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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May 01. 2022

괴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이슈가 터질 때, 부정적인 감정에 이불 덮어주는 방법

나는 IT 기획자다. 개발자, 디자이너 같은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에 IT 서비스를 내놓는 사람. 보통 크고 작은 개발건을 프로젝트라 통칭하고, 그 끝은 배포(릴리즈)다. 세상에 내 결과물을 공식적으로 내놓는 일이다. 그 전에는 “검수”라는 과정을 거친다.  IT업계에서는 일명 “QA”로 불리는 절차다.


지금 내 프로젝트는 QA를 끝냈고, 이후 보안상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취약점 테스트”까지 거치고 있다.

나보다 2주 전 먼저 배포를 끝낸 기획자 동료 왈, 이 절차는 소매를 붙이다가 옷깃에서 실밥이 터졌으면 이를 꿰매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이 오고 가는 절차같다고 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여러 프로젝트가 한번에 돌아간다. 그래서 다른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우리 프로젝트에 예기치 못한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혹은, 반대의 상황들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그때마다 판단이 필요하다.


아까 말한 소매와 실밥 예시로 이야기해보자.


A안: “네…실밥이 터졌다고요? 아.. 지금은 꿰맬수가 없어서요
”(일명 “known issue”로 남겨두기)

A-2안: “네. 실밥을 꿰매지 않았을 경우의 리스크를 판단하고 가겠습니다. 법무팀에서 이 경우 실밥이 없다는 고지를 하는게 필요하다 하시네요…“

A-3안: “네.. 일단 소매는 붙여둬야 해서요. 3바늘만 꿰매면 될 줄 알았는데 다시 도안 잡는게 낫다네요. 실밥 꿰매기 과제를 잡아서 3개월 뒤까지는 꿰매겠습니다”
(일명 개선과제 진행)

B안: “네.. 실밥은 꿰매고 나가야죠. 2주 미루겠습니다”
(일명 런칭일 재조정)


위 모든 경우를 이번 한달 넘는 기간동안 다 겪어보았다. 그것도 몇번 반복해서.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터지다보니 더더욱 부정적 감정에 잡아먹히는 일들이 많아졌다. 나는 일을 하면서 감정 기복이 좀 심한 편인데(이에 대해 다룬 글은 매일매일이 롤러코스터),  부정적 감정은 잔상으로 남아서 나를 괴롭힌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이 불안한 감정이 떠오르게 되면 극단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한참을 웃다가도 5분 뒤에 꺼이꺼이 울 수도 있다.


지금 발생한 문제들은 내 안에서 부풀고 부풀어 괴물이 되어버린다. 단순히 꿰맬 실밥이 아니고, 나를 잡아먹을 괴물. 내가 무찌르려 해도 이길 수 없는 녀석.


해결할 문제가 “실밥 꿰매기"에 불과하더라도, 불안을 통해 상상이 극단적으로 치닫으면 이 괴물은 나를 망하게 만들 일들이 되어버린다. 이 실밥이 터졌기 때문에 우리 회사는 소송에 휘말리고, 악의적인 뉴스가 발행되고, 고객사들이 내 멱살을 잡으러 온다. 그 결과 사람들이 차가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본다는 생각. 그러다 실직후 대출금을 못 갚고 집밖에 나앉는 엔딩으로 끝나리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 괴물을 다시 터진 실밥으로 쪼그라들게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실밥을 괴물로 키워버린 이 부정적인 감정에 이름표를 붙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대부분 이런 감정을 “불안”으로 여기고 있는데, 하루 이틀 뒤 곱씹어보면 이는 “서운함”일 수도 있고, 아쉬움이나 쓸쓸함, 실망감, 혹은 자괴감일수도 있다. 아쉬움과 쓸쓸함은 비슷한 단어일 수도 있지만, 이 감정이 무엇인지 구분하지 못하면 생각이 해결되지 않고 부글거리게 된다.


예컨데 내가 한달 전 팀을 옮기게 될 때의 일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하루종일 바빠서 아무 생각도 못하다가, 퇴근한 뒤 저녁과 새벽 내내 기분이 이상했다. 우울하고 쓸쓸한 기분이었다가 화도 났고 다시는 누군가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시 곱씹어보니 이는 아쉬움과 쓸쓸함이었다. 그 뒤 나는 지금의 동료들에게 팀을 옮기는 아쉬움을 충분히 표현하고 그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팀을 옮겨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눈 질끈 감고 괴물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도 필요하다. 불안한 감정으로 부풀어오른 부분은 떼어두고, 마음을 가라앉혀서 결국 문제의 본질이 뭔지 생각해보고 주변에 도움을 구하는 거다. 솔직히 가장 힘들다. 문제를 맞닥뜨리는 건 제일 힘든일이니까. 하지만 눈 질끈 감고 해야 할 일이다. 제일 좋은건 애시당초 감정의  스위치를 차단해서 눈길도 주지 않는거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터진 실밥을 괴물로 만들지 않고 딱 실밥으로 줄여둘 수 있는 일이다.


지금 또 터진 실밥 세 개가 있다. 안 터진게 가장 좋았겠지. 머릿속에 다시 부정적인 감정이 싹이 터서 다시 괴물이 되려고 한다. 주말에 잠시 생각을 접어두었지만 다음주엔 이 녀석을 물리치러 가야겠지. 분명 다음주의 나는 속터지고 울고 짜증내면서 부정적 감정을 뒤집어씌워서 이 실밥을 괴물로 만들어버리겠지만, 실체없는 괴물을 쪼그라들게 만들어 이불을 덮어서 잠재울 수도 있을거다.


+QA과정에서 거치는 소매와 실밥이란 이 비유가 너무 좋아서 함께 일하는 동료 기획자 J에게 허락을 구했습니다. 찰떡같은 비유를 전달해준 J님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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