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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원 Aug 16. 2024

미도와 파라솔_이젠 잊기로 해요

근데 완벽히 못 잊는다는 거 알잖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이어가다 보면 친구들과의 만남이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일찍이 결혼한 덕에 음쓰를 버리고 귀여운 아기를 돌봐야 하는 친구도 있고, 지방 발령을 받아 다른 행정구역에서 살고 있는 친구, 매일매일 야근의 늪에서 허덕이는 친구 등 각자의 다양한 사정 때문에 만날 시간을 맞추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모시기 힘든 친구들을 한 번에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헤어졌다.


  나는 드래곤볼을 모두 모아 소원을 빌기라도 한 듯 마침표 포함 5글자로 친구들을 소환할 수 있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조롱과 비난을 일삼는 찐친들은 나의 이별에 어김없이 웃음으로 나를 맞아 주었고, 시계의 시침과 혈중알코올농도가 높아질수록 진중함의 농도도 올라갔다. 그렇게 농도가 올라가다 보면 반드시 듣는 소리가 있다. 


  "다 잊어진다. 잊어라. 잊어." 나는 친구들에게 헤어진 여자친구를 빨리 잊으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미 스스로도 이별의 직후부터 끊임없이 잊어내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표현이 좀 그렇지만, 반복적인 이별노래 청취로 ‘잊어야 함’을 세뇌시켰다. 이승기의 '삭제'라든가 테이의 '같은 베개...' 규현이 리메이크했던 한경일의 '한 사람을 사랑했네' 등등의 슬픈 이별 노래를 한동안 달고 살았다. 그렇게 이별노래 유목민 생활을 하던 와중에 당시 인기리에 방영 중이던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를 보고선 그 OST에 정착해 버렸다.


  누군가에게는 김완선이 불렀던 노래로, 또 누군가에게는 나처럼 OST로('응답하라 1988'의 OST이기도 하다) 익숙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 노래는 쎄시봉의 멤버인 이장희 씨가 1974년에 발표했던 노래이다. 그 당시 특유의 감성도 좋지만, 드럼과 기타 소리가 어우러지고 믿고 듣는 조정석의 보컬과 드라마 속 이별의 당사자였던 정경호의 감정선이 전달되어 애청자이기도 했던 나에게 유독 울림이 컸다. 또, 이별노래이기에 서글프지만 경쾌한 멜로디가 나의 복잡한 감정들을 감쇄해 주는 듯했다.


사람 없는 성당에서 무릎 꿇고 기도했던걸 잊어요
그대 생일 그대에게 선물했던 모든 의미를 잊어요
술 취한 밤 그대에게 고백했던 모든 일들을 잊어요
눈 오던 날 같이 걷던 영화처럼 그 좋았던걸 잊어요

  노래의 가사에선 짝사랑이었는지, 연인이었다가 헤어지게 된 상황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이별을 마주한 것은 분명했다. 특히나 기도와 같은 아주 개인적이거나, 선물 그 자체보다는 선물에 담겨 있던 의미를 잊어보려는 등 사랑의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것들을 잊어보려 하기에 왠지 모르게 더욱 애잔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일상적인 순간들을 잊어나가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취기를 빌려 고백을 했던 순간과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던, 함께 걷던 길을 잃어나가야 하는 등 일상의 순간들을 잊고자 한다. 일상을 잊어나가야 한다는 건 그만큼 상대방이 나의 마음에 오랜 시간 깊숙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렇게 깊숙하다는 건 그만큼 이별의 아픔도 클 것임을 암시한다. 



상처가 아문다는 것, 잊어낸다는 것


  이별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디서 배운 적도 없지만, "시간이 약이다."라며 조언하곤 한다. 결국에 이 말의 속 뜻은 이별의 아픔이라고 볼 수 있는 상처가 아무는 시간을 견뎌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상처가 아무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건 그만큼 사랑이 깊었다는 반증일 것이기에 애틋하지만 슬픈 상황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상처가 아물어가면서도 아픔은 느껴지겠지만 무뎌짐이 올 때까지 견뎌내야만 한다.


  상처가 회복되었더라도 흉터로 남는 경우가 있고,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한 경우도 있다.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었거나, 끝이 좋지 않았던 이별은 잊어내더라도 마음속에 흉터로 남을 것이고 정말 사랑했고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잊어내는 건 힘들겠지만 흉터 없이 시원? 깨끗할 수 있다. 


  노래에선 반복적으로 "잊어요."를 외치며 많은 것들을 잊어나가려 하지만, 누구나 알듯 완벽히 지워낼 수 있는 기억은 없다. 우리는 좋은 기억들 속에 숨어있는 아픈 기억들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내듯 지워내 나가야 한다.


  결국에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행복했던 추억만이 남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기억을 만들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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