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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닝 Aug 27. 2023

<사라진 개발자들>을 읽고

알려지지 않은, 치열했던 여성 에니악 개발자 6인의 이야기

이 책을 읽고 작년 이 무렵 넷플릭스에서 봤던 영화 <히든 피겨스>를 생각했다.


1962년, 나사의 우주 임무 그룹에서 계산원으로 일한 세 명의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이들은 여성에 흑인이라는 이유로 주요 임무에서는 물론, 생활에서도 (심지어 화장실 사용까지) 차별받는 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나사가 진행 중이었던 우주궤도 비행 프로젝트에서 결국 수학 공식을 찾아내는 데 공을 세우고 만다. 그리고 이후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전문가가 된다. 나사 전산 분야의 선구자, 나사의 항공 엔지니어 등..  

이 영화는 <히든 피겨스>라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다. 비록 역사의 메인 스트림에서는 그녀들의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았지만, 이후 책과 영화로나마 업적이 기록되고 기억되어 전달될 수 있었음이 그리고 또 이 ‘역사’로 하여금 훗날의 누군가들에게 또다른 용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하려는 책, <사라진 개발자들> 또한 그 누군가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은 최초의 여성 개발자 6인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수학과 과학의 교육으로부터 차별받았던 1940년대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업무의 리드 혹은 주역으로서의 역할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던 유리 천장 아래에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요함과 끈질김을 보았다. 어쩌면 ‘프로그래머’로는 최초일 그녀들의 이야기.  




수학 전공자로서 여성도 필요해진 시대


책의 배경은 2차 세계 대전이 한창 중인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존에는 수학, 과학같은 전공 혹은 업무는 남성의 영역으로 치부되곤 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으로 인해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남성만 하던 탱크 제작, 비행기 수리 같은 업무가 여성스럽고 매력적인 업무로 재정의되기도 했고, 전시 상황에서의 수학/과학과 연관된 전쟁 프로젝트가 다방면으로 진행되면서 여성 인력도 제한없이 고용하는 상황이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탄도 궤도 계산'을 비롯한 다양한 육군 프로젝트를 위해 근무하게 된 수학 전공자 여성 6명(케이, 프랜, 베티, 말린, 루스, 진)은 무어 스쿨의 필라델피아 컴퓨팅 부서에서 만난다. 


에니악 (출처 : 나무위키)


원래 전쟁 중에 기술은 발전할 수밖에 없는 걸까. (여담이지만.. 얼마 전 개봉한 오펜하이머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흔히들 최초의 컴퓨터라고 알고 있는 에니악(ENIAC)도 이 때의 산출물이다. 에니악이란 ‘전자식 숫자 적분 및 계산기(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이란 의미의 약자로 당시 탄도 궤도의 계산을 좀 더 빠르게 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던 중 발명되었다. 

이론대로라면 당시 사람이 손으로 며칠 내내 하던 계산을 몇분 내 마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개발되고 난 이후였다. 에니악은 30톤짜리 컴퓨터이다(...) 이렇게 거대한 기기를 실사용의 목적으로 운용하고 유지 보수를 하기 위해서는 에니악뿐만 아니라 관련된 모든 기기의 작동법을 익히고 알아야 하는데 이걸 담당할 직원이 필요했다. 그렇게 선발된 멤버가 필라델피아 컴퓨팅 부서에서 일하던 6명의 여성 멤버였다. 그렇게 그들은 에니악의 프로그래머가 된다. 



제가 IBM장비에 대해 아는 건 에니악을 아는 수준과 비슷했어요. 
둘 다 아는 게 없었다는 뜻이죠. 하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었어요. (p.175) 




아는 게 하나도 없지만,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선발되어 각자 왔던 그녀들은 에니악을 위한 IBM 카드 판독기, 카드 천공기, 분류기, 도표 작성기 사용법을 배우며 하나의 팀이 된다. 이들의 궁극적인 임무는 ‘에니악을 위한 탄도 궤도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이 컴퓨터를 동작시킬 프로그램까지 개발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에니악을 프로그래밍할 방법과 작동 방식을 연구를 통해 알아내야 했어요." (p.201)


당시의 상황에 대해 책에서 서술하기를 ‘책은 고사하고 그들을 가르칠 자료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주어진 자료만으로 스스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회로도 도면 - 진공관으로 구성된 에니악. 엔지니어를 위한 회로도 도면을 보며 직접 공부했다  

    블록 다이어그램 - 유닛이나 시스템의 기능이 연결되는 단위에 대해 공부했다  

    논리 다이어그램 - 원하는 작동을 유닛에 지시하고, 다른 유닛과 통신하도록 설정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① 팀으로 일하며 스스로 공부하고, 공유하며 지식을 익혀갔다. 

② 에니악의 작동 원리부터 프로그램을 돌리기 위한 프로그래밍을 해나간다. (현재 사용되는 if-then이란 프로그래밍의 기본 조건문 요소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그렇게 제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였지만, 결국 성공적으로 완수해낸다. 에니악을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간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전전자식 범용 컴퓨터로 보았던 존 모클리의 구상이 실현된 것이다. 비록 당시의 상황적인 이유로 인해 에니악의 성공 이후 수많은 보도자료에는 이 여섯 명의 여성 프로그래머의 이름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했지만...



이 과정에서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탄생했다. 문제를 가진 사람과 컴퓨터를 연결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여섯 여성은 현대 컴퓨터 분야 최초의 직업 프로그래머였다. (p.289) 




처음엔 ‘여성’개발자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했다. 나조차도 어떤 편견을 가지고 책을 펼쳤던 게 분명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니 이 책은 그저 ‘프로그래머의 역사’에 있어서 기여한 ‘최초 개발자들’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발전이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현대에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는 개발자분들 + 나와 함께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 다시금 존경심이 드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으며 느낀 점 세 줄 요약.

    프로그래머는 ‘문제를 가진 사람과 컴퓨터를 연결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해결해야 할 공통의 문제를 가진 하나의 '팀'이 협업하는 방식. 배운 것을 공유하고, 나누고, 서로 돕는 단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포기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풀어가고 논의하며 끝내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  




* 한빛미디어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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