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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Feb 20. 2022

ROI가 나오지 않더라도

주말에는 글쓰기만 하는 사람의 고백

오랫동안 갖고 있는 고민이 있다. IT 분야 종사자로서 일을 잘하고 싶은 욕심만 있고, 그 외 시간을 업무나 자기계발에 충분히 애쓰고 있지 않은 것. 대신, 주말에 틈만나면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것이다. 누가 나에게 시키지 않아도.


기획자로 더 일하고 싶지만


내가 있는 직군은 IT 기획자다.  본질적으로 일을 잘 하려면 자신의 시간을 쏟아부어야하만 한다. 하지만 전력을 다해 일하다보면, 요즘은 그냥 뻗어버린다. 30분도 더 일 못하겠다.


얼마 전 블라인드 글에 올라온 글 인 “PO무새들 많아졌다"는 글을 보고 스스로 찔려서 자책이 좀더 심해졌다.

위 글을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PO(Product Owner, 기획자랑 비슷한 직군으로 생각되는데 그들에게 할당되는 목표와 KPI의 기준이 절대적인 편이다. 주로 쿠팡과 토스에서 기획자 대신 이 직군으로 부른다)들한테 워낙 대우가 좋다보니 누구나 다 하고싶어하고, 포지션 변경하고싶어하는데 돈 많이주는데 다 이유가 있다. 워라밸 있는 PO는 말도 안 된다. PO는 담당 영역에 대한 전략, 로드맵, 정책, 데이터 분석, 끊임없이 돌아가는 프로젝트 리딩도 해내야하고 성과도 책임져야 한다. 이 중에 몇 개만 해도 일주일 다 지나고, 남들 일하는 시간에는 호출과 티켓이 몰려와 제대로 몰입할 수 없다. 미팅 너무많고, 내가 잡은뒤에 안 가고싶다. 그래서 오버타임은 필수다. C레벨 커뮤니케이션도 힘들다. 예스맨이면 살아남을 줄 아나? 성장하는 회사에서 워라밸 유지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실 PO가 다 챙겨주는거다.”

하필 글 말미에 "워라밸 챙기려면 기획자, 와이어프레임 그리는 PM 커리어 추구해라"라는 구절이 있어서 댓글이 엉망진창이 되었지만(타이틀이 무엇이건 시니어 기획자도 저거 다 하고 있다 vs PO로 일 안 해봤어? 아무리그래도 PO는 다르지의 끝없는 싸움...) 제품을 잘 만들려면 저런 자세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에 그렇게 일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자책이 요즘들어 심해졌다.


하지만 요즘은 체력이 좋지 않다. 기획 부채가 점점 쌓이고 있다. 하루 종일 최선을 다해 메신저를 하고, 애를 쓰고 애를 써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깜냥이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해 하고싶은 것도 배워야 할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들지만 주말의 나는 전혀 신경쓰지 못한다. 열심히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주말들어 이를 갈고 글을 쓰고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때 글의 퀄리티가 높은 건 아니고, 글의 갯수를 늘리고 있다.


-뉴스레터 매주 마감

-브런치 매주 마감

-블로그 포스팅 주 2-3개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글을 좀 많이 써보고싶다고 생각하면서 1월 초에 블로그를 다시 되살렸고 내가 세운 루틴이다. 지금까지는, 주말 루틴은 꼬박꼬박 지키고 있었다.


사실 연초로 넘어오면서 글쓰기로 만원이라도 벌고 싶어졌다. 이왕 글을 쓰는걸 좋아하면 어디서 작은 수입이라도 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일과 글에 대해 생각할때 좀 마음이 찔렸다. 잘 하려면 많은 투자가 필요한 분야가 IT 쪽인데, 왜이렇게 나는 글쓰기에 기웃거리는지. 사실 본업을 잘 못하니까 딴 길로 새는게 아닌지. 그럴거면 전직을 하거나 기획자 수입을 대체할 정도로 열심히 쓰는것도 아니면서 왜이렇게 글쓰기에 집착하는지. 어정쩡하게 “나 글쓰는 사람"이라는 취미활동만 즐기는 실속없는 겉멋든 작가가 아닌지. 할거면 제대로 하던가, 왜 어정쩡한 글만 주구장창 쓰는 느낌이 드는지.


오랫동안 글쓰기는 짝사랑과 같았다. 뉴스레터와 브런치 모두 만족도는 좋지만, 내 인생을 바꾸는 드라마틱한 성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뉴스레터는 2년간 거의 재능기부 수준으로 썼고 브런치는 조회수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이런 지지부진함이 질린 나는 진짜 딱 6개월만 더 열심히 해보자, 는 마음으로 이런 루틴을 만들었다.


사실 1월 초에 네이버 블로그를 썼을땐 좀 배신감 느꼈다. 조금 타겟팅 잘 되는 분야 포스팅을 올렸더니 조회수가 하루만에 1000이 넘게 나오네? 얼른 애드포스트 승인이라도 나서 백원, 천원이라도 벌고싶단 생각이 들었다. 스티비 사용료라도 내게.


뉴스레터와 브런치가 딱히 나에게 성과를 가져다주지 않았음에도 내가 오랫동안 글쓰기를 못 놓았던 것은 어째되었건 글쓰기를 하는 내가 그렇지 않은 나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주말에 앉아 가만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면, 지난주 힘들었던 일들도 마음이 가라앉고 조금은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 같다. 기획자로 일하는 대부분의 순간은 조바심이 나지만, 글을 쓰는 나의 마음은 차분해질 때가 많다.


이렇게 하는거 이왕 빈도수를 늘리자고 했더니 거의 요즘 주말에는 어딜 나갈 수 없이 글을 쓰고 있다. 전시회장을 가보겠다고 결심한지 한 달이 지났는데 출타하지 못했다. 근데, 그게 싫지 않다. 조회수 터지거나 댓글이 달릴때 좀 기쁘다.


21년도 회고글을 공유했을 때,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소얀님의 21년도 모든 과외활동이 전부다 글쓰기였다"고. 지금 뉴스레터 제작자들과 모여 쓰는 글쓰기 합평도, 사내 글쓰기 모임도, 연말에 했던 나를 위한 글쓰기 모임까지 모두가 "글쓰기"로 연결되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나는 끊임없이 쓰는 사람일거다.  어쨌든 변방의 뉴스레터라도, 변방의 브런치 작가라도 내 글을 꾸준히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에도, 이제는 뭔가 외적인 성과가 만원이라도 있지 않으면 유지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이 드는 모순. 내 글은 돈이 될 수 있는 글일까?를 실험해보려면 어디에 더 투자를 해야 할까 숱하게 고민이 되었지만, 일단은 꾸준히 쓰고 싶다. 꾸준히 쓰고 내 글을 한번 더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 보아야지.


그래서일지 글쓰기에 대한 수업을 기웃거리거나, 문장줍기를 사이드프로젝트로 만들 생각은 머리가 팽팽 돌아가고 있지만, 기획자로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채우기 위한 피그마 공부나 IT 기획자로서 궁금한 블록체인이나 NFT 공부는 뒷전이다. 이제 이 쪽 분야 모르면 기획 일 못할것 같은 조바심도 있었는데. 크립토쪽은 용어 난이도가 장난 아니어서 IT  종사자 톡방에서 외계어들을 보고 있고, 지갑 만든다 하고 몇 주 지났다. 자꾸 딴 생각 하는 나 이대로 괜찮은가, 란 생각이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뭐라도 쓰고 싶은 내가 나인가보다. 또 회사에서 운영하는 백일프로젝트 모임에서 아예 손을 들고 글쓰기 모임 매니저가 되었다. 록담님이 전체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시는데, 이전 참가자에 대한 이야기들은 여기(포스팅 1, 포스팅 2). 적어도 함께쓰는 기쁨을 회사 사람들에게 전파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봐야지.


독자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묘비에 꼭 “나 돈 한푼도 생각 않고 현대인의 마음에 문장 한 줄씩 총총 새겨줌"이라고 새기라고.


나는 여기에 덧붙여 사실 내 야심은 글로 만원이라도 벌어보는 거라고, 어떻게 실행할지는 머릿속에 구름같은 계획만 있긴 하지만 “나만의 고유한 글을 세상에 남겼음. 과자도 사 먹었음." 도 쓸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요:)


글을 쓰면서 생각이 났던 문장들

그럼에도 가치 있는 일이라 판단된다면, 가치 창출이 보장된 모자 뜨기를 기획했다면, 자신에게 크게 한번 베팅해 보기를 권한다. 우직하게 밀고 나가보는 거다. 모자 뜨기를 하는 시간 동안 속세의 계산기는 잠시 넣어둬도 좋겠다.

김키미,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8897041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연말마다 모자뜨기를 하는 것을 책 내기에, 모자사서 보내기를 돈버는 기술에 대해 비유하면서 모자를 찍어내는 “기술"을 갖추는게 돈을 버는건데, 왜 글쓰기를 하고 책을 내려고 노력하는가에 대한 자문자답같았다.

뉴스레터, 브런치, 블로그. 지금의 글쓰기가 좋은 브랜딩인진 모르겠는데 왠지 이 글쓰기를 계속해도 된다는 응원같아서 기억해두고 싶었다. 책을 엮는건 정말 차원이 다른 이야기로 알고있지만. 끄응.

여담으로 진짜 "세이브더칠드런 모자뜨기"를 사봤던 적이 있는데, 나는 뜨개질을 하도 못해서 모자뜨기 키트를 샀다가 실만 친구를 줘 버렸다..... 진짜 모자 키트라면 나는 돈을 보태는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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