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하기를 그친 세대를 살기위해 오늘도 사고를 친다
미적분이 일상생활에 쓸모가 있어?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는 걸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안다.
수학은 계산의 학문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학문이고 자연스레 언어와 연결되어 문해결과 문제해결력이 함께 자라나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의 교차되고 특성화된 학문의 교집합을 인정하기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극대화하고 배워야 할 사고력보다 입시를 위한 교육이 주가 되어 이과는 숫자를 나눠놓은 사람으로 문과는 숫자와 관련 없는 사람으로 분류해 버리고 구분해 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원래 통합적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통합적 사고를 하는 사람까지 자라나기보다. 적당한 수준에서 사고하기를 멈춰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시대의 관성이 되어 우리 사회에 나타났다.
증명해 보라고?
사람이 사고하기 그쳤다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사회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유튜브를 통한 간접체험은 직접적 체험과 사고의 기회를 빼앗아버렸고 사람들은 영상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자신의 경험으로 해석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그 영상도 보는 것을 그치고 쇼츠콘텐츠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 시대의 별종일지도 모른다.
첫 학문의 시작은 신학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우주와 자연에 대한 물음을 신에게 묻는 것으로 학문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런 의문은 자연스레 철학이 되어 우주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철학은 자연스레 자연주의 철학과 인본주의 철학으로 나뉘었다. 물론 그 흐름에 꾸준하게 신학도 함께 발전해 왔다.
그런데...
인본주의 철학의 한계가 마치 시대의 흐름을 타고 고민을 그쳐버렸다. 무척이나 고민한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풀지 못하는 문제를 탐구하고 사유하기보다 다름으로 인정해 버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원인을 밝혀내기 그쳐버린 결과는 각자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 밖에는 없다.
'존중'은 태도에 관한 문제이지 철학적 질문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의 사회는 많은 철학적 질문은 패스해 버리고 존중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받아야 존중이라며 떼쓰고 있다. 모든 질문을 하나의 답으로 맞고 틀림을 가를 수 없다. 수많은 철학자 신학자들이 다양한 인간의 질문에 각자 다른 사유의 답을 내린 것처럼 여러 가지의 문제는 올바른 기준 속에서 답을 내려야 하는 문제다.
시대를 거슬러 경쟁력 있는 무기를 장착해야 한다면 지금의 시대에는 결국 사유하는 힘이 아닐까??
40을 넘긴 나이에도 수학을 여전히 해야 하는 이유다.
문제를 푸는 수학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수학을 해야 한다.
나는 오늘도 날 선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