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말하지 않았던 마음
그날 밤, 지원은 이상하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 밤엔, 어쩌면 마주할 수밖에 없는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때가 두 번째 시가와의 가족 여행이었다.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지 않고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첫 번째는 경기 근교로 갔고 그때는 경주였다. 첫 번째 여행은 성수기라 가성비 떨어지는 비싼 숙소에서 밥을 해 먹으며 이틀을 보냈다. 심지어 시어머니는 갈비찜까지 만들어왔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여행이 아니었다.
음식을 해 먹어서가 아니라, 바뀐 장소에서는 조금이라도 달라진 일과를 보내는 것이 여행이라 여기던 지원이었다. 이를테면, 평소에 음식을 만들지 않던 아빠가 캠핑이나 여행을 가서 음식과 설거지를 전담 한다든지, 하루종일 관광을 하며 눈요기를 하는 것이 여행이었다. 시가 어른들을 모시고 가는 여행에서 음식을 해 먹는다는 것은, 며느리 입장에서는 장소만 바뀐 채 부엌일을 돕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흔히 여행 가서 해 먹는 삼겹살, 소시지 등을 구워 먹는 바베큐 식단이 아니라, 반찬을 내어 차리고 정리해야 하는 그런 일은 며느리에게 여행은 아니었다.
그래서 두 번째 여행에서는 기필코 경주의 곳곳을 최대한 돌아보고, 음식은 사 먹자고 남편과 합의를 이루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지난 추석에 부족했던 갈비찜이 마음에 걸린다고 하며 경주까지 기어코 챙겨왔다.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었으니, 대신 떠나는 날 아침에 다 같이 먹자는 것까지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음식뿐 아니었다. 그 여행을 준비하면서, 지원도 남편도 매우 바쁜 일정에 겨우 짬을 내어 숙소를 알아보고, 귀향 열차의 박 터지는 경쟁을 통과해야 했다. 그런 과정에서 형네는 바쁘다는 이유로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열차 예약하는 시간에 잠들어서 남편이 대신해 주기까지 했다.
주말에만 아빠를 만날 수 있는 한별에게 남편을 내어주고, 지원 혼자 삼백여 곳이 넘는 숙소를 검색했다. 아홉 명의 가족이 투숙해야 하니, 함께 묵을 장소는 호텔로는 어려웠다. 아니, 호텔이라면 훨씬 더 많은 금액이 들어야 했고, 그나마 에어비엔비를 통한 펜션이었는데 그도 성수기라 비싼 것은 물론이고, 풀북 상태였다.
심지어 시가족들과 여행을 가게 되면서 오히려 친정에는 추석 당일에 못 가게 되는 상황까지 생겨나다 보니, 여러모로 희생하며 온 여행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가족이기에, 시간이 되는 사람이 예약하고 준비하면 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경주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설레는 마음이 훨씬 더 앞섰다.
준비한 것에 대한 감사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협조나 공감은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엠티나 워크샵을 준비하면서 일부의 사람들만 준비했다면, 다른 멤버들은 그들에게 “고생많았다. 이제 우리가 뭐 도와줄까. 아니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라고 반응하는 게 도리 아니던가.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형이라는 사람은 첫 식사 장소를 잘못 알려줬다고 타박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야경을 볼 관광지가 주차가 힘드니 어쩌니, 주차장부터 만남 장소까지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하나하나 짜증 섞인 불만을 해댔다. 거기에 갈비찜을 먹으려고 했는데 쌀을 안 사왔다는 시어머니의 불평이 이어졌다. 그에 대해 “난 몰라, 쟤한테 물어봐”라고 동생에게 책임을 돌리는 형이었다. 결국 그들 형제는 한밤중에 쌀을 사러 나갔고, 여행의 첫 밤을 즐기기 위해 맥주를 사다 새벽 늦게까지 마시며 큰 소리로 떠들었다.
장소가 바뀌면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데다 맥주 타임을 즐기는 수다 소리에 지원은 더더욱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이팟을 꺼내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켰음에도 그 기능을 뚫고 들리는 큰 목소리들.
맞다. 시가 사람들은 원래 그랬었다.
결혼을 하자마자 임신을 해서 힘든 상황에 맞이하는 첫 명절에도, 아이가 열 경기로 쓰러져 병원 진료를 받고 돌아와 쉬는 시간에도, 새 사람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그런 가정이었다. 그래서 그런 기대는 애초에 접었었다. 밤사이 맥주 타임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라고 여기는 편이 나았다. 그런데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새벽 늦게까지 마시고 떠들었으니 7시 반이 되어도 깨어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아침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말릴 틈도 없이 시작된 아침 준비에 남편은 어쩔 줄 몰라했다. 그리고는 방으로 돌아와 지원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 도저히 엄마를 말릴 수가 없다고 이야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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