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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 Aug 05. 2023

에메랄드 빛 바다로 둘러싸인 나의 섬, 나의 성

포토 에세이



세상에 그 무엇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날 위한 그 누구도 없는 듯한 기분일 때면 난 조용히 눈을 감고 나만의 성으로 간다. 기억 저너머 까마득한 지난날들을 들어가 둘러보고, 이름조차 가물한 기억 속 저 구석에 숨어있는 친구들도 괜히 슬쩍 끄집어 불러내보고, 그리운 제주의 청량한 바다 곁 소중한 오솔길을 거닐고, 그리고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법한 일들을 상상해 본다. 어떤 생색도 없이 그저 담담히, 언제든 나를 받아주는 든든한 나의 성으로.




엑스포를 거치며 그토록 그리고 돌고 돌아 다시 찾은 두바이가 싫어지는 데에는 사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치 마법이 풀려버려 더는 돌아갈 수 없는 시공간처럼 도시는 더 이상 내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얼마 전엔 셰이크 자이드 로드의 한 오성급 호텔로 이사를 왔다. 코란 소리가 밤이고 새벽이고 소란스레 잠을 깨우던 라마단 기간을 겨우 보내고, 오랜 잠을 거쳐 깃털처럼 가벼이 다시 태어나 고팠던 주말. 아침부터 호텔의 수영장은 마치 하필이면 창문에다 붙어 우는 매미처럼 고약하게 울려댔다. 사람들을 모아 술이며 음식을 팔아야 하는 이 장사꾼들에겐 나 하나의 고단함은 아무것도 아니라 말하는 선명한 목소리였다. 난 힘없이 항복하고 욕조로 숨는 수밖에. 나란 아이, 반신욕을 좋아해 그것 하나는 다행이라고.. 겨우 하나 붙들어보는 주말. 사랑했던 한 도시가 지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맑게 울렁이는 아침, 호롱이며 유혹하는 촛불과 고소한 향 가득 안고서 야무지게 담겨진 커피, 든든한 펜 한 자루와 함께 앞에 놓여있는 퍼석한 노트 한 권. 이건 어마어마한 전조라 붙들어야지 된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오늘은, 무엇을 쓰며 행복해볼까요.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것들로 공간을 채워보고 싶어졌다. 도저히 기분이 좋아지지 않고서는 못 배길 만큼의 펑키함과 청키함, 또 치키함으로 무장한 그런 어마어마한 무드를 들여와 나의 방을 한번 놀라게 해보는 거다. 그러면 어안이 벙벙해진 그녀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하고 묻겠지. 그럼 난 휙 돌아보면서 답하고. 나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이만큼 오니, 저기에 있던 내가 보여요. 위태위태하게 시간이 지날 거란 믿음 단 하나로 간신히 버텨오던 그날들을. 아프다 말할 수 없이 그렇게 목을 놓아 울어대던 그때 넌 얼마나 외로웠던 걸까. 그러자 저기 있던 나는 여기 있는 날 보며 말을 해요.


아니, 날 헤아리려 들지 마. 저어기, 앞만 보고 가. 그리고 다시는 여기 얼씬도 하지 마, 알았지? 지금 그 행복을 잘 잡고, 절대 두 번 다시는 여기에 빠지지 말라고.


사람에게는 모두가 가여운 부분이란 게 있는 법. 그러니 우리는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아직도 미지의 세계는 더 남아있어요. 당신이 성장하는 것처럼, 그 미지의 세계는 확장하는 법이니까. 그러니 아직 성급히 점을 찍어버리거나, 문을 닫진 말아요. 무엇을 상상하건, 남은 시간은 그 이상일테니까.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단 말을 슬프다고 생각했나요? 부질없죠. 좋은 것들이 천지에 널린 채로 우리가 고갤 조금만 더 돌려주길 기다리니까. 그 지루함이라는 콩깍지를 벗고, 슬픔이라는 고집을 꺾고, 두려움이란 짐을 버리고, 자신만만한 도취에서 깨어나 여기 빛으로 조금만 나와봐요.




집에 가면 꼭 있는 안 쓰는 그릇이나 잔들이 있다. 손님들 오면 내어놓으려고 장만해 두고는 행여나 깰까 봐 고이 모셔뒀다가 어느새 사용 흔적도 없이 골동품처럼 나이가 들어버린 자기와 유리들. 어릴 적엔 틈 날 때마다 몰래 밀키스를 거기 따라 마시다 엄마에게 들켜 잔소릴 들어야 했는데, 대학교를 졸업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온 난 다시 그 잔들을 꺼내 잡고 와인을 따라 마시길 시작했다. 호록 호록, 조금 더 자신 있고 떳떳하게 (물론 방 안에 고이 숨겨 모셔다가.) 그렇게 세상 가장 귀한 손님처럼 내게 축배를 드는 이 낭만가가 난 참 좋았는데. 오늘밤 잡고 있는 잔을 보며 여전히 넌 변함이 없네.





Q. 눈을 감고 대답해 봐요. 당신은 가장 행복해요 지금. 무얼 하고 있나요?


: 자연이 예쁜 곳에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생생한 우주가 가득 담긴 좋은 책들을 읽고 있어요. 아주 푸욱 빠져서는, 실컷이요.




재밌는 일을 꾸리고 있거든요? 혼자서라면 물론 생각할 순 있겠지만 행동으로 옮기긴 쉽지 않았을 일을요. 조금씩 조금씩 보여줄게요, 물론 당신에게 영감이 되어 줄 목적으로요. https://www.youtube.com/@chloescamera/videos



CHLOE'S CAMERA              

art de vivre | creative living 

dubai




with love,

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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