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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narae Kang Feb 08. 2019

배우고, 혁신하고, 책임지는 공무원

암스테르담 동항구 전 개발사업단장과의 만남


암스테르담시에서 거의 30년을 봉직하고 은퇴한 공무원 한 분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암스테르담 동항구지역 개발사업에 관한 원고를 쓰던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사업의 비용과 수입 정보를 여쭤보기 위해서였다.




그분은 파울 레이나르츠(Paul Rijnaarts)!


도시계획부서에서 도시설계가, 도시계획가로 커리어를 시작해, 나중에는 토지개발부서를 아우르는 여러 도시계획 사업의 책임자를 역임했다. 암스테르담 동항구 지역에서부터 지금도 진행 중인 에이뷔르흐(Ijburg) 사업 책임자(projectleider)에 이르기까지, 각 사업마다 수년 이상 헌신을 다했다.

그가 특히 마무리 단계에서 10여년 이상 일했던 암스테르담 동항구지역은 그가 개발단장으로서 정성을 다해 마무리지었던 사업지이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불과 1-5km 거리에 펼쳐져 있는 동항구지역(Oostelijk Havengebied)은 19세기 말 조성된 인공반도(人工半島)로, 원래 수운물류업의 중심지이자 선박수리소들이 있던 산업용지였다. 그래서 큰 창고 건물이 아직도 꽤 남아있다.


1980년대 이 곳을 업무공간과 문화예술, 생활편의 시설이 어우러진 복합 주거지역으로 재개발하려는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재개발이라 하면 싹 다 밀어버리는 '전면 철거' 방식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 곳은 기존 산업유산 건물들을 곳곳에 남기고, 원래 있던 가로체계과 물리적 형태를 살려 역사성이 이어지도록 했다. 중앙역에서 가까운 노른자위 땅을 쾌적한 주거지역으로 바꾸면서 분양주택뿐만 아니라 사회임대주택도 총 신축수의 30% 이상이 되게 했다. 시는 공영토지개발을 통해 동항구지역의 용도 변경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환수하여 시 곳곳의 공원들을 정비하고, 다른 도시계획사업들의 적자를 메꾸는 데 재투자했다.


파울 레이나르츠는 동항구지역 개발단장으로서 1990년대를 거쳐 점차 구체화되고 확성되어가는 도시계획안을 실행했다. 도시기반시설의 설계와 시공 및 필지 구획, 택지 분양이 일정에 맞게 추진되도록, 시 내부에서는 여러 부서에서 파견된 분야 별 전문 공무원들의 의사결정을 조율하고, 시 외부적으로는 토목 시공사와 사회주택 공급자인 주택협회, 민간 건설사 등과 여러 계약 건들도 관리했다.


빨간색: 암스테르담 동항구지역.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시의 공영토지개발을 통해 복합 주거지역으로 변모해감.




용단(勇斷)과 책임, 그 결과는?


다음은 그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동항구지역 개발 사업단장으로서 비용은  줄이고, 수입은 실현하여 시의 공공재정에 기여하고자 그가 내렸던 결정 중 하나이다.

1990년대 초 그는 동항구지역과 에이뷔르흐를 연결할 피트헤인터널(Piet Hein Tunnel) 공사에 필요한 최선의 공법과 기술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기반시설 및 토목공학 컨퍼런스 참석차 주말에 방문한 벨기에 안트워프(안트베르펀; Antwerpen)에서 흥미로운 소식을 들었다. 당시 안트워프 항구에는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을 건조하는 임시 건설 부두가 있었는데, 그 시설이 곧 철거될 것이라 했다.

피트헤인터널에 필요한 구조물을 통째 건조하기에 그만큼 큰 시설은 사실 네덜란드에 마땅히 없었다. 로테르담 권역 바런드레흐트(Barendrecht)에 하나 있는 건 당시 신규 주문이 불가했다. 만약 안트워프 항구에서 터널 구조물을 건조하면 암스테르담 에이강까지 수운으로 옮겨오기 쉬울 뿐 아니라, 터널 착공을 제때 할 수 있을 터였다. 터널 구조물의 각 부분을 최대한 큰 단위로 한꺼번에 건조하는 것이 향후 조립하여 이음새를 막는 데도 더 수월했다.

그는 그 주말, 그 자리에서 안트워프항구 관계자와 구조물 건조를 위한 임시 건설 부두 사용 계약을 체결해버린다. 당장 예정된 철거 작업 착수를 멈추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그 임시 부두는 당분간 철거를 면하면서 수입을 창출할 수 있었고, 암스테르담시는 상대적으로 싼값에 터널 구조물들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 구조물을 암스테르담까지 수운으로 통째 옮겨와 에이강 지하 피트헤인 터널을 세우는 데 박아넣으면, 그 전까지 필요로 했던 구조 시공 중 중요한 부분을 해결하는 셈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비용을 크게 줄이는 방법이었다.

문제는 그가 그 큰 지출 건에 대해 상부의 결재없이 프로젝트 리더로서 먼저 계약서를 쓴 다음, 사후 승인을 청했다는 점이다. 주말이라 연락하기 어려웠다나! 그 다음주 시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는 부시장에게 솔직히 보고하고, 나중에는 시의회 앞에 불려 나가 직접 해명해야 했다. 하지만 각종 토목공사 비용과 기술적 문제를 고려해봤을 때 그 방법이 전체 공사비를 낮추고 공기를 단축하는 방법임이 분명했기에 그는 결과적으로 부시장을 통해 시의회로부터 받은 신임을 지킬 수가 있었고, 일을 다 마무리할 때까지 자리도 오래 지킬 수 있었다.

물론 절차 상으로 절대 일반화할 수 없는 순서이기에 그는 감봉 처분을 받았다. 그는 그 주말 결정을 내릴 때 결코 쉽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외로움 가운데서 단호히 결정한 이후, 그 결정에 대해 설명하고, 터널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여기면서, 족히 5년은 밤낮으로 고민하며, 관련 발주 계약 건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겼다고 한다. 그 긴장은 가히 상상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피트헤인터널은 아직까지 네덜란드에서 공사기간 연장 없이 당초 예산 범위 내 완공된 유일한 터널이 되었다. 1993년 착공, 1997년 완성.


동항구지역 개발 전체는 도시설계 측면에서도 꽤 호평받았고, 공공재정 측면에서도 큰 흑자를 낳았다. 그는 결국 그 주말의 결단과 그 이후의 노력에 대해 두고두고 자랑스러워 했다. 동항구지역 개발 흑자는 추후 시의 다른 도시계획사업 중 적자가 불가피한 사업들에 투입된다.

이 일화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다양한 차원과 규모의 고려사항들을 조율해나가야 하는 공영토지개발사업의 아주 작은 단면을 보여줄 뿐이다. 무조건 비용을 줄이는 것도 능사는 아니고, 반대로 시가 공영 토지 개발 사업에서 수익 최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능사도 아니다.


땅장사냐, 도시 공간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공익을 지키는 도시계획 사업이냐는 그 경계가 모호하기 쉽다. 둘을 늘 깨끗하게 떼어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간의 질이 향상되면, 그 공간의 가치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내가 보기에 중요한 질문은, '"도시공간의 변화를 통해 확보하고자 하는 공공성은 무엇인가"에 대해 민주적으로 합의된 절차에 의한 공론이 존재하는가', '그 공론을 통해 합의된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는가', 그리고 '그 이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정책 수단,  사업 구조를 채택하고 있는가'이다.

공공성은 다면적 개념이고, 복잡하며 포괄적인 개념이다. 도시경관의 아름다움, 공공공간의 심미성, 이용자에게 편안한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 주의 깊게 설계된 차량 동선, 충분한 녹지, 산업역사 건축유산의 보존, 자가소유와 임대와 사회주택을 골고루 섞는 균형잡힌 신규 주택 공급계획안과 택지공급가 및 주택분양가의 적절한 규제까지 정말 다양한 주제와 요소가 공공성이란 그릇 안에 담긴다. 이익최대화를 목표로 하다보면 평형 넓은 고가주택 아니면 닭장처럼 단위면적 당 수익성을 최대로 뽑아내는 오피스텔로 공급 내용이 채워지기 쉽상이고, 그 물량 가운데 공간의 다양성과 사용자를 배려한 공간의 질, 공공공간 네트워크는 뒷전이 되어버린다. 이를 방지하려면, 즉 새로 지어질 주택 유형과 대상가구와 가로체계 등 그  물리적 도시형태가 다양한 사회적 필요를 반영하게 하려면, 공공의 개입과 규제는 불가결하다. 건설사의 편의를 더 존중하는 공급 주도 개발이 아니라 수요 측의 필요에 맞추는 개발, 주택 입주와 동시에 필요한 생활편의시설도 제때 이용 가능하게 맏드는 세세한 조율이 실제로 작동하는 개발은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다. 다만, 공공이 어떻게 개입하고 규제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그에 대한 답으로 암스테르담시는 공영토지개발사업이란 사업 형식을 택해, 그 사업 그릇 안에서 다양한 기법들을 개발 단계, 단계마다 세밀하게 적용하여, 공공성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는 방향으로 부동산 개발을 촉진해 왔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필자 책 참조!)

파울 레이나르츠씨는 적어도 시가 사업비로 빌려온 돈이 가치 있게 효율적으로 쓰이도록, 또 벌 돈을 잘 벌어 효과적으로 지출하도록 사업시행에 관한 총책임자이자 조율자로서 탁월한 관리 역량을 발휘했다. 물론 시의회 연정의 합의사항과 정무직 부시장의 정치적 바람을 실현하고 따라야 하는 틀 내에서 말이다. 그는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고, 책 잡히지 않으려 방어하기에 급급한 공무원은 아니었다. 내가 맡은 역할과 자리에서 최대한 공공성에 기여하는 길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상황과 선택의 갈림길마다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관계자에게 설명하고, 설득하고, 책임졌다.


여기에는 공무원에게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공공성에 기여하는 방법을 적극 고민하여 문제 해결책을 찾아내길 기대하는 암스테르담 공무원 조직 문화가 전제된다. 공무원은 각 부서를 순환하기보다는 처음부터 각 부서의 채용 절차를 거쳐 영입되어 그 분야 전문가로서 성장한다. 채용 시는 해당 정책 분야 관련 전공과 관련 조직 근무 경력, 직무에 관한 이해와 자질을 따지고, 직속 상관 및 팀장/부장과 인사 담당자와의 인터뷰를 여러 차례 거친다. 그는 델프트공대를 졸업하고, 암스테르담시 도시계획 부서에 채용된 이래 29년 10개월을 쭉 도시계획 사업 분야에서 일했다.




암스테르담시의 조직 혁신


그는 사업 담당자로서 특히 199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암스테르담시의 조직 편제 변화와 개발 및 조직 문화 변화를 몸소 겪었다. 관련 내용은  정치학자 Herman de Liagre Böhl가 쓴  Amsterdam op de helling; de strijd om de stadsvernieuwing 란 책에 일부 비교적 소상히 나온다. 그 책에서 읽은 내용과 관련, 확인 질문을 던지던 중 그분이 들려준 증언에서 추가적으로 되씹게 되는 내용이 있다. 묻지도 않았는데 그분이 자연스럽게 곁다리로 펼쳐갔던 이야기, 책에서는 찾을 수 없던 이야기였다. 권위를 내세우고, 권한을 완장 삼아 알력을 겨루던 남자들을 주요 의사결정 자리에서 빼내고, 그 자리에 여자들을 앉혔더니 일이 훨씬 잘 되더라는 말. 처음 그 말을 들을 때 속으로 깜짝 놀랐다. "아니, 본인이 남자인데, 60대 중반은 족히 되는 이 분이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시지?"


고위 의사결정직에 여자를 앉혔더니 훨씬 더 일의 목적에 잘 집중하여 소통도 잘하고, 협업도 잘하고, 도시계획사업이 탄력 받더라, 합의에 도달해 결정 내리는 속도도 올라가고 결정의 질도 높아지더라는 이야기. 당시 시는 계획이면 계획, 주택정책이면 주택정책, 토지개발이면 토지개발, 토목공사면 토목공사, 각 부서 별로 차출해 개발 단위 별로 사업단을 꾸렸고, 상위 의사결정 및 보고체계를 재편 중이었다. 갑자기 여성 리더십을 찬양하던 그 말은 내가 던진 질문 내용과 의도와는 전혀 별개이기도 했고, 내가 그쪽으로 유도한 것도 전혀 아니었고, 원고가 젠더  문제를 다루는 것도 아니라는 걸 그분은 명백히 아실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씩 웃으며 여성 리더십을 강조하던 게 좀 신기했다. 나한테 뭘 보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졸업하면 암스테르담시 토지개발부에 지원해보라고 바람을 넣기까지 하셨다. 나는 들으며, '아, 그래요?' 건조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원고에는 맥락에 맞지 않아 넣지 않았던 그 말들이 종종 다시 떠오르곤 한다.




정리


암스테르담이 지난 삼십여 년에 걸쳐 세계 도시, 즉 혁신성, 지속가능성, 포용성 등 각종 지표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세계 도시로 도약해 온 데는 이런 뒷이야기도 있다.


- 감히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공무원, 정치적으로 합의된 개발안을 가장 효율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 계약서 하나, 하나 꼼꼼하게 챙기면서 그 결정들이 가져올 결과를 고려하여, ‘공공성’ 관점에서 이해관계자와 정치인을 설득하고, 본인이 하는 일이 암스테르담을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을 믿으면서 계약 발주와 이행 점검부터 점운동가 모임과의 협상까지 끊임없이 배우고, 아우르고, 시도하며, 맡은 책임을 주도적으로 다했던 공무원.


- 여성 리더십. 이건 그분이 지나가며 언급하신 내용. 이 쪽으로 더 깊이 찾아보고, 연구해보진 못했다. 다만, 얼마 전 작고한 전직 시장에 이은 현 시장이 네덜란드 최초 여자 시장이고, 암스테르담의 도시계획을 총괄하는 현 '공간과 지속가능성' 부서장(즉, 도시계획부서장)도 여자라는 점, 이전 기반시설환경부장관도, 현 기반시설수리부장관도 여자임을 밝힌다.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을 고취하고, 꼭 젠더 차별을 의제로 삼지 않더라도 부서 이기주의와 견제보다는 협력을 축하하는 조직 문화를 가꿔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런 가치를 추구하고, 실무도 꿰뚫는 성숙한 리더십이 의사결정 요직에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내가 조직행동 연구자, 행정조직-인사 전문가는 아니어서 사실 그가 말해준 일화들의 함의와 적용점을 다 해석해내긴 어려웠다. 그건 내 역량 밖인 것 같다. 일반화도 무리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는,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고, 실제 공무원으로 일하시거나, 지방분권과 지방정부 공무원 조직의 혁신, 개선을 위해 고민하고, 일하고, 연구하시는 분들께 영감이 되고 도전이 될까 싶어서이다. 필자 역시 기회가 닿는 대로 공무원 조직과 전문직 공무원 채용제도의 발전, 전망에 대해 연구하시는 분들의  연구물을 접하고, 고민하고, 더 깊이 알아가고 싶다.




공무원 시험 없는 네덜란드 정부 조직

네덜란드는 일률적인 공무원 시험이 없다. 보통 정부조직의 각 분야 별, 부문 별 신입직 한 자리, 경력직 한 자리, 특정 사업 정책 자문관, 고위 사업단장 등 자리가 나면, 공지가 되어, 각 자리마다 개별 지원이 이뤄진다. 지원자들의 이력서에 따라 인터뷰에 초대받고, 그 직위가 요구하는 자질과 전공, 경력이 맞아서 인터뷰를 거쳐 영입이 결정되면, 그 분야 전문가로서 경력을 쭉 쌓아간다. 예를 들어, 암스테르담시 토지개발부서에 들어가면, 나중에 도정부나 중앙정부의 토지정책 관련 부서로 지원하여 옮겨가는 식이다.

정무직 부시장도 마찬가지다. 주택 정책이면 주택정책, 교육이면 교육, 회계 감사면 회계 감사, 재무 관리면 재무관리, 각 분야 전문가로서 경력을 쌓아가면서, 지방정부 의회 선거가 열릴 때마다 타지방정부로 옮겨가기도 한다. 각 지방정부 선거마다 구성되는 연정에서 합의하여 특정 정무직 부시장 후보를 초빙하면, 최종 의회 면접을 통과하여 임용된다.

나라가 천칠백만 명으로 좁다 보니, 해당 정책 분야에서의 전문성과 문제해결력, 실력과 평판으로 걸러지는 셈이기도 하다. 또 채용하는 담당자, 즉 각 정부 인사담당자뿐 아니라, 뽑은 사람에게 일을 시켜야 하는 직속상관의 책임이 강조된다. 이 체계가 다른 체계보다 나은지, 장점과 단점은 뭔지, 깊이 들여다보고 비교해보지 못해서 속 시원한 판단은 못 내리겠다. 다만, 전문성을 키워가는 장점, 전문가로서의 직업윤리가 높이 요구된다는 점은 주목된다. 이상적으로는 시민의 봉사자로 공공 서비스를 공명정대하게 제공하며, 법의 테두리 내에서 정치적 공약을 이행해갈 손과 발이 되는 게 관료의 역할이겠기에.


암스테르담시 보고 체계

네덜란드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처럼 내각제로 운영된다. 시의회 선거 결과에 따라 여러 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연정을 꾸린다. 그 연정에서 각 정책 부문 별 전문 부시장을 임명한다. 정무직인 부시장들은, 시의회 추천과 내무부의 검증을 거쳐 형식 상 왕이 임명하는 행정직인 시장과 함께 공동으로 시정을 이끌어나간다. 내가 만난 그는 도시개발 담당 부시장에게 보고하는 공무원이지만, ‘전문’ 공무원으로서, 한 사업 단위의 ‘책임’ 관리자로서, 자신이 가진 재량권을 주도적으로 발휘했다. 공적 자금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동시에 공공성을 견지하는 개발이 되도록 창의적으로 행정적인 문제를 돌파해가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정치인의 공약이 이뤄지려면, 정무직 부시장의 바람을 이루려면, 실무 차원에서 돈도 해결돼야 하고, 입찰과 계약 등도 제 때 진행되어야 하니 말이다.




덧 하나. 그를 만나게 된 계기


내가 그를 알게 된 계기는 팍하위스 더즈베이허(Pakhuis de Zwijger)에서 열린 암스테르담 시공공토지임대제에 관한 공개 토론회에 참석해서였다. 암스테르담시는 백여 년 넘는 역사의 시공공토지임대제를 현재 바꾸는 중이다. 이에 대한 논평은 또 다른 주제이나, 당시 공개 토론회에는 토지 개발 담당 부시장과 여러 공공재정 전문가, 연구자가 연사로 참석했다. 청중 질문 시간이었는데, 난 그의 질문과 의견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니, 저렇게 똑똑한 질문을 던질 수가? 저렇게 핵심을 짚는 의견을 피력할 수가?’


그 질문 요지는 시의 토지가치 사유화 흐름에 관해 문제제기를 던지는 것이었고, 나와 가장 유사한 관점이었다. 반가웠다. 솔직히 다른 청중 질문은, 연구자로서 보기에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소위 가짜 뉴스에 입각한 질문도 꽤 있었다. 도시계획가이자 도시개발 프로젝트 리더로서 공공에 의한 토지가치 환수가 활기찬 도시공간을 가꿔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실무를 통해 체감하고, 그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던 그의 질문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토론회 후 흩어지는 인파 속에서 그를 굳이 찾 인사하고, 자기소개 후 연락처를 청했다. 그리고서 한참 후 동항구지역 개발에 관해 원고를 쓸 기회가 있어 그에게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다.


반가운 귀인을 만났던 2017년 1월 23일 월 저녁 행사는, 바로! "암스테르담 시공공토지임대제를 어떻게 개정하고 있나?" - 시정부의 중간보고회이자 공개 토론회 느낌의 행사.


그는 토론회에서 질문할 때 자신을 전 동항구지역 개발사업 책임자(projectleider)이자 은퇴한 공무원으로 소개했다. 또 동항구지역 전체에서 시가 환수한 개발이익 규모를 구체적인 수치로 이미 언급했었다. 따라서 그는 문헌 조사만으로는 얻기 힘든 개발 비용 및 수입 규모에 대한 정보와 개발 과정에 대해 물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동항구지역 개발 과정을 십여 년 넘게 속속들이 알면서 사업 마무리까지 한 사람이니 말이다.

놀라웠던 점은, 내가 이메일로 인터뷰를 청하며 질문 목록을 미리 보냈을 때, 간결하면서도 내가 필요로 하는 핵심이 다 들어가 있는 답장을 하루 안에, 때로는 당일에 보내주었던 점이다. 아마 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료를 다시 뒤져봐야 했을 수도 있는데, 그 대략의 수치를 은퇴 후에도 기억하고 있고, 바로 응답해줄 수 있었음은 곧 그가 얼마나 그 도시개발 사업에 책임을 다하고, 헌신된 공무원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인터뷰는 2017년 11월 6일 월 서면, 11월 15일 수 대면으로 이뤄졌다. 이 글은 미처 책에 다 싣지 못한 그의 일화를 나눠도 되는지 그의 동의를 묻고 얻어 게재한다.



Pakhuis de Zwijger는 1933-34년 냉동창고로 지어진 건물이다. 한 때 수운물류업의 중심지였던 동항구지역의 과거를 상징한다. 2001년, 뒤로 보이는 Jan Schaefer다리의 건설 계획에 따라 철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역 역사애호가들과 시민, 점거운동가들의 반대로 철거 계획은 취소되었다. 보수와 개조를 거쳐 2006년부터 새로운 시민 담론을 형성하는 다양한 컨퍼런스, 워크숍, 공정회, 토론회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André van Stigt 건축가의 수복안에 따라 지금의 모습이 되었고, 공간 운영은 Pakhuis de Zwijger 재단이 담당하고 있다. 1층은 까페 식당에서는 김치 두부샐러드도 판매한다! 다리가 건물 1층을 그대로 관통하게 한 점이 특징이다. De Zwijger는 '침묵자'란 뜻인데, 네덜란드 건국의 아버지 빌럼 판 오란여(Willem van Oranje, 1533-1584)의 별칭이다.




덧 둘. 새 책과 감사!


동항구지역 시영 토지개발사업의 수입과 비용에 관해서는 원고 65쪽 중 불과 2쪽 남짓 다룬다. 하지만 이를 알려준 그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 나는 동항구지역 원고에 착수할 용기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용기내어 문의했을 때 기대 이상으로 일목요연한 답을 주었던 귀인에게 감사!





새 책

(강빛나래, 2018: 135, 179)


강빛나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동항구 재생. 토지공개념에 따른 ‘포용적 성장’ 가능성" in 세계의 지속가능 도시재생. 민유기 엮음. (국토연구원, 2018),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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