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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원 Mar 13. 2024

군복에서 익숙함을 느낄 줄이야

손은 눈보다 빠르다.

예비군 훈련 참가를 위해 회사에 ‘공가’를 신청했다. 18년도 1월에 제대한 탓에 33살의 나이지만 아직까지 예비군의 신분을 보유하고 있고 다행히도 올해를 끝으로 6년간의 예비군 생활이 모두 종료된다. 예비군 6년 차의 훈련은 1년에 총 3번이 이루어지고 오늘은 그 첫 번째 날인 '전반기 작계훈련'을 받았다.


훈련이 고맙게도 정오부터 시작되는 탓에 평일임에도 느긋하게 잠에서 깰 수 있었고, 샤워를 마친 후에 어젯밤 꺼내놓은 군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제대를 한 뒤에 곧바로 직장인이 되었고 야근과 늦은 저녁식사의 콜라보로 군복 상의가 잠기지 않는 대참사가 일어났지만, 군복을 입고 나니 옛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왠지 모르게 오묘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군복을 모두 입고 신발장에서 묵직한 전투화도 꺼내 신고 나서야 문제 아닌 문제가 발생했다. 군인들의 군복 하의와 전투화 그 사이에는 녹차 꽈배기처럼 생긴 ‘고무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유사시에 바지 밑단에 진흙이 묻거나 젖음으로써 생기는 불편함이 없도록 군복 하의의 밑단을 전투화 위로 올라가게끔 고정시켜 주는 용도로 사용되는 하나의 군인 용품이다. 군인들을 보면 전투화 위로 바지가 둥글게 말려져 있는 게 이 때문이다.


어? 이거 어떻게 했더라?

유난히도 긴 전투화의 끈을 잡은 채로 잠시 망설이듯 고민했다. 분명 머릿속은 일시정지된 것 마냥 망설이고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손은 2016년 4월의 11번 훈련병 ‘이종원’처럼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고무링을 활용해 바지 밑단을 정리하고 있었다. 제대한 지 수년이 흘렀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몸에 배어진 익숙함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훈련을 받는 내내 총을 어깨에 메는 방법이나 각종 장구류를 사용할 때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익숙함'이라는 건 참으로 무섭다. 어느 순간 잊혔던 것들이 사소한 기억의 조각하나만으로도 다시금 되살아난다.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 본다면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순간들을 잊지 말라는 무의식적인 신호일 수도 있지만,  단편적으로는 반복 숙달된 ‘군사훈련‘의 영향일 수도 있다.


바로 ‘이 지금’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


어찌 되었든 오랜만에 6시간 동안 군복을 입고 생활하면서 지금 내가 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도 언제일지 모르는 미래에는 익숙함이 되어 찾아올 것임을 알아차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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