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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원 Jun 03. 2024

여름이 온 지도 몰랐네.

쌀쌀할 때 출근해서 쌀쌀할 때 퇴근했으니까!!!

  빡침으로 가득한 영업일 내내 기다려 온 주말의 첫날, 느지막하게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오래전부터 가기로 했던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집 밖을 나섰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괜스레 먼가 이렇게 나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귀찮음이 그 당시의 나를 지배했기에 약속시간에 쫓기지 않았음에도 지하철역으로 향했다(나의 잘못된 선택이었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6분 정도의 시간 동안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과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 땀방울로 나는 X됨을 감지했다.


  최근에 회사에서 받은 민원 때문인지 스트레스로 공황장애가 또 찾아와 준 걸까? 다분히 가능성이 있긴 했지만 아니었다. 이건 순수하게 더워서 나는 땀이었다. 6분 정도의 짧은 걸음의 시간 동안, 나의 시야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짧은 반팔을 입고 있었던 반면에 나는 제법 두터운 소재의 옥스퍼드 셔츠를 입고 있었다. 짧은 횡단보도에서 마주한 아주머니가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지그시 쳐다보시더니 아마도 철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어서였나 보다.


  더위에 취약한 나로서는 땀이 난다는 건, 끔찍한 시즌이 다가왔음을 의미한다. 여름만 되면 땀 때문에 진이 빠지는 터라 계절의 변화에 그토록 민감한 나였는데, 이번엔 왜 이렇게 둔감했던 걸까? 앞머리가 땀에 절어진 채 지인을 만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기깔나게 때린 다음 곰곰이 도출해 낸 답은 하나였다. "평일에는 사무실에만 있었으니까." 아주 단순했다.


쌀쌀할 때 출근해서 쌀쌀할 때 퇴근했으니까!

  검산까지 끝낸 답은 매우 허탈했다. 출장도 거의 없는 연구직(실상은 법무담당자)인 데다가 점심도 자리에서 해결하거나 먹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어서 출근과 퇴근하는 시간을 빼고는 바깥공기를 마주하지 않았다. 자의든 타의든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밖에서 일어났던 온도와 습도의 변화를 느끼지 못했던 거다.


  약속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을 땐 갖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과 회사에서 여러 이슈를 정리해 나가면서 "나를 너무 가두고 있었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또, 최근 들어 스멀스멀 존재감을 뽐내려 하는 공황장애 덕분에 사람들을 만나기를 꺼려했던 “내 판단이 틀렸을까?” 하는 자책도 해보는 등  온갖 생각들이 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도 하나의 생각 때문에 그렇게 늦지도 않은 새벽 2시 즈음에 무사히 그리고 안전하게 잠에들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거면,
 잘 살고 있는 거겠지?
이게 아니더라도 그렇다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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