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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Apr 09. 2022

매일매일이 롤러코스터

일희일비하는 기획자의 삶

부제: 일희일비하는 매일매일의 롤러코스터



S님, 보니까 앱 로그인했을 때 A 체크박스는 동작 안 해요. 저희 어제까지 B 기능 오류 있었잖아요, E님이 그것 때문에 잠시 체크박스 막아두셨데요. E님이 다음 배포 때 올려주시기로 했으니 그때 테스트해주세요!
네, 저희 준비하던 기능, 5월 배포 때 맞추어 개발되도록 조정하고 있었는데 못 나갈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도 다시 일정 조정해야 할 것 같아요. 다른 일들도 있는데, 아직 논의 극초기 단계라 정리되는 데로 공유드리겠습니다.
요청 주신 내용이요, 기술검토도 해봐야겠지만 작년에 법무팀에서 저한테 안 된다 안내해주신 내용이 있어요. 의견 한번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법무팀에 한번 문의드리고 필요하면 회의 잡을게요.



글을 썼던 당시 일하면서 하루에 저런 말들을 했던 것 같다. 사실 실제로 말할 땐 훨씬 횡설수설했다(한 번에 저렇게 멋지게 말하면 좋을 텐데!) 메신저로 이 사람 저 사람과 이야기하려고 키보드를 가열하게 두들긴다.

서로 답답하면 화상 회의에서 만나 한참을 말을 주고받는다. 이 사태를 누구한테 먼저 이야기하고 확인해서 전달할까? 에 대한 각을 세운다. 이러다 여러 일들이 머릿속에서 뒤엉킬 때, 하나 둘 버블처럼 터져버리고 나면 얼굴을 손에 파묻곤 한다.



어제까지 멀쩡히 눌리던 버튼이 오늘은 왜 안 먹히는 거야, 하고 패닉 하고.

회의를 하던 도중 말문이 막히면 오늘도 절었네,라고 이어폰 빼고 투덜거리기도 하고.

내가 작성한 문서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식은땀이 나기도 하고,

그러다 내가 요청한 내용이 2달 뒤에나 개발 가능하다 하면 바닥으로 마음이 곤두박질쳤다가,

누군가 사내 메신저에 달아준 하트 하나에 마음이 사르르 녹기도 하고,

고마움을 한껏 느껴서 애정을 담아 주책을 떨기도 하는,

매일매일이 롤러코스터다.


나는 기획자. 정확히는 IT 서비스 기획자다. 유관부서(마케팅/법무/CS/영업) 및 실행할 사람들(개발자/디자이너)와 함께 앱/웹에서 서비스를 오픈하기 위해 일을 오늘도 굴리는 사람들. 백 가지 서비스가 있다면 백 가지 기획자가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기획자는 일을 시작하고 끝내는 사람이다. 대신 혼자 할 수 없는 건 없기에 모든 서비스를 앞에서 이끄는 멋있는 나, 라기보다는 “버튼 하나 옮기려면 몇 명한테 물어봐야 하는지 아나요?”에 가까운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https://youtu.be/2D1LsFPkcFs

중간에 나옵니다, 버튼 하나 넣으려면 몇 명한테 물어봐야 하는지 아냐고..


이렇게 다양한 사람과 일을 하다 보니, 기쁨과 슬픔의 순간이 자주 교차한다. 그래서 일을 할 때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 생각한다. 높이 솟는 일은 아주 찰나고, 보통은 구불구불한 고난을 헤쳐나간다. 기쁨은 찰나고, 고난은 참 길다.


상황은 하루하루 변덕스럽게 바뀌고, 나와 함께 일하는 여러 사람의 사정을 꿰뚫고 있어야 하며, 또 일을 되게 하기 위해 내가 신경 써야 하는 범위가 생각보다 많다.


때로 그 일은 아주 사소하고 귀찮은 일일 수도 있다. 20개의 테스트 ID를 준비해두거나, 사람들 컴퓨터/폰에서 접근되게 도와달라고 IP 접근 신청을(ACL이라고 한다) 미리 부탁하거나, 회의실을 잡고 공지하는 일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일이 내가 해결하고 결정하기엔 목이 메일 정도로 부담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이걸 이렇게 두었을 때 대체 후폭풍은 얼마나 되는 거지? 사용자가 얼마나 불편해할까? 아니면 그저 개별 건으로 판단해도 좋은 걸까?


정작 일을 하면서 얻는 기쁨은 너무나 사소하다. 이 일을 하면서 얻는 성취는 뭘까? 서비스 대박? 출시?


사실 출시하자마자 100만이 사용하는 서비스가 된다는 건 가장 행복한 일이고, 실제로는 우여곡절 끝에 출시라도 하게 되면 짜릿하고 눈물이 날 일이지만, 보통 출시하게 되면 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하다못해 회사에서 몇십, 몇백 명이 쓰는 거라도) 그때부터가 시작이란 생각도 든다.


대신 내 마음속에 인상 깊게 남게 되는 건 이 일을 함께 헤쳐나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전우애다. “제가 기획하고 찾아내지 못한 걸 대신 찾아줘서 고마워요.” “늘 촉박하게 요청드려서 죄송한데, 꼼꼼하게 봐주시고 대응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적확하고 따뜻한 칭찬이 아닐까.


또 내가 그렇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따뜻한 피드백을 받았을 때, 그게 너무 기뻐서 일기장에 써두고 반복해서 읽게 된다. “얀이 정리한 노트, 좋아요를 두 번 누를 수 없어서 따로 인사드려요.” “복잡한 문제를 참 쉽게 설명해줘서 고마워요 “. 내가 칭찬에서 얻은 에너지만큼 나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다만 요즘 마음에 있는 롤러코스터의 높이를 낮추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휘몰아치듯 일하는데 감정까지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제 명에 못살겠다 싶어 진다. 이 감정 변화가 진짜 심했을 땐 한 달도 못 견디겠다 싶으니까.


하늘 높이 짜릿하다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순간이 반복되면 냉정한 판단이 어려워질 때가 있다. 다시 일할 맛 나도록 기분을 조절하느라 정작 일할 에너지를 빼앗겨버리는 것이다. 오래오래 좋은 마음으로 일하고 싶으니까, “마음을 다 주고도 그 마음을 돌려받지 못할 것을 각오하는 방법”을, “넘어진 뒤에도 툭툭 털고 다시 달릴 수 있는”*법을 연습해야겠다.




1. 블로그에 일주일 전에 먼저 공개했던 썼던 작품입니다. 한수희 작가님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다정한 답장을 받아요"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작가님도, 함께 글을 쓰는 문우님들도 분야가 달라서 일 소개하는것부터 시작이었고, "출판편집자 이연실 님이 쓴 에세이를 보았을때, 그와 유사하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설명드렸어요.

https://blog.naver.com/syun0228/222689691556


2. 글에서 한수희 작가님이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에 쓰신 미니 에세이, “우아하게 실패하는 법”을 참 좋아했는데요, 마지막 문단이 추락한 마음을 다스리고 다시 툭툭 일어나 일할 수 있도록 하는데 대해 도움을 줄 것 같아 인용해보았다.

미리 보기 누르면 전문이 나와요. 일에 대한 생각을 할 때 매일매일 읽었습니다.

https://www.aladin.co.kr/shop/ebook/wPreviewViewerNew.aspx?itemid=260291976

일을 하면서 나는 속도를 늦추는 법을, 마음을 모조리 다 주지 않는 법을, 아니 마음을 다 주고도 그 마음을 돌려받지 못할 것을 각오하는 법을, 그러니까 실패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실패에 의연해질 수 있는 자세를 배우고 있다. 우아하게 넘어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 넘어진 뒤에도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시 달릴 수 있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3.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IT 기획자 안나가 나오죠. 일이 되게 하려면 뭐든지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한 이야기도 한번 써볼게요,


4. 저렇게 일하는 게 잘 일하는 건가? 란 생각이 드는데 여기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써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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