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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준 May 17. 2019

스타트업에서 조직문화 변곡점은 언제 오는가?

변곡점(inflection point)
굴곡의 방향이 바뀌는 자리를 나타내는 곡선 위의 점


대기업 조직에 속한 연구자로서 스타트업을 계속 탐험 중이다.

나는 커피를 매우 사랑한다. 대기업들은 어디를 가나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 같다. 종로 스타벅스를 가든, 춘천 스타벅스를 가든, 카페라떼 맛이 비슷비슷하다. 물론 바리스타 손맛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느끼는 전반적인 분위기나 맛은 비슷하다. 대기업들이 그와 같다. 어느 대기업이든  고유한 특성들이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유사한 논리와 작동 방식이 존재한다. 반면 스타트업은 개인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하는 로컬(local) 카페 같다. 장사 방식도 분위기도 맛도 천차만별이다. 변동 폭(variation)이 워낙 커서 다채롭다. 그래서 흥미롭다.


지난 몇개월 동안 스타트업을 탐방하고, 구성원을 인터뷰하고, 상주하면서 관찰해보니 한 가지 화두에 대한 패턴이 보인다. 그 화두는 바로, 스타트업에서 조직문화 변곡점은 언제 오는가?


이를 논의하자면 먼저 두 가지를 선행해야 한다. 첫째, 조직문화 변곡점이란 무엇인지를 논하는 일이고, 둘째, 변곡점을 왜 주목해야 하는가이다.


(1) 조직문화 변곡점이란 무엇인가?

이를 얘기하려면 또 조직문화를 정의해야 한다. 학문적으로는 조직문화와 조직풍토로 나뉘고, 또 조직문화 내에서도 최소 8개의 학파가 존재한다. 그마다 정의가 모두 다르다. 이를 얘기하려면 밤을 새워야 하니, 골치 아픈 이론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자.


그냥 '조직문화'라고 불리는 보이지 않는 신(the god)이 있다고 치자. 이 신이 우리 조직에서 구성원들 머릿속에서 속삭이면서 조언을 하려 한다. '그건 반드시 해야 해', '오, 그건 절대로 하지 마 그랬다간 큰일 나!', '그 정도는 해도 될 걸?', '아, 그건 아직 선례가 없어서 알 수 없지만, 눈치껏 슬쩍 간을 봐봐', '그건 진짜 중요한 거니까 반드시 챙겨야 해', '그건 정말 사소한 거니까 살포시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너 이렇게 해야만 인정받고 승진한다니깐', '너 그 딴식으로 행동하면 졸라 혼나거나 외면 받을껄?' 등.


그런데 이 신은 원래 되게 끈끈하다. 한번 형성되면 한동안 변치 않고, 길 가다 발을 잘못 디뎌서 끈끈이를 밟고 걸어 다니는 듯이 끈덕지게 따라붙는다.

그런데 이 신이 본질적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그 왜 판타지 소설에서 정령이 작은 요정에서 어린 아이만한 크기로, 그리고 소년소녀만한 아이로, 종국엔 성체로 바뀌는 것 처럼. 조직문화가 크게 요동을 치거나, 그 특성이 본질적으로 바뀌는 기점이 있다. 이를 나는 조직문화 변곡점이라 부른다.



변곡점에서 표면적으로 두드러지게 관찰되는 현상은 다음과 같다.

 

[1] 경영진의 경우

- 외부환경, 사업, 시장, 고객을 보는 눈이 확연히 달라진다.

- 구성원을 보는 눈,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가정하는 바가 달라진다.

- 기존의 조직관리 방식을 버리고, 확연히 다르게 바꾸려 한다.


[2] 구성원의 경우

- '우리 조직이 어떤 조직인가'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

- 구성원들의 정체성이 변화한다.

-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려는 마음이 치솟거나, 또는 반대로 자부심이 급격히 상승한다.



(2) 변곡점에 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가?


조직문화는 구성원들의 생각, 태도, 행동을 좌우한다. 마치 신(god)처럼 말이다. 그 신이 본질적으로 바뀐다고 생각해보자. 구성원들의 생각/태도/행동 또한 크게 요동치고 바뀔 터.

무협지로 치자면, 무공 수준이 본질적으로 바뀌는 타이밍이다. 불현듯 깨달음이 와서 이전보다 한단계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도 있다. 구성원들의 자부심이 높아져서 일과 회사에 보다 몰입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회사 성과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도 한다.


반면, 그 시기에 마음과 몸가짐을 바르게 하지 못하여, 또는 외부의 방해로 인하여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질 수도 있다. 조직문화가 불안정해지면서 구성원들의 마음이 붕 뜰 수도 있다. 그동안 다져온 일하는 방식이 어그러져,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서비스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앱 개발 일정이 지연될 수도 있다. 어느 순간 '무사안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주화입마로 사악해지려는 경영진


주화입마에 빠져 폭주하려는 구성원


조직문화적 변곡점의 일반적인 패턴을 알 수 있다면, 그 일이 닥치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미리 대비하여 내부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 한 단계 더 발전하는 선진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스타트업에서 조직문화적 변곡점은 언제 오는가?


그간 다양한 스타트업들을 살펴보고, 대표들을 인터뷰하고, 구성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몇 가지 두드러진 변곡 기준이 관찰되었다.


[1] 구성원 인원 수


구성원 수가 질적으로 바뀔 때를 의미한다. 많은 대표가 이렇게 말하더라.


구성원이 10명일 때와 30명일 때는 완전 다르더라고요.
그리고 30명일 때와 80명일 때는 또 완전히 다르고요.


이는 업계에 널리 알려진 기준이다. 그래서 어느 스타트업은 자사의 일하는 문화를 정의한 컬처 데크(culture deck)의 첫 페이지에 "이 데크는 구성원이 30명일 때까지만 유효함"이라고 명기를 하였다.


[2] 투자 유치


스타트업을 차리고 '우리 사업모델이 과연 될까, 시장에 먹힐 수 있을까, 투자자는 주목할까' 전전긍긍을 한다. 어디선가 귀인을 만날지 몰라, 이런저런 모임에도 뻔질나게 드나든다. 투자자들과 안면을 트려고 어떻게든 인맥을 동원한다. 그래도 투자를 하겠다는 귀인이 나타나질 않는다. 초기 창업 자금도 다 떨어지고,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도 바닥나고, 진짜로 심각하게 사업을 접어야 할까 하고 밤새 괴로워하며 고민하던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 하게 엄청난 투자를 받는다. 돈이 물밀 듯이 들어온다. 자, 조직문화가 어떻게 바뀔까.

조직문화를 이루는 근간 중의 하나는 '우리 회삿돈에 대한 가정'이다. 어떤 조직은 우리 회삿돈이 창업주의 돈이라 가정한다. 이들 조직에서는 법인 카드를 허투루 쓰기 진짜 어렵다. 감사 기능이 무척 쎄진다. 어떤 조직은 '눈먼 주주의 돈'이라 가정한다. 이들 조직에서는 비교 견적이란 있을 수 없다. 그냥 가장 비싼 제품, 가장 스펙 좋은 기종을 사재낀다. 그런데 어떤 조직은 '우리 모두가 아껴써야 할 우리 모두의 돈'이라 가정한다. 대표적으로 넷플릭스가 있다. 이들의 비용 기준은 딱 한 문장이다. "넷플릭스에 이로운 방향으로 행동하라." 투자를 받는 시점이 '돈에 대한 가정'이 크게 요동치는 시점이다.

또한 조직 내에 붐이 일어나고 자신감이 치솟는 시기이기도 하다. Series A --> B --> C를 거치면서 성공 경험을 축적한다. 그리고 그 성공 방식을 확신한다. 임직원이 서로 '으쌰으쌰' 하면서 전진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 측면도 있다. 바로 '경험의 덫'(experience trap)에 빠진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Series A 투자를 받았어, 그리고 그와 비슷하게 해서 B 투자를 받았어! 우리는 앞으로 이렇게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야!"라는 신념이 강하게 자리 잡는다. 그 신념이 지나치게 강화되면, 다른 시도를 하려 하지 않는다. 시야는 좁아지고 결국 눈이 닫힌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조직문화를 '정신적 감옥'이라고도 표현한다. (이는 매우 중요해서 자세히 기술해야 하지만, 귀차니즘이 발동하여 생략한다)

조직문화는 정신적 감옥이 되기도 한다



[3] 매출 변화


투자는 잠재적으로 성장 가능성을 보는 일이지만, 매출은 실제 성과를 보여주는 지표다. 우리나라 어느 스타트업은 매출액 규모가 000을 찍는 순간, 조직문화가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경영진의 기대치가 확연히 바뀌면서 급속도로 대기업화가 시작되었다. 구성원들은 "우리가 스타트업인가요, 대기업인가요?"를 질문하다가 스타트업 정신을 가진 이들은 대거 이탈해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대기업 출신 경력자, 컨설턴트가 채워졌다. (이 현상이 바람직하냐 바람직하지 않으냐는 논외로 한다.)



[4] 협력사, 경쟁사의 변화 


스타트업 초기에는 고만고만한 조직과 일하곤 한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우리 회사가 협력하는 곳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IBM 등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들과 합을 맞추려면 조직 내부의 일하는 방식이 세련되게 형성되어야 한다. 또 우리가 경쟁하는 회사가 일반 사람들이 익히 들어서 아는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이라 가정해보자. 경영진은 기존의 주먹구구 식으로는 도저히 경쟁해볼 수 없다고 느끼게 된다.


국내 한 스타트업은 어느 순간 그 유명한 퀄컴(Qualcomm)이 경쟁사가 되었고, 글로벌 자동차 회사와 협업을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경영자는 기존의 일하는 방식으로는 글로벌기업과 발맞추기 어렵다는 점을 깨닫고, 선진 문화를 다지려는 작업에 돌입하고 있다.




이외에도 몇가지 변곡 시점이 존재 한다.(이 내용들은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들이 생각을 덧대셨다)

첫째, 스타트업이 피벗(pivot)을 하려 할 때, 사업 아이템을 바꾸거나 아니면 초기 전략을 버리고 다른 전략을 추구하려 할 때 변곡점이 온다.


둘째, 스타트업이지만, 또 자회사를 설립하는 경우다. 문화 연구자들은 하위문화(sub culture)를 논하는데, 주류 문화와는 결이 조금 다른 자회사 문화가 탄생하고, 이게 또 본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셋째, 사무실 이동이다. 일반 건물에 입주해 있다가, 공유오피스(위워크, 패스트파이브 등)로 이전하면서 분위기나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스타트업은 조직의 지름이 작아서 장소 변경에도 조직분위기가 바뀌는 경우가 왕왕 있다.


글로 명쾌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진정한 내 지식이 아니라 믿기에, 조만간 정리를 해야겠다 하면서도 망설여 왔다. 기질적으로 완벽주의를 추구하다 보니 이런 글을 쓰려면 이론적인 백업을 촘촘히 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그러다 보면 글 쓰는데 며칠이 휙 지나가 버린다.


엄두가 나질 않아 머릿속에만 담고 있다가, 오늘 문득 '그냥 이론적 백업이 없으면 뭐 어때? 이처럼 성긴 글을 보고 어떤 분들은 감흥을 받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거 잖아. 현업에 기여할 수도 있는거 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를 내려놓고 머릿속에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주저리 적어보았다. 양해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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