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그룹/대기업들에서 종사하면서 조직문화를 오래 관찰하고 공부해 왔습니다. 세가지 방향으로 고민해왔는데, 첫째는 존재론 관점입니다. 조직문화가 무엇인지, 과연 존재하는지, 어떻게 형성되는 건지, 어떤 계기로 변곡점을 맞는지를 공부합니다. 두번째는 기능론 관점입니다. 조직문화가 한 집단의 전략적 선택을 어떻게 좌우하는지, 또는 어떻게 걸림돌이 되는지, 구성원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관찰해왔지요. 세번째는 가치론 관점입니다. 어느 조직문화가 다른 문화에 비해 우월/열등할 수 있는지, 어떤 사업에 더 적합한 문화가 존재할 수 있는 건지 등을 오래 고심해 왔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일부 스타트업들이 “컬처 데크"(Culture Deck, 또는 Culture Code, XXX Handbook으로 통칭되는 체계)를 만드는 행위는 참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컬처 데크가 무엇이냐고요?
본격적으로 글을 전개하기 전에, 다음 두가지 사항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저는 교조적(敎條的)인 어조로 기술된 글, 글쓴이가 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해라~ 하지 마라~'라고 하는 어조의 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회 현상에 절대적인 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설령 있다 하더라도 제 깜냥에 누구 보고 '해라, 마라'를 지시할 수 있을까요.
본 고의 제목인 [스타트업, Culture Deck가 필요할까요?]라는 화두에 '이건 하시고, 이건 하시지 마라'는 식의 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뭔가 똑부러지는 답을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나중에 가서 '뭐야, 결론이 없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이를 감안하고 읽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둘째, 본 글은 컬처 데크를 둘러싼 현상 70%에 학문적 이론 30%가 섞여 있습니다.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있다면, 중간 중간 설명하면서 진행하고자 합니다. 다소 생경한 학문 이론이나 용어가 튀어 나올 수 있으니, 머리가 복잡하시다면 그 부분은 스쳐 지나가시면 좋을 듯 합니다.
컬처 데크를 심도 있게 고민해 보려면, 기초를 다지는 작업이 필요하겠습니다. 컬처 데크는 주로 조직문화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조직문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가야하겠지요?
(1) 조직문화란 무엇일까요.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에 일군의 학자들은(Verbeke, Volgeling, & Hessels, 1998) 조직문화를 개념적으로 정의한 문장들을 조사해 봤습니다. 1960년에서 1993년 사이에 출간된 논문과 서적을 싸그리 훑고, 그로부터 총 86개 정의를 찾아냈습니다. 이를 분석한 결과, 학자들마다 조직문화를 정의하는 관점이 서로 달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주된 원인 중에 하나는 학자들의 전공이었습니다. 전공이 인류학이냐, 심리학이냐, 사회학이냐에 따라 조직문화를 보는 렌즈가 달랐던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은 있겠지요? 네, 있습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한 표현들 몇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표현은 '공유된 가치'(shared values)라는 문구입니다. 먼저 ‘공유된’이라는(shared) 말은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렇게 알고 있다’라는 뜻입니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리더도 알고 부하도 그렇게 알고 있다는 말이지요.
반면, ‘가치’(values)는 중의적이라 다소 이해가 어렵습니다만, 친숙한 예시 하나로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영화 [곡성]에서는 주인공 딸이 주요 인물로 등장합니다. 극 중에서 유명한 한마디를 남기지요.
“뭣이 중한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이 명대사가 ‘가치’를 상징하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에 '가치(value)가 있다'고 표현하지요. 때로는 돈/금과 같은 물질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정신적 관념이나 신념을 두고 그리 말하기도 합니다.
갑자기 쌩뚱 맞아 보일 수 있지만, 잠시 이런 질문을 하나 던져보지요. 사랑이 더 중요합니까? 우정이 더 중요하십니까? 성공이 더 중하십니까? 아니면 건강이 더 중하십니까? 타인의 인정이 더 중요합니까? 아니면 스스로 만족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까? 사람마다 답변이 다릅니다. 어떤 분은 우정이 사랑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다른 분은 우정보다는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사람마다 중요하다고 믿는 요소가 다르기 때문에, 다시 말해 ‘가치 체계(value system)’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개개인마다 가치 체계가 존재하듯이, 조직/집단에도 존재합니다. 몇가지 화두만 던져볼까요? 시장/고객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 내부 위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 변화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 안정을 더욱 추구하는가. 수직적 관계를 중시하는가, 수평적 관계를 더 중시하는가. 이처럼 조직 내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values)가 존재합니다. 조직문화는 “중요한 것, 중요하지 않은 것”, “반드시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해도 될 것, 안해도 될 것”을 암묵적으로 알게 만드는 그 모든 것을 말합니다.
제 친구는 예전에 겪었던 흥미로운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요즘이야 전자 결재를 하지만, 예전에는 종이로 품의서를 출력하고, 검정 결재판에 곱게 끼워 보고 드렸지요. 품의서를 보면 결재 도장을 찍는 사각 테이블이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그리느냐로 자기 팀장과 1주일이나 고민해야 했다고 합니다. [담당 - 팀장 - 이사 - 전무 - 대표]로 이어지는 결재 라인이었는데, 각각의 공간을 어느 정도 크기로 그리느냐가 관건이었이지요. 간단하게 균등 분할 하면 될 일을, 왜 1주일 간이나 고심해야 했던 것일까요. 누가 명령을 내린 일도 아닌데 말이지요.
그 친구가 근무하던 회사는 매우 권위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어느 개인이 그 회사에서 승승장구 하려면(또는 하는 일마다 질책을 받지 않으려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상사가 시킨 일에 토달지 않기, 상사 의전에 최선을 다하기 등이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결재 박스 하나 그리는데 1주일이나 시간을 보낸 것이고요. 제 친구는 어떻게 했을까요? 이사 —> 전무 —> 대표로 갈수록 도장 찍는 공간을 더 크게 그렸다고 합니다. 어르신들 도장 찍으시기 편하시라고요.
그 누구도 명시적으로 시키지는 않았지만, 그 회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상사 권위', '의전'이었기에, 제 친구는 자기 팀장과 1주일씩이나 고민해야 했던 겁니다.
조직문화가 무엇인지는 이 정도 수준으로 갈음하겠습니다. 정리하자면 조직문화는 “공유된 가치”(shared values)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조직 내에서 “중요한 것(중요하지 않은 것)”, “반드시 해야 할 것(하지 말아야 할 것)” 등에 대해 구성원들 간에 서로 공유된 가치를 말합니다.
(2) 컬처 데크란 무엇일까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컬처 데크란 무엇일까요? 제가 글로 설명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먼저 보시는게 좋겠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넷플릭스입니다. 다음은 넷플릭스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가 만들어 배포한 자료입니다. 잠시 그 내용을 살펴 보시지요.
https://www.slideshare.net/watchncompass/update-180721
(위는 황석인 외 5인이 한국어로 번역한 자료이며, 넷플릭스가 업데이트한 최신 자료는 https://jobs.netflix.com/culture/ 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위의 컬처 데크는 넷플릭스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즉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조직문화를 명시적으로 제시한 내용입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여성 경영자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페이스북 COO(Chief Operating Officer)역을 맡고 있는 쉐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는 이 자료를 두고 이렇게 단언합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문서입니다”(Hass, 2013).
페이스북의 이사회도 이 자료에 담겨진 통찰력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리드 헤이스팅스를 자기네 이사회 구성원으로 추대하였습니다(Hass, 2013). 페이스북의 문화를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가꾸어 나가고, 조직을 운영하는 원칙을 굳건히 하는데 그의 지혜를 구하고자 했던 겁니다.
넷플릭스는 몇번의 위기를 겪었음에도 실리콘 밸리에서 오랜 기간 동안 승승장구 해왔습니다. 작은 DVD 대여점에서 출발한 넷플릭스가 오늘날 어떻게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점령해 들어오고 있는지 궁금해 지지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성공 요인을 찾아보고자 했습니다. 혹자는 그 원동력 가운데 하나로, 리드 헤이스팅스가 만든 컬처 데크를 꼽기도 합니다(Stenovec, 2017). 많은 기업과 경영대학에서 이 자료를 연구하고 참조하여 왔습니다. 이제는 전설적인 자료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실리콘 밸리가 만들어 낸 대표적인 문화적 유산으로 자리매김 하였습니다(Huspeni, 2017).
그래서일까요? 일부 스타트업 기업들은 넷플릭스를 따라, 그 사업 초기부터 컬처 데크(또는 컬처 코드)를 문서로 정의하는 사례들이 관찰 되곤 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1) Tettra社 사례
Tettra社는 팀이 체계적으로 소통하고 지식을 축적하도록 돕는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회사입니다(https://tettra.co). Tettra는 2016년에 창립 하고 나서 불과 몇개월 만에 컬처 코드(culture code)를 만들지요. 구성원이 체 몇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입니다(2018년 현재 6명). 그들은 이 문서에서 그들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를 7가지로 천명합니다. 구성원 간에 협업하는 방식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기준을 사전에 정의해 놓은 겁니다.
https://www.slideshare.net/NelsonJoyce/tettra-culture-code
(2) Robin社 사례
Robin社는 사무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회의실 스케쥴러 같은 어플리케이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입니다. 2014년에 설립하여 현재 구성원은 대략 20여명입니다. Robin도 창립한 해인 2014년에 그들만의 재미있는 컬처 코드를 공표합니다. 다음과 같이 말이죠.
https://www.slideshare.net/RobinPowered/the-five-minute-culture
Robin의 자료를 보면 그 내용이 조금 독특합니다. 첫 페이지에서 “선언 문구는 없습니다”(No manifestos)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컬처 데크에 담겨진 내용을 때로는 ‘선언문'(manifestos)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넷플릭스는 그들의 컬처 데크에 이렇게 단언했지요. "우리는 가족이 아니고 팀이다. 우리는 프로 스포츠팀이지, 아이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팀이 아니다”(p. 28). ‘우리는 이런 회사야, 우리는 이런 가치를 중시해’라고 선언하는 내용이라서, ‘manifestos’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Robin社는 다른 기업들이 만든 컬처 데크가 조금 식상하게 여겨 졌나 봅니다. 첫페이지에 “선언 문구는 없습니다”라고 적시 해놓다니요. 컬처 데크를 만들기는 하지만, 선배 기업들이 남겨온 유산에 일종의 반기를 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8페이지에는 기존의 컬처 데크를 살짝 비꼬는 듯한 내용도 담겨져 있네요. “좋은 문화는 결과물에서 드러납니다. 선언문에 나타나지 않습니다.”(Good culture shows up in results. Not manifestos)
왜 이처럼 일부 신생 기업들마저도 넷플릭스를 따라 하고 있을까요? 이는 '신제도주의 이론'(neo-institutional theory)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이론은 제도가 조직 및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합니다. 그 핵심 중에 하나가 '동형화'(isomorphism; Meyer & Rowan, 1977)라는 개념입니다. 조직은 생존해 나가는 과정에서 제도나 규범을 만듭니다. 어느 제도가 좋다고 알려지면, 그와 비슷한 환경에 있는 다른 조직들도 그 제도를 너도 나도 도입하게 되지요. 이게 동형화입니다.
학자들은 동형화를 일으키는 동인으로 세가지를 제시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모방 기제입니다(mimetic; DiMaggio & Powell, 1983). 한 기업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느 제도 또는 어떤 양식으로 효과를 봤다고 해보시지요. 그 업계에 소문이 나기 시작하겠지요? 유사한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유사한 문제를 겪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두 기업이 그 소문난 제도/양식을 도입합니다. 곧이어 업계 전반으로 퍼지지요.
우리나라에서 동형화가 일어난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살펴보시지요. 1995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공채 제도는 대부분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서류 전형 → 전공 필기 시험 → 집단 면접 → 채용 결정]. 오늘날 채용 제도와는 사뭇 다른게 하나 보이시나요? 네, [전공 필기 시험]이 눈에 톡 들어 오지요. 80년대에는 대졸 지원자들이 점차 늘어나게 되면서, 공급 과잉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자질이 부족한 지원자를 합리적으로 가려내기 위한 도구가 필요하게 되지요. 이를 해결하고자, 전공 시험을 치게 하였습니다(류동희, 이종구, & 김홍유, 2012).
그러다 95년 경에는 일부 기업들이 전공 필기시험을 폐지합니다. 대신에 '인적성 검사'로 바꾸지요. 우리나라에서 인적성 검사를 최초로 도입한 회사는 삼성그룹입니다. 1993년부터 2년간의 개발 과정을 거치고, 1995년에 처음으로 적용하지요. 그와 유사한 시기에 LG, SK, 현대그룹이 인적성검사를 도입합니다. 그리고는 10대 그룹, 20대 그룹, 50대 그룹으로 점차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중견 기업들도 활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몇몇 설문 결과를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 약 20% 정도가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홍은성, 2013; 취업뉴스, 2015).
학문적인 이론을 가지고 다소 복잡하게 설명 드렸지만, 그냥 풀어 말하자면 '남 따라하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컬처 데크를 정의하는 일이 전에 없었던 현상은 아닙니다. 회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후에, 조직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 체계(value system)를 정립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몇가지 사례를 보시지요.
(1) 존슨앤존슨 OUR CREDO
대표적 사례가 존슨앤존슨의 ‘OUR CREDO' (우리의 신조)입니다. A4 용지 한 장, 총 4개 문단으로 집약된 체계로, 존슨앤존슨(이하 J&J) 구성원이라면 가장 중요하게 추구해야 할 가치를 정리하였습니다.
J&J는 지금으로부터 약 130여년 전인 1886년에 미국 뉴저지에서 설립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조'는 언제 만들어 졌을까요? J&J 3대 회장이었던 로보트 우드 존슨 2세가 1943년에 직접 고심하여 만든 결과물입니다. 기업을 설립하고 난 후, 무려 57년 뒤에야 만들어진 셈입니다.
(2) SK 그룹(구 선경그룹)
선경은 창업주 최종건 회장이 1953년에 설립한 직물 회사를 모태로 하는 그룹입니다. 60년대 후반에 최종건 회장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를 하던 동생 최종현을 국내로 불러들입니다. 1973년에 초대 회장이 타계하자, 동생인 최종현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지요.
경제학 박사 출신인 최종현 회장 눈에는 부하 경영자들이 주먹구구 식으로 경영을 하는 것처럼 보인 듯 합니다. 사업 규모는 적지 않은데 말이지요. 그래서 경영철학, 의사결정 원칙, 그리고 선경인이라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가치들을 모두 묶어서 1979년에 선경 매니지먼트 시스템(SKMS; Sunkyung Management System)이라는 내용을 책으로 정립합니다. 사업을 시작하고 26년 후에, 요즘에 실리콘 밸리에서 말하는 컬처 데크를 만든거지요.
앞서 언급한 넷플릭스는 어떨까요? 넷플릭스는 1997년에 창업을 하고 12년이 지난 후에 그 유명한 컬처 데크를 만들고 공유하였지요. J&J, SK그룹과 같은 패턴입니다.
다만, 넷플릭스가 J&J 및 SK그룹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컬처 데크에 담겨진 내용 자체도 상당히 혁신적이지만, 저는 리드 헤이스팅스가 (a) 컬처 데크를 만든 형태, 그리고 (b) 그것을 배포한 방식에 주의를 돌려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제가 J&J의 ‘우리의 신조’를 사진으로 첨부드렸습니다. SK그룹의 SKMS 사진도 바로 위에 있지요. 현판이나 책자 형태로 제작을 했지요. 이러한 형태는 두가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상당히 공식적인, 격식을 차린, 정중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마치 신성한 경전처럼 말입니다. 둘째, 물리적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그 조직에 속한 사람들만 주로 볼 수 있습니다. 접근성이 제한적이지요.
반면 넷플릭스의 창업주이자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는 파워포인트로 자신이 직접 작성 했습니다. 별로 꾸미지도 않고 소탈합니다. 심지어 조악한 그림도 있습니다. 컬처 데크 자료 중에 다음과 같은 장표는 초등학생이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지요. 미디어 & 엔터테인먼트 회사라, 무언가 화려하고 있어 보여야 할 듯 한데도 말입니다.
그리고는 넷플릭스 구성원 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이 모두 볼 수 있도록 슬라이드쉐어(slideshare.net)에 본인이 직접 그 자료를 올립니다. 2009년 8월 1일날에 말이죠. 이와 같은 작성 형태, 배포 방식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까요?
격식을 차린 진중한 느낌보다는, 비공식적이면서 실용주의적인 느낌을 전달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개방성'을 상징하기도 하지요. 또한, 가변적인 느낌도 전달합니다. 절대 불변의 진리라기 보다는, 환경 변화에 따라 그 내용이 언제든지 유연하게 바뀔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은연 중에 주기도 합니다.
실리콘 밸리가 추구하는 공유, 개방, 디지털에 정말 잘 부합하는 형태지요. 이 점이 우리의 신조 및 SKMS, 그리고 넷플릭스 컬처 데크를 가르는 결정적인 포인트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일부 스타트업들은 사업 초기부터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조직문화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구성원도 불과 몇 손가락 꼽을 정도로 적은 상태에서 말이에요. Tettra社, Robin社가 대표적이지요. 우리나라 몇몇 스타트업들도 창업 초기부터 컬처 데크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게 왜 제게 흥미로운 일이냐, 이를 말씀 드리려면, 학문 연구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은 조직문화 연구에 관해 본격적으로 썰을 풀어고자 하는 글이 아니므로, 최대한 개괄적으로 간략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문화'를 영어에서는 두가지로 표현합니다. Climate, 그리고 Culture지요. 이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는 크게 두 가지 입니다. 바로 심리학, 그리고 인류학입니다(Denison, 1996). 경영학은 없냐고요?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는 그 원류인 심리학과 인류학만 살펴보겠습니다.
(1) 심리학 연구
심리학에서는 일찍이 '분위기'(atmosphere)라는 이름으로 1910년경부터 논의가 있었습니다(예; Hollingworth & Poffenberger, 1917). 그러다 ‘조직 풍토'(organizational climate)라는 용어로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합니다(예; Litwin & Stringer, 1968).
조직풍토 연구들은 ‘현재 우리 조직은 어떤 분위기인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고찰합니다(Ostroff, Kinicki, & Tamkins, 2013). 구성원들이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조직 특성이 그들의 태도/행동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피지요. 이들은 주로 서베이 방식을 활용합니다(참고: Kuenzi & Schminke, 2009).
예를 들어, ‘우리 조직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적용해보도록 독려한다’라는 문항으로 '창의적인 조직 풍토'를 측정한 다음, ‘나는 내 업무에 만족한다’ 라는 문항으로 ‘직무 만족’을 측정하여, 둘 간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통계적으로 살펴 보는 것이지요.
(2) 인류학 연구
원래 ‘문화’를 다루는 일이라면, 인류학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1800년대 후반부터 인류학자들은 원시 부족 사회를 연구하면서, 개개의 부족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문화에 주목합니다. 대표적인 학자로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가 있습니다. 음, 그녀는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우니, 그녀 사진 한 장 보시고 가실까요?
그녀는 일본 문화를 해부한 [국화와 칼]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학문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문화의 패턴 Pattern of Culture]이라는 책에서는 북아메리카 주니 족 등을 연구하면서, 관습과 전통이 인간의 태도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루었습니다.
원시 부족을 대상으로 설문을 돌릴 수는 없었겠지요? 인류학은 서베이 방식보다는, 주로 관찰, 기록, 유물 수집, 인터뷰 등에 의존해 왔습니다. 원시 부족 사회에 들어가서 그들과 살부대끼고 살면서, 그들의 친족 체계, 상징 체계, 살아가는 양식 등을 파악합니다. 낯선 이의 눈으로 말이에요.
어떤 부족은 선물을 경쟁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관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준 선물보다 자신이 받은 선물이 많으면 화가 나서 더 주려고 하지요(Graeber, 2001). 왜 그러는 걸까요? 칼라하리 사막의 부쉬멘(Bushmen)족은 그들에게 쌍둥이가 태어나면, 둘 중에 하나를 죽여 버립니다. 반면, 잠비아 북서부의 은뎀부(Ndembu)족은 쌍둥이가 태어나면 부족 전체가 참여하는 의례를 거쳐, 그 쌍둥이들을 부족 전체가 함께 키워야 할 아이들로 받아들입니다(Turner, Abrahams, & Harris, 2017).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요?
앞서 심리학에서 연구해온 ‘조직 풍토’(climate)는 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구성원의 지각을 연구한다고 했지요? (perceptions of what happens). 반면 인류학에 영향을 받은 ‘조직 문화’(culture) 연구는 '그 조직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춥니다(why these things happen; Ostroff et al., 2012).
(3) 그래서, 제가 흥미로워 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심리학과 인류학은 (1)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2) 이미 굳건하게 형성된 조직문화를 중심으로 연구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표현들을 써가면서 조직문화를 정의해 왔지요. 조직문화의 대가라고 불리우는 에드가 샤인(Edgar Schein)의 정의를 보시지요.
“어느 한 집단이 외부 환경에 적응하고 조직 내부를 통합해 나가는 과정에서 학습한(learned) 결과물로, 공유된 가치(shared values)이자 기본 가정(assumptions)이다.” (Schein, 2010).
학자들은 조직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자연스레 학습하고, 경험적으로 체화한 양식을 조직문화로 정의해왔습니다. 그 순서도를 그리면 다음과 같이 되겠지요.
조직 형성 —> 외부 환경에 적응, 내부 통합 —> 그 학습된 결과로 조직문화 형성
그런데, 몇몇의 스타트업들은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선험적으로 조직문화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구성원이 집단적으로 학습한 결과물이 아니라, 그 전부터 미리 선언하는거지요. “우리는 이걸 중요하게 여길거야. 앞으로 이렇게 할 거야. 이런 문화를 가져 갈거야!”라고 말이지요. 그런 후에 조직을 점차 형성하고 확장해 나갑니다. 순서도를 그리면 다음과 같이 되겠지요.
사업 초기에 이상적 조직문화를 의도적으로 정의 —> 조직 확장, 내부 통합 —> 외부 환경에 적응 시도
제가 흥미롭게 여기는 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레 발생한 것이냐, 의도를 반영한 명시적 선언이냐. 사후적이냐 선험적이냐, 기존 조직문화 연구에서 가정해 왔던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한 템포 쉬어가고자 합니다. 이 정도로 [스타트업, Culture Deck가 필요할까요?] 1부를 마칠까 합니다. 2부에서는 다음 질문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사업 초기부터 조직문화를 왜 명시적으로 정의하고자 하는 걸 까요?
무엇이 그와 같은 가시적인 표상물을 만들게 하는 걸까요?
사업 초기 컬처 데크 정의를 통해 의도하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그래서 우리 회사는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요?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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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성(2013). 사람인"채용기업 5곳 중 1곳 인적성검사". Retrieved from http://newstomato.com/ReadNews.aspx?no=327077
Denison, D. R. (1996).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organizational culture and organizational climate? A native's point of view on a decade of paradigm wars.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21(3), 619-654.
DiMaggio, P., & Powell, W. W. (1983). The iron cage revisited: Collective rationality and institutional isomorphism in organizational fields.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48(2), 147-160.
Graeber, D. (2001). Toward an anthropological theory of value: The false coin of our own dreams. Spr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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