격에 이렇게 엄청난 뮤지컬을 감상할 수 있다니 이 나라 국민들 부럽네요.” 많은 사람들이 강력 추천하는 런던 뮤지컬 대체 어떻길래?
당일 티켓을 구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티켓박스를 서성였다. 관람하기로 선택한 작품은 <오페라의 유령>. 영화로도 몇 번 봐서 익숙하고, 음악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Her Majesty’s Theatre 여왕폐하의 극장’이라는 극장 이름에도 맘이 동해버렸다)
공연은 완벽했다. 배우들의 열연, 노래, 오케스트라, 무대 세트와 조명까지! 크리스틴과 팬텀이 배를 타고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듯하는 강을 건너며 The Phantom of Opera를 부르던 장면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전 날까지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런던에 정을 못 붙이던 내가, 공연 덕분에 "런던 너무 좋네요!!!"라고 외칠 만큼 이 도시가 좋아졌다. 정말 멋졌다. 한 극장에서 오랜 시간 동안 한 작품만 공연한다는 클래식도 멋졌다.
그런데, 클래식이 멋지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넷플릭스 스트리밍 시대에 빠르게 젖어들었다.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만 연결되면 원하는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모바일 시대가 가속화되면서 굳이 공연을 찾아 경험할 동기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2003년 런던에서 초연 후 2011년 뉴욕으로 터전을 옮겨 현재까지 15년 넘게 endless로 공연 중인 <Sleep No More 슬립 노 모어>. 뉴욕에 여행을 간다면 반드시 경험해봐야 한다는 공연으로 꼽힐 정도로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2년 전 뉴욕 여행 갔을 때 이 공연을 몰랐던 것이 너무 아쉽다)
공연장이 어딜까? 바로 낡은 호텔로 개조된 버려진 창고다. 이 공연장에는 100개가 넘는 방이 있다. 관객들은 한 곳에 앉아 공연을 감상하지 않는다. 100개가 넘는 방을 돌아다니며, 배우들의 퍼포먼스를 감상한다.
방 안에 있는 소품들을 만져보기도 하고, 배우와 호흡을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줄거리 이해를 위해 스스로 단서를 찾을 수도 있다. 이는 슬립 노 모어 공연을 기획한 펀치드렁크가 관객에게 선물하는 '권력'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겠냐고? 관객들은 모두 똑같이 생긴 ‘가면’을 쓴다. 가면은 오프라인 상에서의 익명성처럼 현실에서의 익명을 보장해준다. 그래서 관객은 더 적극적으로 공연을 감상한다. (안전을 위한 스태프들도 있다)
기존 공연에서의 관객은 수동적이었다.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자리에 앉아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만 하던 존재였다. 하지만 슬립 노 모어의 관객은 다르다.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주체적인 존재다.
재미있는 것은, 가면을 장착하고 적극적으로 공연을 경험하는 관객들 덕분에 공연이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한 관객이 다른 관객을 관찰하기도 한다. 관객의 행동에 의해 배우의 퍼포먼스가 변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객은 배우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 안에 있는 다른 관객도 공연의 한 일부로 여기고 눈여겨 본다. 이처럼, 슬립 노 모어에서는 관객과 배우의 역할이 불분명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그래서 공연을 '경험'하고 온 관객들의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처음 눈을 가리고 맨덜리 바(Manderley Bar)에서 도착하는 곳까지만 같은 여정이고, 그 다음부터는 온전히 ‘나'의 선택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대사도 없기 때문에 배우의 몸짓과 눈빛, 소품과 분위기를 조합해 내 해석이 담긴 하나의 대서사시를 전개할 수 있다.
Sleep No More를 읽으며 ‘어둠 속의 대화’ 전시가 생각났다. 빛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는 암실에 눈을 꽁꽁 가리고 들어간다. 가이드 분의 목소리와, 암실에 함께 들어간 사람의 어깨에 얹은 내 손의 감각에만 의존해 걷는다. 그리고 듣는다. 만진다. 느낀다. 향을 맡는다. 상상한다. 그때도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동원해 주변의 것들을 느껴서 그런지 참 생생하다.
영화도 그렇다. 넷플릭스를 이용해 편하게 집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큰 스크린과 빵빵한 사운드에 압도되며 영화를 감상하는 감동을 포기할 수 없기에 영화관에 간다. 좋아하는 영화가 재개봉했을 때 꼭 영화관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행도 그렇다. 책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도 유명한 관광지를 접할 수 있지만, 굳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있다. 내가 느끼는 그때의 바람이 다르기 때문이고, 그때 만나는 사람들과 만드는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해서 느끼는 것은
여전히 가치 있다.
수많은 온라인 서비스와
채널, 미디어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가치 있는 경험을 만드는 펀치드렁크의 특별한 의도가 담긴 공연 <Sleep No More>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