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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isie Jan 10. 2021

Homo Avoidancus (회피하는 인간)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 그러나 더는 두렵지 않은 것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이 있다면, 6-7년 간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이상 나와 일상을 공유해온 사람들의 민낯-보지 않았다면 좋았을 사람들의 이면-을 봤다는 점이다. 그것은 무의식 깊이 사람에 대한 공포와 불신을 심어주었다. 내가 마주한 보통 사람들이 지닌 뒤틀린 욕망과 이기심, 악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고 어두웠다. 그래서 나는 일상에서 선한 얼굴을 하고 친절한 말과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과 언제든 돌변할 수 있는 악한 면모를 가진 사람 사이의 간극을 도무지 좁힐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이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차분하게 글로 적어 내려가면서 정리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누군가가 무심코, 가볍게 내뱉는 말일지라도 그것이 나를 자극하는 것이라면, 쉬이 지나치지 못하고 숨겨진 의도를 찾고자 곱씹어 보곤 했다. 나에게는 특별한 기억이 없는데도 어떤 상황이나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만큼은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조금이나마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상황이나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 나의 감정은 폭발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라는 스위치가 꺼지고 온전한 암흑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대개는 그 순간의 일들 역시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겁에 질린 현재의 나도, 끔찍한 일을 겪었을 과거의 나도 두렵기만 했다.

한동안 과거의 조각들을 맞추기 위해 매진했다. 미싱 링크들을 다 찾아내 연결하고 나면 지금의 나를 -정확히는 나의 선택들로 인한 지금의 삶을- 제법 이해할 수 있고, 다시 나답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끄적여 놓은 노트들을 뒤적거리고, sns에 남겨진 사진이나 글들을 들여다보았다. 어떤 기억들은 싱크홀의 잔해 속에 숨어 있었고, 어떤 기억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떠오르질 않았다. 때로는 나의 머릿속 상황을 모르는 지인들을 만나 과거 이야기를 유도하기도 하고,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넌지시 물어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나다움’의 요소는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것들은 너무나 극과 극이라 쭈욱 나열해 놓고 보면 다중인격 같아 보이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몹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다른 상황과 장소에서 여러 자아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멀티 페르소나의 방증이 아닐까 싶지만!

이전의 나를 좋아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실제로 기억을 잃은 기간보다 기억하고 있는 기간이 더 길었음에도, 왜 그렇게 나를 찾겠다고 헤매고 다녔는지 아이러니다. 어쩌면 틀린 그림 찾기를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기억할 수 없는 일들은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나는 변했을 테니까. 기억의 공백 뒤에서 과거의 나와는 달라졌을 나의 모습을 찾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아무리 잃어버린 조각들을 찾아 구멍을 메워보아도 에멘탈 치즈가 모차렐라 치즈가 되진 않았다. 오히려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난해한 치즈가 되어가고 있었을 뿐이다. 결국 내가 노랗든, 하얗든, 딱딱하든, 말랑하든 치즈라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쨌든, 감사일기

나는 더 이상 기억이 없다는 사실로 불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고, 게다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 내가 살면서 이렇게 대책 없이 긍정적일 때가 있었나? 어쩌면 너덜너덜 구멍 난 내가 빡빡하게 채워진 나보다 한결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살면서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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