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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남 서촌 그 책방 Dec 01. 2022

이곳은, 저는, 아닙니다.

"저 여기 근처 어디 화장실 좀 사용할 수 있을까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저 무시무시한 질문. 벌써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번에는 잘할 수 있을까? 책방을 열고 저 질문을 도대체 몇 번이나 받았는지 아는가? 물론 몇 번인지 나도 정확히 모른다. 누가 저런 질문받은 횟수 따위를 세고 있겠는가. 그런데 왜 그걸 묻느냐고 물으면? 너무나 명백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장 정말 싫어한다. 초등학생 일기 같은 말투 아닌가) 왜냐하면 (이 단어로 받는 문장도 유치하기는 마찬가지) 이 질문이 몰고 온 너무나 선명한 불쾌감을 잊을 수 없으니까.


그렇게 들어와서 볼일을 본 사람 치고 책을 사간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로 말하자면 화장실 사용 후 책 구매 고객, 이 희귀 족의 숫자는 거의 기억난다. 5년간 다섯 사람 미만이다. 정말 그렇게 적으냐고? 의아해할 것이다. 책방 와서 화장실 찾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심심찮게 있다. 일주일에 평균 한두건 정도? 그런데 그나마 예의를 지킨 사람이 5년간 다섯 명 미만이니. 대략 1년에 한 명 정도. 내가 흥분한 이유를 짐작이나 하실는지?


 화장실 가기 전과 후가 다르다는 수사를 모르는 바 아니다. 몸의 신진대사이니 일정 부분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책방 주인으로 체험한 바, 정말 너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모두들 안면몰수를 능수능란하게 하는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치미 뚝 떼고 유유히 사라지기. 어디서 안내라도 받고 오는 건지? 책방이 깨끗한 화장실의 모범으로 sns에 소문이라도 난 것인지? 아니면 혹시 우리 화장실에 무슨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인지? 왜 모두 들어갔다 나오면 무례 한으로 변신하는 것일까? 심각하게 고민하다 심지어 그들이 사용한 화장실에 들어가 어떤 흔적을 찾으려 한적도 있었다.


안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대체로 깔끔하고 청결했다. 변기도, 수건도, 개수대도, 거울도, 벽면에는 꽃바구니도 걸려있다. 실내 공기에는 내 향수 냄새도 은은히 배어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원한이 생겨서 안면몰수를 하는 것일까? 화장실 있느냐는 질문을 던질 때는 그렇게 상냥하던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오면 하나 같이 표정이 없다. 근심이 없어지니 더 이상 가식 떨 것 없다 결심하고 나오는 것인지. 그리고 괜히 어슬렁거린다. 책에는 관심 1도 없는 표정으로 서가 주위를 맴돌다가 누군가 다른 방문객이 들어오면 정말 잽싸게 나간다. 잘 썼다는 말 한마디는 고사하고, 목례도 없이, 책방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진원지라도 되는지, 그야말로 순삭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나마 이 어슬렁거림이 그들이 표현하는 최소한의 양심이 아닐까 싶지만, 참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


사람이 열을 받으면 얼마나 이상해 지는지 아는가? 우리 화장실 하드 웨어는 분명 문제가 없는데, 혹시 소프트웨어에 무슨 특이한 기류가 흐르는 것일까? 이곳에서 볼일을 보고 나면 대소변뿐 만이 아니라 양심이라는 물질도 덩달아 배출된다든지, 책이 되지 못한 화장지가 책을 시샘해서 지적이고자 하는 욕망을 닦아 없앤다든지. 아니면 우리 물비누로 손을 씻고 나면 지출 욕구가 멸균 수준에 이르게 되는지. 온갖 쓸데없는 상상에 말도 안 되는 분석을 하다가 드디어 원대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더 이상 바보같이 저들에게 내 화장실 사용을 허하지 않으리라.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다급해 보이는 사람의 애절한 표정을  보고도, 심약한 내가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확실한 대안이 필요했다. 오랜 고민 끝에 카페를 겸하지 않은 책방 주인 몇몇에게 물어보았다. 이런 민폐 고객 없느냐고, 어떻게 대처하느냐고. "근처 공용 화장실을 알려 주시면 되지요." 너무 간단해서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구나. 그러면 될 일을 몇 년이나 고민하다니.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단하다는 만고의 진리에 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진상 고객 관리 비법> 같은 책은 왜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해법을 얻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이번에는 임기응변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 분명 머리로는 말로 하라고 지시를 하는데 몸이 자꾸 나섰다. 하도 입이 떨어지지 않아 "**시장에 가시면 됩니다"라고 혼자 연습도 했다. 그런데 그들이 내 앞에 오면 나도 모르게 내 손이 화장실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마음과 몸이 이렇게 따로 놀다니. 스스로 황당해하는 사이, 볼일을 마친 그들은 이번에도 예의 없이 소리 소문도 내지 않고 책방을 빠져나갔다. 이런 열패감을 어찌할꼬? 이번에도 당했구나.


내가 책방 해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환상을 가졌다거나, 먹고사니즘에 내몰려 책을 팔지 못하면 원한이 생긴다거나, 해서 이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리 쪼잔한 내가 그리 확고한 포부를 가졌을 리가 있으리오. 다만 기싸움에서 어째 좀 살짝 밀린 기분. 그런데도 영 개운치 않은 마음. 생각할수록 네가 싫어지는 상황까지. 그들은 전후의 본능에 충실하고도 약삭빠르게 잘도 행동하는데, 나의 순발력은 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지. 안 되면 포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모양 빠지게 매번 씩씩대기는 왜 하는지. 내 배려를 이렇듯 싹둑 잘라먹고 입 싹 닦는 저들이 너무 얄밉다.


잘 차려입은 근사한 커플이 들어와서 잠시 서가를 돌아보는 시늉을 하더니 내게로 온다. 그리고 남자가 다정한 눈빛으로 내게 묻는다. 이번에는 귀신같이 촉이 온다. 조심해야 한다. 화장실은 내 앉은자리 왼쪽에 있다. 왼손을 꾹 누르고 오른손을 쭉 뻗어 책방 바깥을 가리키며 말한다.

"** 시장 가시면 공용화장실이 있어요"

너무 힘주어 말하느라 혀가 꼬여 **시장이라고 말할 때는 살짝 삑사리가 났다. 앗싸! 드디어 해냈다. 그래서 통쾌했느냐고? 아, 네 하며 그들이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그 순간은 확실히 우쭐했다. 책방 문을 나서며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말을 듣기 전까지.

 "무슨 시장이라니?"

뒤통수에 대고 말하고 싶다.

'야 다 들려, 아무튼 알려줬잖아, 고맙다고는 못할 망정,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올해로 책방지기 5년 차, 드디어 미션 하나를 완수했다. 그래서 어땠느냐고? 뭐 그냥 그랬다. 그날 내내 기분이 좋았느냐고? 그 이전에 하루 종일 그 일로 불쾌했던 기억만큼 오래? 사실은 전혀 아니었다. 좀 슬펐다. 이런 순발력에 우쭐해하는 나를 보는 일이. 누군가 물을 것이다. 화장실을 사용하면 꼭 책을 구매해야 하는 것이냐고? 물론 아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승질을 부리느냐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어딘가 명시해두거나, 미리 일러주면 되지 않느냐고? 그렇지 암 그렇고 말고. 백만 번 옳은 말씀.


처음 책방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한 지점에 가졌던 초심을 꺼내본다. 내가 읽고 좋았던 책으로 책방을 꾸며서, 책 구입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 독서문화 향상에 기여하리라. 이 원대한 포부를 책방 문 앞에 써 부치고 인스타에 올리고, 책방의 정체성을 묻는 사람들에게 누누이 성심성의껏 설명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책은 여전히 안 팔린다. 하도 표지 사진만 찍어대서 촬영 금지라고 써붙여도 여전히 막무가내. 찰칵찰칵 소리에 거슬리나 했더니, 무음 카메라의 소리 없는 도용은 더 기분 나쁘다. 백번 양보한다. 정성을 다해 찍어간 책, 제발 읽기라도 하시길.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책방 방문객 모두를 혐오하는 사람으로 비칠까 두려워 한마디 덧붙인다. 책 판매야 어려움을 예상한 일이어서, 참을 만하다는 것이고, 이런 화장실 지킴이까지 하게 되리라는 예상은 못했다.

 '침묵하며 답답하고 말을 하면 우스워진다'는 구절 맞는 말이다. 책방 주인이 되기 전까지 몰랐던 감정이고, 자신의 본능에만 충실한 대다수의 방문객은 아무도 이 심정 모를 테니, 우스워질 각오하고 말이라도 해야겠다.


 "저 공무원 아닙니다. 여기는  도서관도 아니고요. 책방의 모든 것, 책은 물론이고 공기의 질까지 제 노력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책방을  화장실로만 차용하겠다는 건  모욕으로 느껴집니다. 그 오물 더 받았다가는  승질이 마구 드러워지려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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