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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원 Sep 16. 2024

13일의 금요일에 생겼던 일

지적에도 자격이 필요하다.

  추석이든 설날이든 긴 명절로 연휴를 앞둔 근무일에는 업무를 하여도 하는 게 아닐 만큼 직장인들의 영혼은 이미 연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다. 그래서인지 사기업에서는 사용자의 재량에 따라서 단축근무를 시행하기도 하고 나와 같은 공공기관 직원들은 휴가를 쓰거나 유연근무제도를 이용해서 이른 퇴근을 감행하기도 한다.


  2024년 추석연휴를 맞이하는 13일의 금요일에 나는 출근하자마자 휴가자들로  텅 비어버린 사무실을 보고는 홀린 듯이 오후 반차를 상신했다. 그러곤 퇴근 무렵 무심코 SNS를 보다 개막일에 맞춰 방문했던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가 곧 종료된다는 소식에 곧장 예술의 전당에 있는 한가람미술관으로 향했다.


  연휴의 시작과 전시종료일이 겹쳐서인지 여유로웠던 첫 관람일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찾았다. 입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밀림'이 발생했기에 아쉽지만 이번 관람은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주요 작품 위주로 관람하기로 했다. 게다가 동선에 상관없이 자유로운 관람이 가능했기에 이미 작품을 한번 경험해 본 나로서는 최적의 감상법이었다.


학생! 남에게 피해 주지 말아요!!!


  '뭉크'하면 떠오르는 작품인 '절규'의 바로 옆에 전시된 '불안'이라는 작품을 감상할 때쯤이었다. 갑작스레 기분 나쁜 마찰음과 날카로운 목소리가 오디오가이드를 대신해 귓가에 때려 박혔다. 급작스러웠지만, 내가 본 장면은 어떤 아주머니께서 '절규'를 휴대폰 카메라로 담아내고 있었고 작품의 해설을 읽고 있던 여학생이 프레임에 들어오자 그 여학생을 프레임 밖으로 내쫓기 위해 가방을 툭툭 치며 말하는 모습이었다. 아주머니의 거친 생각과 여학생의 불안한 눈빛,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태프와 관람객들은 익숙하지 않은 소란에 '불안'을 느끼고 말았다.

[왼쪽] 불안 Anxiety, 1896 / [오른쪽] 절규 The Scream, 1895

  

  사건의 전후사정을 모르기에 무작정 아주머니를 비판할 수는 없다. 가령 여학생이 작품의 해설 앞에서 상당한 시간 동안 머물렀다던가, 여학생이 아주머니가 촬영하시고자 하는 작품마다 프레임에 들어왔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가 지적받을만한 일이라고 평가될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관람 중인 주위사람들을 물리고 사진을 촬영하신 아주머니가 타인에게 더 많은 피해를 주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아무튼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여학생도 제법 언짢은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쳐다보았지만 주위의 여러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소란은 금방 일단락되었다.


  잠깐의 소란을 경험한 뒤에 관람을 마치고 나와  예술의 전당 앞 정류장에서 '서초 11번'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하필 비가 내려 한 손엔 가방을 들고 또 다른 손엔 우산을 들고 있던 터라 기다림의 순간은 체감상 더욱 긴 듯했다. 탑승 대기줄이 길어지자 버스가 도착했고 사람들은 차례대로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서 튀어나오셨는지도 모를 한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뛰어와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우산을 털어버리시곤 재빠르게 버스에 탑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는 분명 「경범죄 처벌법」 제3조 제1항 제36호에 따라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해질 수 있는 ‘행렬방해’ 행위였다. 쉽게 말해 '새치기'를 당했다.


  근데 익숙했다. 바로 여학생에게 지적을 하던 그 아주머니였던 것이다. 탑승이 모두 이루어지자 아주머니의 피해자들이 앞다투어서 항의했고, 아주머니는 자신의 행위가 부끄러운 걸 알고는 있으신지 아무런 대꾸 없이 창밖의 비 내리는 모습을 쳐다볼 뿐이었다.


  불과 1시간 전에 남에게 피해 주지 말라며 여학생에게 지적하신 분께서 비 오는 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우산의 빗물을 털어내고서는 새치기해서 버스에 탑승하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아주머니의 인생관이 남다르신 걸까? 아주머니는 강렬한 시선들을 느끼기 힘들었는지 결국 한 정거장 후에 곧바로 하차하셨는데 내심 통쾌한 순간이었다. (물론, 원래 내리려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지적하다 「동사」 꼭 집어서 가리키다

가리키다 「동사」 「1」 손가락 따위로 어떤 방향이나 대상을 집어서 보이거나 말하거나 알리다.
가리키다 「동사」 「2」 가르치다.

가르치다 「동사」 지식이나 기능, 이치 따위를 깨닫게 하거나 익히게 하다

  지적을 한다는 의미는 꼭 집어서 가리키다는 의미로 '특정'이라는 의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나는 '가리키다'에 집중하고 싶다. 가리키다는 곧 ‘가르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또, ‘가르치다’는 상대방에게 깨닫게 하거나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에 본인 스스로가 '지식이나 기능,  이치'따위를 알고 먼저 알고 있음을 전제한다. 좀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지적을 하려면 본인스스로 지적할 사항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본인도 깨우치지 못한 것을 타인에게 알려주는 건 상당히도 위험한 일이고, 그 진실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단순한 조언을 하는 것도 조심스럽게 여겨지는 요즘, ‘지적’을 하려면 최소한의 ‘떳떳함’이라는 ‘자격’을 갖추어야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격 「명사」
 「1」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
 「2」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거나 일정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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