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모 [닿는 순간], 그중에서도 “self-made orange” 영업글
다 본/들은 직후에 다시 한번 보고/듣고 싶어지는 것들이 있다.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방식으로 만들어져 포인트가 군데군데 있는 것들이 그렇다. 박찬욱의 영화, 레드벨벳의 안무, 가우디의 건축물 뭐 그런 것들. 창모의 새 앨범이 나온지 스무날 남짓, 수록곡인 “self-made orange”를 매일 반복해 듣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건 창모의 미리 쓴 자서전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창모) 출신은 리”이지만 그건 멀리서 보면 읍이고 시고 도이고, 그리하여 하나의 “원”에서 태어난 셈인 창모의 탄생신화에서 시작해서, 총도 갱도 없는 한국 힙합씬에서 자기를 “죽이는 건 말레” 뿐이라고 허세를 부리는 그의 말을 의문의 총소리가 끊어먹는 엔딩에 이르기까지. 또 자칭 피아노 영재이자 “베토벤부터 모짜르트 바흐 쇼팽”의 후배였던 그의 과거를 소환하는 피아노 소리로 시작하여, “악보 따윈 동네 땅에 큰 구덩이를 파묻”었다는 그의 선언대로 어느순간부터 동일한 선율을 전자음과 비트가 대체하기까지. 창모 특유의 타이트한 목소리와 호흡이 “150”의 속도로 질주하는 self-made orange 스토리.
“돈 벌 시간”과 “돈 번 순간” 같은 그의 지난 앨범명마따나 그동안 창모의 진정성은 돈, 정확히는 돈을 버는 행위 자체에 있었다. 그런데 “덕소놈이 돈을 벌어 누구보다 유명”해지고 “돈을 버니 어떻게 자랑할지 답답”하다며 배부른 불평까지 쏟아내버린 그는 이제 다른 것을 좇기로 결심했나보다. “닿는 순간”의 그녀는 기타소리를 배경으로 노래를 하고, 레인지로버를 타고, 자신보다 훨씬 벌면서도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스타이다. 게다가 그녀는 그의 과거경험이나 추억이 섞여서 만들어진 관념적 대상이 아니라 실제 인물이라던데 수군수군..(녹색창에 연관검색어 참조). 짝사랑인지 사랑인지 모를 것에 절절 매달리는 가사를 잔뜩 써놓았지만, 사랑하는 그녀는 창모가 “rollie”와 “개구리” 다음으로 갖고/닿고 싶은 대상으로 보인다. 돈에서 사람으로 옮겨갔지만 갖고 싶은 것을 부끄러움도 주저함도 모르고 노골적인 언어로 겨냥하는 것이 창모의 진정성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