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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narae Kang Jan 29. 2019

미래 세대에 물려줄 경관  

소중한 선물 - 도시 풍경, 한국 진주와 네덜란드 아머스포르트 사이에서



1. 어느 오래된 도시


https://nl.m.wikipedia.org/wiki/Bestand:Sint_joriskerk_te_Amersfoort.JPG

인터뷰 약속 덕분에 처음 가 보는 인구 15만의 도시 아머스포르트(Amersfoort). 수도 암스테르담에서는 직행 기차로 30분 거리이다. 또 다른 대도시 위트레흐트(Utrecht)에서는 기차로 15분이다.


아머스포르트는 수년 전 책으로 처음 접했다. 1990년대 피넥스(VINEX) 계획에 따라 대규모 주거단지를 건설한 곳 (Mallach, 2010: 327). 인구 증가와 주변 대도시의 주택난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Amersfoort binnenstad https://pxhere.com/nl/photo/771675

실제 가 보니 천년 역사가 어려있는 도심을 잘 보존해 두었다. 그 가운데 서 있는 교회는 15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역사도심에서 방사형으로 신시가지를 넓혀 간 것을 버스 노선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기차역에서 인터뷰 장소까지 걸어가며 거리 풍경을 몇 장 사진으로 찍었다. 고즈넉함 속에 차곡차곡 쌓인 시간의 결이 느껴졌다.


이음새는 허술해도 덧대고 덧대어 이은, 이 묘하게 조화로운 풍경.  이 풍경을 아침저녁으로 보고 자라날 아이들이 새삼 부러워졌다. 정감 어린 골목과 옛 건물이 군데군데 새 건물과 어우러져있는 이 풍경을 보며 아이들이 부지불식 간에 마음에 새기게 될 메시지란 바로 삶에 대한 존중, 인간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풍경을 마음에 담아둘 때는 곧 그 안에 담긴 정서, 느낌도 함께 담아두게 되니까.




그렇게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진주를 떠올렸다.




2. 내가 태어난 도시



한 번씩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내가 사는 환경을 내가 어떻게 인식하는지 말이다.


초등 2학년이었는지, 3학년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여름 방학, 나는 탐구생활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우리 집 주변을 지도로 그려보는 것이었다. 우리 집으로부터 오른쪽 위에는 주약동 한주럭키아파트가 있고, 그 방향으로 계속 가면 가좌동, 주공아파트, 연암공대, 경상대가 나온다. 그렇게 한 축이 있으면, 오른쪽 아래로는 천전초등학교가 있고, 그 방향은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이어졌다.


당시 내 머릿속 지도에는 경상대까지 이어지던 축이 위에 있었다. 그쪽으로는 바다 쪽, 삼천포로 올라간다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 보니 지도상 남쪽이다. 또 오른쪽 아래, 그러니까 진짜 지도 상 북쪽으로는, 산청과 지리산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떤 공간의 분절, 소위 말해 조화롭지 못한 경관과 난개발을 마음에서부터 느꼈던 때가 바로 그 초등학교 시절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나중에 발견하게 된 것인데, 그 국도 변 풍경은 김영삼, 김대중 시절 국토계획 개발규제 완화와도 관련이 있었다. 길을 따라 하나둘씩 늘어나던 고층 아파트와 모텔, 전원식당이 그냥 우연은 아니었다.


[["특히 1995년 7월 외지인도 거주지에 관계없이 논밭을 사고팔 수 있는 방향으로 농지법이 개정되자 무분별한 준농림지 개발이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이어 같은 해 10월 건설교통부가 국토이용관리법 시행령을 고쳐 음식점 및 숙박시설의 설치를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제한할 수 있도록 했지만 [...] 난개발은 아무 규제를 받지 않는 실정이었다. [...] 준농림지에 대한 규제는 곧이어 닥친 IMF 외환위기 여파로 유야무야 된다. 1998년 12월 '건설 및 부동산 경기 활성화 대책'으로 준농림지에 대한 토지이용 규제가 대폭 완화된 것이다."]]
대한민국 부동산 40년, 국정브리핑 특별기획팀, 한스미디어, pp.161-162. 


그 무렵 주말이면 자주 가족과 차를 타고 나갔다. 진주에서 산청 경호강변을 지나 거창을 다녀오곤 했다. 국도 양 옆으로 불규칙하게 들어선 건물들을 마주칠 때면 때때로 이상함과 낯섦, 뭔가 불편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명석마을 올라가는 길 초입, 국도 옆에 들어선 아파트, 지금 내 기억으로 10-13층 되는 아파트가 사실 좀 끔찍했다. 어린 마음에 왜 그렇게 느꼈는지, 본능적 감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왜 산등성이를 바로 뒤에 두고, 다른 주택들이 거의 없는, 단독 저층 주택이 드문드문 나타나는 마을 초입에 그런 거대한 아파트가 들어서야 했는지 좀 이상하다 느꼈다. 맥락 없이 산을 가리고 서 있는 그 아파트가 흉측하다고 생각했다. 구글 지도를 찾아보니 명석동신아파트라고 나온다. 그 아파트를 좀 지나면 나타나던 유치원, 더더욱 부조화스럽게 느꼈던 괴기한 건물은 프뢰벨자연과학어린이집이라고 나온다. 맙소사. 20년은 지난 것 같은데, 그 자리에 있다.


왜 이상하다고 느꼈을까? 갑작스러운 밀도의 차이… 밀도 높은 도시를 벗어나 나대지나 임야에 우뚝 솟아난 건물… ‘나 받아달라’ 강제하는 느낌이랄까, ‘참으며 살아라’ 들이미는 아픔이랄까.


차라리 지금은 오히려 익숙해져서 그런 풍경이 그렇게 생경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쉽게 흉측하다 말하지도 못하겠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누군가에게 그 아파트는 시 외곽에 나름 꽤 괜찮은 값을 내고 ‘내 집 장만했다’는 기쁨이 되었을 보금자리니까.


도심에 있다는 점에서는 그런대로 참을만했지만 나지막한 산을 가린다는 점에서 여전히 맘에 들지 않았던 개발 중 하나는 진주성 촉석루를 바라보는 망경한보타운이다. 지금 보면 절묘한 위치이다. 그 앞에 천수교(1998년 준공)도 생겼고, 산등성이를 뒤로 하고 남강과 진주성을 바라볼 수 있다. 게다가 천수교에서 길은 진양호로 바로 이어진다. 사업자가 어떻게 땅을 확보했었는지는 몰라도 당시 시장성으로는 참 좋은 개발안이었을 테다. 물론 실제 조망권은 호마다 달라진다. 내 친구 집은 남강이 아니라 산을 바로 앞에 면하는 위치였다.


그렇다면 다른 동네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다시 지도를 들여다본다. 상대동, 상평동, 하대동은 공단이 있으니 막연히 조금 못 사는 동네라는 생각이 당시 어린 나이지만 있었다. 평거동과 신안동은 정비된 단독주택 단지도 있고, 저층 상업시설과 먹자골목, 병원이 어우러져 있고 무엇보다 막 새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있으니 경제적으로 좀 안정된 사람들이 사는 곳, 교육열 높은 동네란 인식이 있었다. 


초등 5-6학년 때는 여름 방학 숙제로 쓰레기 소각시설, 버스터미널 통합 및 이전, 신청사 건립 등 공간과 관련된 지역 현안과 그에 대한 나름의 선택지, 여러 의견을 정리하여 정책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가기도 했다.


내가 내 인생에 거의 삼분의 일을 살았던 고향 진주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어릴 때 자연스럽게 체화하고, 경험한 경관이라는 게, 그 공간이라는 게 한 사람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체화란 말 그대로 몸에 익히다, 몸의 감각의 일부로 만들다는 뜻이다.


고층 건물과 회색빛 커다란 건물들은 꺼려졌지만, 애착을 느꼈던 풍경도 많았다. 남강과 어우러진다고 생각했던, 처마 밑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참 예뻤던 경남문화예술회관이 참 좋았다. 강을 앞에 두고 건물 곳곳에 빛이 다채롭게 스며드는데, 곳곳에 숨기 좋고 나만 알고 싶은 멋진 공간이 많았다. 


연암도서관도 있다. 대리석 마감은 좀 차갑다고 느꼈지만, 건물 안에 빛이 환하게 들어 좋았고, 무엇보다 주변의 푸른 나무 오솔길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강 전경은 정말이지 멋있었다. 올라가는 건 힘들었어도 연암도서관 터 자체가 좋았다. 내려와 집까지 걸어서 갈 때면, 진양교 위에서 노을과 노을에 물든 강물을 마음에 가득 담을 수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남강과 진주성, 촉석루, 국립진주박물관.

건물과 거리와 가로수. 건물 사이로 어우러진 목련 나무와 플라타너스, 은행나무. 봄에는 하얀 목련이 피고, 분홍빛 벚꽃잎이 날리고, 여름에는 녹음이 울창하며, 가을이면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고 울긋불긋 단풍이 든다. 계절감을 가득 느끼게 하는 그 나무들 또한 내가 사랑하고 설레어하는 풍경이었다.


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침마다 알싸하게 상쾌했던 공기도 거리 풍경과 함께 생생한 감각 기억으로 남아있다. 서울 친척집에 가서 자고 일어나면, 아침 공기에서 그 같은 알싸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같은 공기인데 그 미묘한 차이가 신기했다.


지금 돌아보면 남강과 진주성이 있고, 차도가 오밀조밀하며, 거리가 아담하고, 철마다 색을 갈아입는 가로수까지, 진주는 내게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2007년 여름, 네덜란드에 교환학생 오기 전, 가족이 더 이상 진주에 살지 않던 그때, 환승하느라, 다시 진주에서 몇 시간을 머물게 되었다. 어릴 적 뛰어놀던 경남과기대(진주농전) 캠퍼스와 고속버스터미널 주위를 걸어보았다. 진주남중에서 교보문고를 거쳐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이어지는 길을 다시 걸어보았다. 


2014년 9월 한국에 갔을 때도 다시 그 고속버스터미널 근처를 걸었다. 개양에서 강을 따라 시내로 연결되는 길에는 새 아파트들이 가득 들어서 있었다. 원래 한주럭키타운만 있었는데. 고려병원 근처 건물 평균 고도도 한참 올라가 있었다. 규모도 압도적으로 커졌다.


진주는 변화를 겪고 있었다.



촉석루와 진주교, 2012.8.12. © Im Seongbin (출처: www.flickr.com/photos/golbenge/7893062452)





3. 서울, 델프트, 고향 그리고 미래



서울에 살 때는 학교, 자취방, 학교 앞 식당, 교회, 그리고 나가면 종로 즈음, 그렇게 오가느라 미처 동네를 눈에 담아두지 못했다.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 정 붙이고 산다는 게 그래도 무언가 쉽지 않게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또 떠날 걸 알아서였을까? 떠날지, 미처 염두에 두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대로 마음속에 들어와 버렸던 어릴 적 진주의 풍경들이, 그 속에 반짝이던 소소한 아름다움들이 이따금씩 떠오르곤 한다. 


고향에서 초중고 다 나오고, 대학도 나오고,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리고 사는 동창생이 있다면 부러워하리라 생각했다. 그 익숙함, 정다움,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여러 관계와 비교할 수 없는 두께의 네트워크.


네덜란드 지방정부 정치인을 만난 적이 있다. 델프트에서 이십여 년 넘게 살았고 다른 시에서 공무원으로 직장 생활하면서 델프트에서는 파트타임직 시의원으로 일하다가, 이제는 풀타임인 부시장(정무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이는 어떤 지역 모임에 나가도 아는 사람이 꼭 있을 수밖에 없다. 10만 명 인구라 해도 오래 살면,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 마을 같이 된다. 진주시 인구는 35만 명 정도라 한다. 우연히 진주에서 사는 동창 포스팅을 보게 된 적이 있는데, 한 곳에서 오래 살 수 있다는 데 대한 부러움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동시에 지금 내가 공부하는 도시정책, 도시계획사업 관리, 경관계획, 택지개발, 도시재생이란 게 바로 그렇게 ‘살고 있는’, 실제 그 공간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거기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그러면서 뭔가 삶에 희망을 품고,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하게, 더 서로의 마음을 보듬으며 살아가려는, 그런 이들의 마음에서 시작해야 하는 건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지만 고요하고 아늑하고 따뜻한 영감이란 게 도시 경관에 스며들 수 있다면...


자연경관에서 이미 품어져 나오고 있고, 서서히 시간에 걸쳐 형성된 정주 환경 속에서 배어나오며, 거리와 건물과 빈 틈에 스며들어 반짝이는 오래된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그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계승할 수 있도록 경관에 관한 사회적 약속을 준비하고 적용하는 것. 그 서서히 배어든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꿰뚫어 보도록 익숙해진 안목을 다시금 새롭게 각성시켜 주는 것. 그 경관의 아름다움이 바로 우리 모두가 누리고 가꿔갈 자산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것.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이지만 그 변화가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여행임을 보여주며, 사람에게 '속함'의 기쁨과 관계 속에서 행복한 미래를 그려보게 영감을 주는 공간이 될 수 있다면. 그런 도시계획과 도시행정, 중소규모 도시에 맞는 공간 정책을 감히 꿈꿔본다. 


고향.
미래 세대에 물려줄 풍경.
지키고,

가꿔갈 경관이 있다는 것.




[인터뷰 다녀와 생각을 잡아두기 위해 쓴 어느 날의 기록. 남북경협이 앞으로 활성화되면 북한의 경관은 어떻게 변할까? 평양은 그전부터 고층아파트 개발이 한창이라는데. 북한 지도를 볼 수 있게 된 이제, 앞으로 진행될 북한의 도시화 과정을 그려본다. 그 변화는 남쪽 국토에 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도시계획체제, 공간전략, 개발관리, 개발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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