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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보경 Dec 01. 2020

마흔, 마음의 지진을 겪을 나이

음악은 시절을 기억한다. 그해 9월, 나의 신청곡

하늘이 묵직한 날이다. 세상의 채도가 낮은 아침. 라디오부터 켠다. 라디오 작가 일을 꽤 오래 해서 그런지, 습관이 됐다. 일 없는 날엔 집안 가득 채우는 음악과 조곤조곤 말해주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익숙하고 편안하다. 그러다 애정 했던 음악이 나오거나 하면 나도 모르게 잠시 하던 것 다 멈추고 잠시 노래를 듣곤 한다. 요즘은 종종 그런 시간들이 많고, 꽤 사랑스럽다. 


라디오에서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왔다. 이소라의 신청곡이라는 노래였는데, 그때가 떠올랐다. 2019년 1월에 나온 곡인데 나는 그해 가을과 겨울을 기억한다. 쓸쓸함과 울적한 기분을 연상케 하는 노래. 딱 그때의 마음이었다. 울산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도시로 옮겨야 하던 상황, 애 아빠와도 떨어져 지내던 그때 주말마다 오는 그를 기차역까지 데리러 가면서 자주 들었다. 복잡한 심정을 위로도 해주고 더 쓸쓸하게 해주기도 했던 노래.



가진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때 나는 울산MBC에서 오후 라디오 프로를 구성하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좋은 스텝을 만나 사랑받으면서 재밌게 하고 있었고. 그래서 별 일만 없다면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었던, 하면 할수록 욕심나는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그 별 일이 생기고 말았지만) 


그리고 동시에 MBC경남 TV쪽 휴먼다큐를 맡아 사람 이야기를 쓰는 호사도 함께 누리고 있었다. 라디오 경력에 비하면 TV 일은 새내기였던 터라 걱정도 많이 했는데. 비록 한 해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상을 디테일하게 보는 시력을 가질 수 있도록 가이드해주는 피디 덕에 많이 배웠던 시간이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서 부캐인 엄마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본캐로서의 나는 꽤 부족함 없이 행복했었다고 기억한다. 스스로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애 아빠의 이직으로,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올라가야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일을 놓지 말고 있으라고. 정말 내적 갈등이 많았던 해였다. 이제야 담담하게 글을 쓰지만. 그때는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요동치고 갈피를 못 잡았다. 마흔, 방황 그 자체였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였던 칼 구스타프 융은 지진으로 표현했다. ‘마흔이 되면 누구나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라고. 생각해 보면 엄청난 지각변동을 겪었다. 그리고 마음의 여진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

Carl Gustav Jung


결국 일을 포기하기로 결정을 했고, 겉으로 내색을 하지 못했지만 실로 마음을 내려놓기까지 그 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시 그 해 가을을 생각하니, 다시 이 노래를 들으니, 그때 기차역으로 가던 나를, 말없이 안아주고 싶다. 마흔 하나를 넘어 둘을 앞두고 있는 2020, 겨울. 여전히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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