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을 많이 올리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조회수가 늘어가는 글이 있다.
바로, 예전에 세부를 다녀와서 올린 랜딩비어 관련된 글이다.
평소에 독자분들이 '랜딩비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실까 싶을 정도로 유입키워드에 꾸준히 적혀있는 '랜딩비어'는 더 이상 조회수가 늘어가지 않아 호흡이 가빠져가는 내 브런치에 이따금씩 심장 마사지를 해주는 제세동기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아무런 글을 올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입키워드 검색으로 랜딩비어가 열몇 번이 찍혀있기에, 혹시 그날 랜딩비어 관련된 뉴스가 있나, 아니면 다른 글이 있나 검색을 해보기도 했지만 궁금증을 해소해 줄 만큼 특별한 것이 있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에게 랜딩비어는 특별한 이유 없이 독자들이 이따금씩 찾아주는 신비로운 황금거위알 같은 단어가 되었고, 조회수에 목이 말라 관심을 갈망하는 나는 언젠가 다시 한번 랜딩비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조회수 떡상을 노려보겠다는 다짐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적당한 타이밍을 노리며 그렇게 아끼고 아껴온 소중한 인공호흡기 같은 단어를 무려 끊는다는 주제로 다시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랜딩비어를 다시 한번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비행이 끝나고 마시는 술이다. 일반 직장에서 "퇴근하고 한잔 할까?"라는 것에서, 우리 항공인 들은 착륙이 곧 퇴근을 의미하는 것이니 "랜딩 하고 한잔 할까?"로 대사가 바뀌며, 단어를 줄여 쓰기 좋아하는 나와 같은 몇몇 사람들의 특성상 "랜딩 하고 한잔 할까?"조차 길어 보여, "랜딩비어?"로 변모한 것이 아닐까 싶다.
퇴근하고 마시는 맥주 한잔이 주는 그 즐거움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거라 생각한다.
퇴근하고 약간 지쳤지만 어느 정도의 각성 상태에서 집에 돌아와, 목이 마른 것을 참고 참아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한 뒤 머리를 말리지도 않은 채 잠옷으로만 갈아입고 냉장고에서 오늘 내 퇴근을 기다리고 있었을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맥주를 꺼내어 전용잔에 옮겨 담아 마시는 그 첫 입.
캬
세상 다양한 술을 종류별로 마셔봤지만, 어떤 술이든, 얼음장처럼 차가운 맥주가 주는 그 첫 입은 다른 그 어떠한 종류의 술에서도 느낄 수가 없는 특별함이 있다. 물론 첫 입 이후에 넘어가는 맥주도 훌륭하지만 이상하게 첫 입만큼 맛있지가 않다. 한계효용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느낌이랄까.
그 맥주가 주는 행복감에 빠져 아직도 허덕거리고 있는 내가, 이쯤 되니 글을 쓰는 목적이 내가 맥주를 끊겠다는 것인지 맥주를 찬양하겠다는 것인지 나조차도 분간이 잘 가지 않아서 제목을 바꿔야 하나 싶지만, 이렇게 맥주를 사랑하는 내가 맥주를 끊어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짐의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술은 건강에 좋지 않다.
그리고 술이 주는 행복감이 더 이상 예전만큼 크지가 않다.
마지막으로 자꾸 뱃살이 나온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며 느껴지는 몸의 찌뿌둥함과 맥주를 마신 다음날 삶의 퍼포먼스가 확연히 떨어지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살 때 '버팔로 와일드 윙'이나 '윙스탑'에서 몇 가지 종류의 윙을 사다 놓고 6캔의 맥주가 들어있는 6팩을 사서 윙과 함께 단숨에 해치우고도 힘이 남아돌던 젊은 날의 나는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몇 캔 마시지도 않았는데 배가 더부룩하고 눈꺼풀이 점점 내려온다. 그리고 거울을 봤을 때 혹시 내가 인류 최초로 남자로서 아이를 가진 첫 사례가 된 건 아닐까 하는 풍만하고 비옥한 뱃살이 보인다.
아아, 세월의 야속함이여.
물론 내가 맥주를 좋아하는 것을 아시는 기장님들께 술을 끊어볼까 생각 중이다라는 말씀을 드리면, 우선 대부분 한참을 웃으시며 알콜보다 거짓말이 더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다가도, 이내 결의에 찬 나의 표정을 보시곤 이놈이 진짜 끊을 생각인가 하는 마음에 아직 젊어서 적당하게만 조절하는 것도 괜찮다며 위로해 주시지만, 나조차도 느껴지는 나의 나이 듦에 금주에 대한 것이 의지에서 계획으로, 계획에서 다짐으로 바뀌어 가다 드디어 오늘 이렇게 실행으로 나온 것이다.
내가 술을 마시면서 얻는 세상의 즐거움이 너무나도 많았다. 맥주의 역사를 공부하며 언젠가 술을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꿈도 생기고, 맥주의 맛, 향, 추천 여부 등을 적은 맥주 노트도 만들고,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보내는 시간들도 즐거웠다. 얼마 전에는 기장님과 술을 한잔 하며 이런 얘기를 하다가 은퇴하고 맥주 유튜버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유튜버 채널명도 정했다.
"맥파"
물론 30년 후의 이야기다.
그리고 위에서 기술했다시피 퇴근 후에 마시는 맥주 한잔은 그날의 피로를 홈런급으로 날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상이 있다.
술을 마시지 않음으로써 얻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이 있기는 할까? 아마 있지 않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 세상을 한 번 구경하러 가볼 생각이다.
그리고 구경하다가 괜찮으면 어쩌면 눌러 살수도.
이런 다짐은 사실 일기장에 쓰면 그만이지만, 이렇게 공표를 해 놓아야 이따금씩 나를 유혹하는 맥주를 떨쳐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글을 써 놓고 갑자기 어느 나라를 갔는데 맥주가 너무 맛있었네 어쨌네 하면 없어 보이지 않는가.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글이 없어진다면?
그것은 의지가 나약한 어느 불쌍한 중생이 있더라도,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며 이해해 주시는 관대한 우리 독자분들께 그 답을 맡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