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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자 Mar 02. 2017

너와 나의 상처에 관하여

머물지 않을 것이면 들르지도 말아라.

Y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퍽 여린 아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녀의 말투는 그렇지 않았지만 약간 과장된 표정이나 몸짓이 말을 해줬다. 그래서 우리는 잘 어울렸다. 나는 그녀의 말에, 그녀도 나의 말에 누구보다 감정을 이입해서 잘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는 눈물이 많은 편이었고, 눈물이 없는 나도 그녀의 말에 글썽거린 적이 몇 번 있다.


그래서인지 일에 치여 사는 그녀는, 아픈 몸을 부여잡고 나를 찾아왔다. 착한 천성때문에 까탈스럽지도 못하여 우유부단한 그녀는 메뉴 하나를 제대로 고르지도 못했다. 밥도 자기가 샀다.


우리는 마치 가슴에 꼬깃꼬깃 꼬불쳐놓았던 쪽지를 펼쳐내듯이 주섬주섬 서로의 상처에 대한 얘기를 늘어 놓았다. 그녀는 미처 자신의 얘기를 먼저 꺼내지도 못하여 내 순서가 끝난 후에야 말을 열었다.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난 그녀의 여린 마음을 헤아렸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음에 주의하며, 나의 마음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나는 부럽다. 영리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엇이 이득이 되는지 기가 막히게 파악하여 딱 그 방향으로 자신을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이. 무 썰어내듯이 싹둑, 잘라낼 수 있는 결단력과 의지가. 나는 (주장하기로) 천성적으로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간신히 간신히 노력해야만 가능한 부분이다. 물론 그들 역시 '그게 쉬운 사람이 어딨겠냐' 묻겠냐만은 '어려운 정도가 다를 수는 있다'고 변명을 해본다. 어느 날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달라진 자신의 마음에 확신을 갖는 그들이. 다른 사람을 그렇게까지 개이치 않아도 되는 그 자신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부러운 이유는 나도 그렇게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와 나는, 머물지도 않을 거면서 잠깐 들렀다 간 사람들을 원망한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문을 두드리지 말지. 문을 단도리하여 잠글 굳건함이 없어서 살포시 열어 놓고 사는 너와 나. 그 문을 맘대로 열고 들어 와 몸을 녹였다 가면서 그 얼음물을 닦지 않은 사람들이 밉다. 어쨌든 문단속을 하지 않은 건 내 탓인데. 그들이 맘대로 훼집어 놓도록 방치한 것도 내 탓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리고는 영영, 어떻게 하면 문을 철문으로 갈아 버릴까 고민만 한다.


나는 그런 너와 내가 안타깝다. 너는 사실 내가 잘 알 수 있는 바가 없으니 내맘대로 판단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는 안타깝다. 안타까움에 나를 어떻게 위로해주면 좋을까, 생각하다 따로 위로될 바가 없음에 다시 안타까워 한다. 방법이 있을까? 나도 영리하게 구는 수밖에. 친애하는 C언니는 '넘어지면 오뚝이처럼 훌훌 털고 일어나라'고 했다.


엎어져 누워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선생님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원망하거나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내가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었을까? 아마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이번에도 이런 미래를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 행동했었고 역시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시쳇말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댔나. 조금은 행복한 서프라이즈를 바랐다.


그래서 Y는 태어나 처음으로 사주를 봤다고 한다. 그것도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여러 번. 나는 허무하게 날아 간 그녀의 돈이 아까워서 너털웃음이 나왔지만 그 심정을 모를 수가 없었다.


피지 않던 담배를 피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고, 1년이 넘도록 끝내지 못했던 한 갑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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