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서비 사건을 마주하며
-현재진행형인 사건에 대한 글이라, 대표자가 인정한 건에 대해 써봅니다. 이력 부풀리기 의혹은 아직 다루지 않습니다.
-특히 법적 조언은 저도 다른분들의 의견을 요약/ 파악한 바를 쓰는지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황이 파악되는데로 글이 수정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일명 "챌린지"에만 참여한 사람이고 리더로 이끈 적이 없습니다. 대표자 본인을 직접 만난 바는 없습니다.
-글을 쓸 때 회사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만, 이는 업계에 있는 개인으로서의 의견이며 회사와 무관합니다.
-브런치/블로그에 동시에 올렸습니다. 블로그 포스팅은 여기:
https://blog.naver.com/syun0228/222670981894
IT/스타트업 쪽에서 일하고 있는데 여기서 2월 말부터 서서히 올라와 이번주에 급격히 터져버린 사건이 있다. 이제야 기사가 나고 있고, 복잡한 양상이 얽혀있는데 이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내가 IT업계에 있지 않은 분들에게 어떻게 설명드릴 수 있을까. 원래 사건을 요약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나의 감정을 추스리고 완결나면 글을 쓰는 편이다.
이 업계는 원래 교육시장과 자기 성장에 대한 열망이 강한 곳이다. 그리고 IT업계가 최근 각광받으면서 업계로 들어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많은 사업들이 생겨버렸다. 특히, 스타트업에서 많은 주니어들이 일하게 되면서 그들은 불안에 시달리고 있고, 많은 이들이 성장과 업계 “일잘러”를 꿈꾸며 자기계발에 매진한다. 이 때문에 강연도, 교육컨텐츠도 활발하다. 부트캠프라 불리는 몇백만원 짜리 강연도 많으며 현직자와 구직자를 연결시켜주고 “커피챗”이라는 서비스도 있다.
이 중 2020년 중반부터 주니어들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힙서비”라는 커뮤니티가 있었다.
온라인 기반 커뮤니티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러 강연과 공부 프로그램(일명 “챌린지”라고 한다)을 운영하던 이 커뮤니티는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페이스북 커뮤니티 만명 이상, 오픈채팅방 천오백명 이상, VOD 서비스에 몇 천명씩 접속., 많은 투자사와 언론사, 회사-퓨처플레이, 알토스, 중앙일보, 폴인, 원티드 등(업계에서 꽤 유명합니다) - 과 함께 일을 했었다.
이 과정에서 더이상 커뮤니티라 말할 수 없이 많은 돈을 굴리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주니어들이 참여하면서 “우리는 함께 커나가는 커뮤니티다”라는 이름으로 많은 활동을 했다. 최근에는 일명 새로운 커뮤니티를 꿈꾸며 “NFT” 운동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커뮤니티의 대표자는 알리바바, 카카오, 쿠팡 등 내노라하는 IT 기업에서 압축적인 성장을 하면서도 이 열정적인 업무를 하며 커뮤니티까지 열정적으로 이끄는 것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의 호감을 샀다.
하지만 2월 말 내부 고발을 시작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착취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노동을 했지만 제대로 분배받지 못하고 대표자와 친한 일부 사람들만 돈을 받았다. 그 공금이 관리된 통장은 대표자의 가족 계좌였으며, 이는 회사 겸직으로 인한 문제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몇 천의 돈이 코인 투자 업체에 입금된 정황이 있었으며 대표자가 사적으로 쓴 돈도 있었다. 여기까지가 어제 나온 대표자의 해명에서 직접 인정한 사실이다. 거기에 해명이 늦어지면서 겸직 금지 이슈와 대표자의 이력 부풀리기 의혹으로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아직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지만, 법인자금 개인유용, 동업자 수익금 일방 횡령, 조직 가입비 편취, 조세 문제 등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한다. 아직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지만, 이제 이 커뮤니티는 끝난 건 자명하고, 대표자는 해명과 자숙으로 끝난게 아니라 법적 책임도 피할 수 없어보인다.
여기 참여했던 업계 사람들은 더이상 이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각종 챌린지에서 활동하면서 성장을 꿈꾸며 돈을 바쳤던 주니어들은 허탈함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내가 그래도 여기서 많이 배우며 성장했는데, 내가 여기서 도움받았던 분들도 많은데, 내 열정과 참여는 어디로 간 걸까.
주니어라기엔 민망할 정도로 연차만 많아진 일명 “중니어”로 스스로를 부르는 나로서도 깊이 화가 났다. 일단 저 단체에 나도 챌린지 세 번, 강연 두 번에 참가했으니 대략 30만원 가까이 보탠 셈이다. 일단 돈을 낸 것도 낸 거지만, 왜 더 화가 났나 생각해보니 최근 알아서 각자도생하라는 문화가 커졌고, 취업은 어려웠기에, 주니어들의 불안감을 자극해 이들을 착취한 사례라 그렇지 않나 싶다.
나는 늘 미숙했고, 항상 진짜 기획자가 아니란 생각이 많았다. 아직도 그렇다. 그래서 원래 자기계발 콘텐츠에 기웃거리며 돈도 많이 썼던 사람이고, 그만큼 저런 교육 시장을 상당히 안 좋게 보는 사람중 하나이다. 문과 사람들이 취업이 안 되니 IT 업계로 오고싶은데, 경력자가 아니면 뽑아주지 않으니 신입들은 어떻게든 일을 하고 싶어 이런저런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야만 했으니까. 최근 우리팀 온 인턴들을 봐도 그렇게 똑똑하고 열심일 수 없다. 내가 다시 구직한다면 이렇게 쟁쟁하고 멋진 친구들 사이에서 다시 자리를 구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내가 운이 좋아 몇 년 더 먼저 붙었던 생각이 든다.
회사는 배우러 오려는 곳은 아니지만 분명 사수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게 있다. 첫 회사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게 되었던 때를 기억한다. 나와 팀원들이 1년동안 부딪히며 겨우 깨달은 것들이 (내가 해당 데이터의 구조를 잘못알았던 것도 있어서 사이트가 뻗었을때 너무너무 미안했다.) 업계의 시니어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었다는 걸 알았을때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른다. 업계에서 구르던 경력도 경력이라 이젠 사수가 없이 일을 얼레벌레 할 수 있지만, 그 시기에 배우지 못한 것들, 뒤늦게야 알게 된 것 때문에 한동안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그런지라 나는 더더욱 사수없는 신입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광고들이 넘쳐나는게 싫었다. 누군가 나한테 제일 싫어하는게 뭐냐면 이것들이라고 말했다.
“워라밸 지키고 싶고 돈 많이 벌고 싶어? 기획자/PM/PO가 되렴.” “네이버/라인 붙은 포트폴리오를 보고 싶니? 합격의 기밀을 알아보렴” “네카라쿠배* 무조건 갈 수 있는 커리큘럼입니다” 마치 이 강의를 놓치면, 이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지 않으면 당장 망할것 같은 느낌을 물씬 주니까. 최근까지도 “힙서비”라는 타이틀이 놓치면 안 될것처럼 불안을 조장하는 느낌이 있었다. 그들이 만들려 했던 DAO 기반의 NFT도 결국 이런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일련의 시도였을거다.
이 업계에 있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나는 좀더 겸손해지는 것 같다. 서비스를 이끌고 만드는 것이 PM이라고 하지만, 결국 이 서비스를 같이 만드는 것은 우리 구성원들이다. 모르는 게 많았을땐 내가 모른다는 걸 몰랐는데 알면 알수록 나는 참 아는게 없구나 느껴진다. 지금도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충분히 잘하지 못해서 왜 그랬을까 많이 자책이 들고.
그리고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동료들과 시니어들을 생각한다. 나는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나를 도와준 그분들 덕에 어제보다는 나아졌을 것이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한가지 기쁜건 해당 사건이 공론화된 곳의 댓글에 언제든 도움이 필요한 주니어가 있다면 도와주겠단 글들도 보인다. 현직자의 조언조차 이제 돈이 되는 시장에서,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분들이 보여서 기쁘다.
네카라쿠배: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민 등을 의미합니다. 한국사람들 서열 놀이 좋아하죠. 여기에 토당야(토스, 당근, 야놀자) 등 이런저런 회사들이 붙곤 합니다.
-기획자/PM/PO: IT 회사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을 통칭합니다. 회사마다 워낙 다른데 서비스를 만들고 일이 되게 하기 위해 맡은 역할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있을 것 같아요.
-주니어/시니어: 업계 신입~5년차 미만이 주니어, 그 이상이 시니어라 하는데 (기간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 말 안쓰고싶었는데 대체할 말이 없네요.. 이바닥에 기획자로 있는지 5년이 되어가지만 믿을 수 없어 스스로를 중니어라 부르고 있습니다..
본인의 해명 - https://www.facebook.com/groups/932002163931573/permalink/1398186937313091/
기사 참고 - http://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68281
쏟아진 참깨를 주워담아보자에 이어(이루다 다시 영업하죠...?) 또 IT 업계 극대노 글 한 편 나왔습니다. 일 년에 한 번은 왜 이러는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