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속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살고 있는 기분
2021년 대한민국에서 회사원 남편과 자영업자 아내로 산다는 건...
우리 남편 회사는 그 악명높은 "남양"이다.
결혼 전엔 다른 회사에 다니다 나와 결혼하며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남양"과의 12년 악연 속에서 남편은 "회사 그만둬야 하나, 옮겨야 하나"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같은 대학 선배가 과장으로 근무하며 괜찮다는 말에 이직했으나
그 선배가 남편을 괜찮지 못하게 갈궜다.
과장님은 팀장님으로 얼마 안 되어 실장님으로 승승장구 승진했으나
남편은 과장으로 이직해 여전히 과장으로 머물며 대접을 못 받고
데리고 있던 주임들, 대리들이 하나 둘 시험 봐서 식약처로 빠지거나,
아이 키우기 힘들어 경기도 모처에 있는 친정 근처의 회사로 옮긴다며 다른 식품 회사로 이직하며,
그들의 공석으로 많은 일을 남편이 떠 앉고 주기적으로 수많은 야근을 해야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버틸만했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남양"은 좌초된 배와 같다.
선장은 너무 늙고 분별력이 없어졌으니 새로운 선장을 영입하든, 배를 새로운 선주에게 팔아야 할 텐데
배가 물이 새고, 썩어 들어가도 선장은 아무것도 결정을 못하고 있다.
남편이 12년 간 "회사 때려치울까, 옮길까"란 말은 늘 진심이긴 했으나
이번만큼 진지하긴 처음인 듯싶다.
이럴 때 내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자기 좋을 대로 결정해. 좀 쉬고. 내가 벌면 되지."
란 말을 해주면 좋으련만
수입이 거의 없다시피 한 자영업자는 그런 말을 할 수 없고
그저 이 위기를 잘 넘기기를 바라며 남편의 눈치를 보다가, 성질이 났다가, 절망을 하곤 한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법을 어기거나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하며 살지도 않은데.
달리고 구르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도착해보면 또 폐허다.
그리고 이 폐허 속에는 오로지 남들이 쓸모없어 버리고 간 쓰레기 더미만 남아 있다.
쓰레기 더미를 열 손가락의 손톱이 부러지고 깨지도록 파헤쳐 찾는 건
내 것도 아니라 두 아이 먹을 것, 입을 것이다.
난 12년 전부터 입어 온 옷도 있고, 먹어봤자 살만 찌니 애들 먹다 남긴 것을 먹어도 좋다.
우리 아이들, 낳아놨으면 책임지고 잘 키워야 할 텐데
걸어도 걸어도 폐허뿐인 이 기분.
이래서 다들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