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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파일럿 Feb 21. 2024

승무원 부부도 호캉스를 갈까?


이번달 비행 스케줄을 보니, 비행 스케줄로 호텔에서 생활하는 날이 열흘 정도였다. 비행을 가서 레이오버를 하게 되면 회사가 지정해 주는 호텔에서 묵는데, 그 호텔이 딱히 나쁘지는 않다. 또 어떤 곳은 오히려 굉장히 좋은 위치에 있어서 시내를 나가기도 좋고, 바닷가를 바로 앞에 두어 호텔방에서 바깥을 구경만 해도 좋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지 못하듯, 호텔이 아무리 좋아도 자주 가다 보면 호텔 생활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비행을 마치고 하루빨리 집에 가서 포근한 매트리스 위에 눕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서 호텔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주변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호캉스 이야기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호텔을 굳이? 심지어 호텔 가격을 들어보면 웬만한 동남아시아 여행을 가는 항공권 가격과 비슷할 정도였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같은 돈을 어디에 쓰느냐도 본인 마음이지만, 호텔에서 지낼 바에는 외국을 놀러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는데,

처남이 컨시어지 지배인으로 있는 호텔로 아내와 놀러 간 날이었다.


처남이 있으니까 호텔에 한번 놀러 가야지, 가야지 하고 날을 미루다 이번에 아내와 스케줄이 맞아서 방문을 했다. 사실 방문을 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일본을 1박 2일로 가고 싶었지만, 스케줄상 여건이 되지 않았고, 연속되는 비행 근무에 어디를 돌아다닐 생각도 못했기에 아내와 마침내 방문한 것이었다.


처남이 근무하는 호텔은 여행 산업의 오스카 상이라고도 불리는 월드 트래블 어워드에서 2023년 한국 최고의 호텔을 수상한 호텔이었다. 서울 마포에 위치한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 호텔인데, 새로 지어진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외관이 근사했다.


도착하니 1층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처남이 보였다.

이쯤에서 처남 자랑을 한번 하자면,

혹시


레클레도어(Les Clefs d'Or)

라고 들어보았는가?


우리가 가끔 먹는 끌레도르 아이스크림 말고, 레클레도어 말이다.


무려 우리나에 30명도 안 되는 인원만 갖고 있는 자격으로, 어느 특정 수준의 호텔 경력을 쌓은 뒤 세계 컨시어지협회 심사단으로부터 엄격한 심사를 받은 후 수여되는 배지이다. 프랑스어로 황금 열쇠. 쉽게 말하면 컨시어지의 전문 자격증이라고 할까. 그 황금열쇠배지를 나의 처남이 갖고 있다.


이렇게 생긴 배지이다. 눈이 부시지 않는가? 내 처남이 이 배지의 자격을 갖고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열쇠가 교차로 되어있는, 눈이 부셔서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써야 할 것만 같은 이 귀중한 황금 배지를 달고 있는 우리 처남이 1층에서 나와 아내를 반겨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 열쇠의 의미를 당신이 아느냐며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싶었지만, 다음에는 우리 매형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붙을까 염려되는 마음으로 간신히 참았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기도 했고, 우리가 놀러 온다고 이것저것 신경을 썼을 처남을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용돈을 꺼내었다.


하지만 문제는 용돈을 넣은 봉투였는데, 그 봉투는... 토끼 모양이 그려져 있는, 심지어 토끼 귀는 봉투 위로 튀어나와 있는, 사실 얼마 전에 5살 조카 용돈을 주기 위해 샀던, 너무 귀여운... 귀엽다 마지못해 성인 남자에게 이 봉투를 줘도 될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저절로 드는 봉투였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지만 나름 컨시어지 지배인으로 근무하는 처남의 체면을 위해 스윽 꺼냈다가, 안될 것 같아서 아내에게 맡겼고 센스 넘치는 아내는 처남의 주머니에 그냥 냅다 꽂아버렸다.


아내가 최고다.


물론, 여전히 호캉스에 대한 나의 태도는 엄근진으로 중립상태. 하지만 이러한 엄근진의 마음이 ‘엄격, 근엄, 진지’가 아닌


엄머나,

근사하네

진짜 쩐다.


로 바뀐 건 방에 들어가고 5초 뒤였다.

방을 들어가자마자 입이 벌어졌다.


카드 키를 꼽으니, 비행하다가 묵는 호텔과는 다른 뭔가 산뜻함이 있었고(아내와 같이 가서 그런가. 여보, 보고 있지?) 자동으로 열리는 커튼 뒤로는 구름 한 점 없는 한강의 풍경은, 마치 만파식적이 불어서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해소된 것처럼 마음이 뚫리는 풍경이었다.


풍경이 기가막히지 않는가?


"와... 진짜 너무 예쁘다..."


내 첫마디였다.

그리고 화장실 중간에 있는 넓은 욕조는 말 그대로 바캉스를 연상케 할 정도로 편안해 보였다. 우리가 온다고 처남이 준비해 준 케이크는 다이어트를 선언한 내가 그 단단한 마음을 1초 만에 포기하게 해 줄 정도로 맛있어 보였고, 맛있게 생긴 것처럼 케이크는 정말 맛있었다. Integrity가 넘치는 케이크라고 해야 하나.


또 먹고싶다. 맛있게 생긴것과 똑같이 맛도 맛있었던 케이크


멋진 풍경과 편안함, 대부분의 OTT가 가능했던 커다란 TV와 집에 가져가고 싶었던 침대. 그리고 근사했던 조식까지. 왜 사람들이 호캉스 호캉스 하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출발하기 전, 도착해서 수영도 하고, 사우나도 하고, 다음날 조식 먹고 헬스도 하기 위해 갖가지 의류를 챙겨 왔지만 세월의 야속함이란. 나이가 들어서인지, 침대가 너무 편해서였는지 아내와 나는 점심을 먹고 잠을 자고, 저녁에 잠깐 일어나 라운지에 가서 간단한 와인 한잔하고 잠을 자고, 다음날 조식 먹고 방에 들어와서 잠을 잤다.


쉽게 말하면,


먹고 자고

마시고 자고

먹고 자고.


훌륭하지 않은가?


체크아웃 때 까지 챙겨주었던 나의 처남



그래서 또 호캉스를 할 의향이 있느냐 묻는다면,

당연히 있다. 다만 이번엔 자는 시간 조금 줄여서 수영, 사우나, 헬스도 하는 호캉스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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