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인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SNS를 보다 보면 내가 관심을 가졌던 제품의 광고가 자연스레 눈에 띄고, 유튜브에서는 최근에 시청했던 콘텐츠와 유사한 숏츠나 영상이 조용히 재생목록에 추천되어 있다. 수요자의 입장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편리하고 도파민을 샘솟게 하지만, 공급자의 입장에서는 이것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짝사랑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바로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algorism)「명사」 『정보·통신』 어떤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입력된 자료를 토대로 하여 원하는 출력을 유도하여 내는 규칙의 집합. 여러 단계의 유한 집합으로 구성되는데, 각 단계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연산을 필요로 한다
나는 알고리즘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면 항상 음원의 '역주행'이 떠오른다. 대표적으로는 멤버 하니의 직캠으로 해체 직전의 EXID를 단숨에 지상파 무대로 소환시켰던 사례가 있고, 앞서 언급한 적 있는 DAY6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는 2022년 '불후의 명곡' 국군의 날 특집 무대를 계기로 알고리즘을 타고 역주행을 시작했다(올해 국군의 날 특집에서는 WOODZ의 'Drowning'이 역주행을 시작했다).
이러한 역주행 사례들은 뻘 속에 깊게 묻힌 진주를 찾아내는 느낌이라면, 스스로 알고리즘을 만들어 나가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내는 경우도 있다. 그 사례는 바로 걸밴드 'QWER'로 지난 4월 발표된 '고민중독'은 현재까지도 음원차트에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고, 최근 발표된 두 번째 미니 앨범 'ALGORITHM'S BLOSSOM(알고리즘이 피워낸 꽃)'의 타이틀곡인 '내 이름 맑음' 역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QWER은 앞서 말했듯이 스스로 알고리즘을 만들어냈다. 제작자인 유명 운동 유튜버 김계란은 오래전부터 음악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했고, ‘빠니보틀’과의 해외여행 중에 쵸단이 능숙하게 드럼을 다루는 모습을 보고는 걸밴드 제작을 결심했다. 이후, 멤버들이 모이는 과정과 합을 맞추어 나가는 모습을 촬영해 ‘최애의 아이들’이라는 콘텐츠를 제작했고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딱 하나만 물어볼게 넌
완벽이란 게 있다고 생각해?
조금은 어색한 하모니라 해도
그것도 그것대로 꽤 멋지잖아
누군간 나를 보고 수근대겠지만
그런 무례함은 도로 넣어둬요
취향은 존중해 그치만 이런 날
밀어내긴 쉽지 않을걸
'최애의 아이들'은 에피소드가 공개될 때마다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인급동(인기 급상등 동영상)에 오르기도 했는데, 시즌 1에서는 멤버들이 구성되는 모습부터 연습을 통해 데뷔에 이르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이런 시즌 1의 스토리에 걸맞게 데뷔곡으로 선보였던 'Discord'는 노래의 시작부터 완벽하지 않음을 말하면서도, 이미 대중들로부터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왔던 멤버들이 새로운 하모니를 통해 새로운 인정받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특히, "모두가 나를 사랑할 순 없겠지만, 그렇대도 난 실망따윈 안 해요"라는 가사를 통해 멤버들의 굳은 마음을 비추기도 한다.
뒤이어 발표된 첫 번째 미니앨범의 타이틀곡인 ‘고민중독’에서는 사랑의 상대방 혹은 대중들에게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하는 멤버들의 설레는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Discord’가 발표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높아진 완성도는 대중의 귀를 즐겁게 했고,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던 멤버들의 답은 ‘노력과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걸밴드에 관심이 없던 대중들도 알고리즘 덕분에 QWER을 자주 접하게 되었고 이들은 ‘최애의 아이들’을 찾아보는 등 서서히 알고리즘의 한 부분이 되어갔다.
‘최애의 아이들’ 시즌 2에서는 두 번째 미니앨범의 준비와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는 과정을 담아내며 '성장형 걸밴드'에 부합하는 스토리를 담아냈다. '고민중독'의 성공으로 QWER은 대중들의 알고리즘을 꽉 잡았고, '바위게'로 불리는 팬덤도 두터워졌다. 하지만, 기나긴 연습생 시절을 거쳐 데뷔하는 일반적인 루트와 달리 갑작스레 나타난 걸밴드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멤버의 일부가 인터넷 방송의 스트리머라는 점과 그간의 성공은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멤버들의 팬들이 만들어낸 ‘반짝 효과’라는 비판을 가했다. 이러한 비판은 멤버들의 자질 논란까지 이어졌는데, 보컬의 경우에는 과도한 AR로 립싱크를 한다는 것이었고 악기를 연주하는 멤버들의 경우에는 핸드싱크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논란은 QWER이 ‘2024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라인업에 포함되자 더욱 거세졌다.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을뿐더러 여러 논란들이 현재진행형이었기 때문이었는데 멤버들은 이러한 논란들을 의식했는지 강도 높은 연습을 이어나갔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 보컬인 시연은 펜타포트 무대가 있기 전인 대학축제에서부터 무반주 라이브를 통해 논란을 조기에 종식시켰고, 악기를 연주하는 멤버들은 각자의 악기에 액션캠인 고프로를 달고 무대에 올라 ‘5층 편집실'이라는 계정에 연주영상을 공개하며 논란을 완전히 깨부수었다.
어쩌나 시끄러운 우리들
가짜라고 놀려대도 기필코 너에게 진심을 전할게
알고리즘에서 태어나 / 색안경 위로 꽃을 피우자
온 세상을 연주해 버릴 거야 / 잘 들어보세요
정면돌파는 끝나지 않았다. 2번째 미니앨범에는 본인들의 정체성 논란을 담아냈다고도 볼 수 있는 '가짜 아이돌'이라는 곡을 수록했고 선공개했다. 신선했다. 한국의 다른 아이돌이나 가수들이 자신의 논란에 이렇게 정면돌파를 했던 사례가 있었나?, 나는 QWER멤버들이 혹시 이러한 반응들을 즐기는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발표되었던 두 번째 미니앨범의 타이틀 곡은 '내 이름 맑음'으로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고백을 하고 나서 답변이 오기까지의 심정을 담아내고 있다. 곡의 제목을 발음해 보거나 떠올리면 알 수 있듯 이중적인 제목으로 ‘맑음’이라는 주인공이 지금 당장은 비가 올 것처럼 울적하지만, 내일은 맑은 날씨를 맞이할 것이라는 희망을 보이고 있다. 이는 QWER이 마주했던 현실과 어쩌면 앞으로 마주할 흐린 날에도 내일은 항상 괜찮을 것이라는 의지이다.
코로나 19를 겪은 뒤로 비대면 콘텐츠의 인기는 나날이 증가했고, 지상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크리에이터들이 지상파 방송의 곳곳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반대로 지상파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연예인들이 유튜브로 자리를 옮겨가기도 했는데, 이는 문화 콘텐츠의 양상이 확실히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QWER을 바라보던 대중의 시선은 참으로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연예인들이 유튜버가 되는 것은 괜찮고 스트리머나 틱톡커가 가수를 하는 것은 반대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방식으로 나타난 아티스트에게 애초부터 가수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비판의 행태를 반복하는 것은 어쩌면 변화를 부정하는 ‘꼰대’ 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은 존재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다만, 우리는 좀 더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지게끔 살아나가야 할 뿐이다. QWER이 펜타포트 무대에 오를 때에도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일부 사람들은 침체된 밴드음악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쳤고, 자유를 상징하는 ‘락’을 전문가의 시선으로만 접근해서 품평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옹호의 근거는 QWER이 ‘최애의 아이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숨김없는 모습과 엄청난 량의 연습이었다.
QWER은 분명히도 성장했다. 멤버들은 자신들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악기와 한 몸이 된 듯 생활을 이어나갔고 한국에서 걸밴드로서의 자리를 개척하고 또 다져나갔다. 그런 모습에 대중들은 QWER을 인정하며 음원 차트 1위와(멜론 차트 HOT100) 지상파 음악방송(MBC 쇼! 음악중심) 1위, 떼창이라는 인정의 증표를 선물해 주었다. 이런 QWER의 모습에서 찾아낸 메시지는 간단하다.
적어도 검증된 노력이 배반당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내일은 맑음 이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