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의 역사 - 나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어제 오랜만에 과음했다.
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연차 내고 골프 갔다 온 신랑이 저녁에 또 나가봐야 한다고 하니 술이 당겼다.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신랑이 운동을 다녀오는 걸 불만족스럽게 여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운동을 갔다 온다고 하면, 뭐랄까, 지 혼자만 좋은 데 가고 난 버림받는 기분?
대부분 주말에 가기 때문에
주말에 나 혼자 애들과 실랑이하려니 한숨 나오고
신랑은 잘 나가는데 내 인생만 쪼그라드는 것 같은 질투 때문에 그런가 했는데
평일에 갔다 와도 아니꼬운 건 똑같다.
그래도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는데(싫은 소리를 하진 않지만, 싫은 티는 내고 있었겠지?)
저녁에 또 시민단체 모임에 가봐야 한다니 심사가 뒤틀려버렸다.
마침 족발에 껍데기 맵게 볶은 것까지 있으니 술을 홀짝이다가 한 병을 더 까고, 그것도 반 병 가까이 마셨다. 이렇게 마실 생각이 저~언혀 없었다.
그냥 간단히 한 잔 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덕분에 우리 애들이 노났다. 저녁 공부를 안 하게 된 것이다.
어제 저녁까진 술 마시고도 애들을 씻기고 큰소리 안내며 재웠는데
오늘 아침이 문제다. 오전 내내 기분 나쁜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아침에 애들 아침식사로 먹을 사과. 배 깎아 입에 넣어주고
누룽지도 끓여 과일 먹는동안 식혀서 김이랑 또 몇숟갈 떠먹이며 나도 먹고
딸램의 머리털을 양갈래로 총총 따아준대다
아들램 학교가는 길 횡단보도까지 배웅해준 뒤
바로 10킬로미터, 즉 1만 3 천보 걷고
운동 끝나고 오자마자 집안 청소 싹 하고
내가 연 오픈 채팅방에 글도 올리고
저녁 식사에 먹을 국, 반찬 준비도 다 해놓고
이 괴로운 숙취마저 소재로 글까지 올리고 있으니
잘하고 있다.
잘 살고 있어.
비아냥대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칭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